中 '영화'·멕시코 '건설' 등 입맛 다시던 시장 진출 길 열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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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TISA 참여“우리나라가 다자간 서비스 협정(TISA)을 체결하면 서비스 분야의 경쟁력을 획기적으로 높일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될 것입니다.”(기획재정부 관계자)
금융·통신·교육·문화 서비스 경쟁력 확대
TISA 합류로 GDP 5년내 0.36% 증가 예상
정부가 1년간의 고심 끝에 TISA에 참여하기로 결정한 이유는 선진국뿐 아니라 성장 잠재력이 높은 개발도상국과 신흥국의 서비스 시장 선점 기회를 미국이나 일본 등에 내줄 수 없다는 판단에서다. 정부는 동시에 서비스 강국인 미국 유럽연합(EU)과 자유무역협정(FTA)을 체결한 상황에서 다른 국가에 서비스 시장을 개방해도 국내에는 큰 충격이 없을 것으로 판단했다.○규제에 가로막힌 서비스 수출
TISA는 현재 21개국이 건설 문화 유통 등 서비스 시장에서 무역 장벽을 없애기위해 추진되고 있다. 체결되면 참여국의 서비스 시장이 개방될 전망이다. 예를 들어 TISA 참여를 적극 검토하고 있는 중국에 영화 등 한류 콘텐츠를 보다 효과적으로 수출할 수 있는 길이 열린다. 중국은 현재 자국의 영화산업 보호를 위해 한국식 스크린쿼터 제도인 ‘분장제’를 두고 있다. 판권 소유자와 배급사가 극장과 입장권 수입을 나눠 갖는 방식의 분장제는 해외 영화의 자국 유입을 연간 34편으로 제한하고 있는데, TISA가 체결될 경우엔 회원국들에 대한 영화 진입 장벽을 크게 완화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정부는 한·EU FTA 체결로 건설 등 서비스 분야에서 115개(전체 155개)를 개방했는데, TISA 협상의 개방 수준도 이와 비슷하거나 조금 많을 것으로 보고 있다. 성한경 국민대 교수는 “멕시코 등과 양자 간 FTA 체결에 애를 먹고 있는 상황에서 복수국 간 협상을 통해 이런 국가들의 서비스 시장 개방을 압박하는 효과도 있다”고 덧붙였다. 멕시코 최대 국영석유회사인 페멕스(PEMEX)는 자국 법령에 따라 FTA를 체결한 국가 또는 자국 내 기업 이외에는 입찰 제안서를 받지 않는다. 때문에 한국의 건설업체들은 최근 몇 년간 입맛만 다셔야 했다. 하지만 TISA를 통해 멕시코와 다자간 협정을 맺으면 현지 수주가 가능해진다.
심삼섭 해외건설협회 신시장지원실장은 “업계에서는 서비스 시장의 무역장벽을 정부가 나서서 해결해 달라고 줄기차게 요청했다”며 “해당 국가와 FTA를 체결하거나 아니면 서비스 시장만이라도 개방 수준을 높여 포화 상태에 놓인 건설 시장의 활로를 찾아야 한다”고 설명했다.
○국내 서비스산업 경쟁력도 높아져 TISA 참여를 추진하는 배경엔 미국 EU 인도 아세안 등 45개국과 FTA를 맺은 경험에서 얻은 자신감도 있다. 문을 연 산업일수록 경쟁력이 높다는 게 정부의 판단이다. 대표적인 서비스 산업인 유통과 문화 콘텐츠 분야가 그렇다. 2006년 스크린쿼터를 대폭 축소한 결과 지난해 한국 영화는 사상 처음으로 관람객 1억명 시대를 열었다.
1998년 월마트와 까르푸 등 글로벌 대형 업체들이 국내 상륙을 시작했을 때도 기대보다는 걱정이 더 많았다. 월마트는 1998년 한국 시장에 첫 진출했지만 10년을 채 버티지 못했다. 월마트 점포는 모두 토종 기업인 신세계 이마트가 인수했다. 성 교수는 “‘국산 영화를 완벽하게 고사시킬 것’이라던 스크린쿼터 축소 정책은 역설적으로 국산 영화의 콘텐츠 경쟁력, 질적 수준을 훨씬 더 높였다”고 설명했다.
실제 우리나라 서비스수지 구조를 분석해 보면 항공, 해운, 건설 등 해외에 일찍 진출한 분야는 치열한 경쟁 속에서 흑자를 내고 있다. 반면 교육, 법률, 회계 등 개방이 제한돼 내부에서 안주한 분야는 서비스수지 적자가 지속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뒤늦게 TISA 논의에 합류하는 경우 협상을 유리한 방향으로 이끌 수 없다는 판단도 작용했다. 협상을 주도하고 목소리를 높일수록 우리 쪽에 유리하다는 얘기다. 정부는 국내 기업의 경쟁력이 높은 통신, 금융, 건설, 유통, 해운 분야에서 개방의 폭을 넓히자고 주장할 계획이다.
또 협상 과정을 주시하면서 서비스 시장 개방에 대해 국내 기업들이 미리 대비할 시간도 가질 수 있다. 대외경제연구원은 TISA 협상 참여로 한국의 실질 국내총생산(GDP)이 향후 5년 내 0.35~0.36%, 15년 뒤에는 0.63~0.64%(83억~84억달러) 증가할 것으로 분석했다.
다만 소상공인과 자영업자를 포함한 중소기업의 피해가 커질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정부의 한 관계자는 “우리 산업의 강점을 살리면서 소상공인들의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도록 협상 전략을 촘촘하게 짜겠다”고 말했다.
세종=김우섭 기자 duter@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