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류하는 기업 구조조정] STX·쌍용건설 구조조정 대혼선…사령탑이 안 보인다

신뢰 잃은 금융당국·주채권은행

STX팬오션 살리려다 시장 반발에 법정관리
'총대' 메는 리더십 부재…상황파악조차 안돼
STX팬오션은 지난 7일 기업회생절차(법정관리)를 신청했다. STX그룹 구조조정 과정에서 중대한 ‘항로 변경’이었다. 금융감독당국은 당초 ‘큰 회사니까 경제에 미칠 영향을 고려해 살려야 한다’며 채권단을 압박했다. 하지만 시장의 거센 반발에 입장을 바꾸고 말았다.

이렇게 되자 STX그룹 다른 계열사들의 처리방침도 바뀌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쌍용건설의 워크아웃(기업개선작업) 역시 물 건너가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나온다. 기업 구조조정을 책임지고 추진할 ‘리더십 부재’가 이런 혼란을 낳았다는 지적이다. ◆‘대책반장’ 없는 금융당국

STX그룹 구조조정이 본격 시작된 것은 지난 3월부터다. 채권단 자율협약을 통해 조선계열사를 살리되 나머지는 정리한다는 게 핵심이었다. 하지만 아직도 정리되지 않았다. 계열사인 포스텍은 자율협약을 신청했지만 어떻게 될지 결정된 게 없다. STX조선해양에 지원해야 하는 돈도 자고 나면 바뀌고 있다. 채권단은 금융당국을, 금융당국은 채권단을 탓하고 있다.

오랫동안 구조조정을 해 온 전문가들은 ‘리더십 부재’를 지적하고 있다. 한 전직 금융당국 고위 관료는 “외환위기 때나 카드사태 때, 금융위기 직후와 비교해 보면 구조조정 체계 자체가 다른 것은 없다”며 “책임지고 사태를 지휘하는 ‘대책반장’이 없다는 게 차이라면 차이”라고 말했다. 리더가 없으니 배에 탄 선원들끼리 핑퐁게임을 하며 살릴 회사와 죽일 회사를 솎아내지 못한 채 배가 산으로 가고 있다는 지적이다. 금융권 고위 관계자는 “2003년 LG카드 사태 때 김석동 당시 금융감독위원회 국장이 ‘관(官)은 치(治)하기 위해 존재한다’고 선언한 것은 정부가 책임지고 일하겠다는 의지를 보여준 것”이라며 “지금은 당국이 무엇을 하겠다는 것인지 예측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대책반장’이 없다 보니 금융감독당국의 정교함이나 추진력도 떨어졌다는 평가다. 한 채권은행 부행장은 “무조건 STX그룹의 모든 계열사를 살리라고 하는 바람에 일이 뒤죽박죽되고 말았다”고 지적했다. 그는 “STX조선해양 STX중공업 STX엔진 3개사를 살리는 데도 연말까지 3조원 이상이 들어갈 텐데 STX팬오션도 살리고 (주)STX도 살리라고 하면 채권단으로서도 여력이 없어 반발이 클 수밖에 없다”고 덧붙였다.

◆힘 빠진 산업은행 주채권은행 쪽에도 뚝심 있게 구조조정을 밀어붙이는 사람이 없기는 마찬가지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정건용 전 산은 총재가 2000년대 초 대우그룹을 구조조정할 때는 ‘구조조정 악역을 산은이 맡겠다’며 기업과 다른 채권단을 강하게 압박했다”며 “주채권은행이 손실을 먼저 떠안으려는 의지가 다른 채권단에 상당한 영향을 미쳤다”고 지적했다. 지금은 그런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는 얘기다.

김동환 금융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기업 구조조정은 정책적인 성격과 시장적인 성격으로 나뉘는데, 이명박정부 전까지는 산업은행이 ‘정책’의 입장에서 구조조정을 추진했으나 산업은행을 민영화해야 한다는 얘기가 나오면서 구조조정의 뒷심이 사라졌다”고 평가했다. 산업은행이 스스로 정부 쪽인지 시장 쪽인지 결정하지 못한 채 정체성 혼란을 겪고 있다는 것이다.

◆현상 파악조차 ‘엇박자’ 리더가 없다 보니 상황 파악도 제대로 되지 않고 있다. 금융감독당국 고위 관계자는 최근 사석에서 “STX그룹의 계열사 간 채권·채무 관계가 얽혀 있어 지주사가 없으면 기업을 살리기 힘들다”고 설명했다. 반면 지난 7일 류희경 산업은행 부행장은 기자간담회에서 “계열사 간 채권·채무 관계가 그다지 복잡하지 않다”고 말했다. 구조조정의 방향이 아니라 ‘팩트’에 대해서도 주채권은행과 금융당국의 상황 파악이 다른 셈이다.

엇박자와 리더십 부재는 쌍용건설 구조조정에서도 똑같이 나타나고 있다. 금감원은 자산관리공사(캠코)가 갖고 있던 쌍용건설 지분을 정리하는 문제로 채권단이 갈등을 겪자 2월27일 긴급 기자간담회를 열어 “채권단이 대승적인 차원에서 쌍용건설의 부족 자금을 지원하기로 했고, 워크아웃을 하는 쪽으로 의견이 모이고 있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막상 실사 결과 회사를 살리는 데 9200억원이 필요하다는 결과가 나오자 워크아웃을 시작하자는 결정을 내리지 않고 미적거리고 있다.

한 채권은행 관계자는 “지금이라도 정부가 컨트롤타워를 만들거나 주채권은행에 힘을 확 실어줘서 신속하게 구조조정을 추진해야 한다”며 “여기저기서 엇박자가 나오면 살려야 할 기업도 살리지 못 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상은/박신영 기자 nyuso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