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산분리 토론회] "2금융권 적격성 심사…은행·비은행 구분 못하는 '색맹' 법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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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른사회시민회의 '포퓰리즘 경제악법' 무엇이 문제인가“정치인들이 은행과 비은행의 차이를 구분하지 않고 일률적으로 대주주 적격성 심사로 규제하겠다는 것은 색깔의 차이를 보지 못하고 모두 똑같다고 주장하는 ‘색맹’의 상황으로 비유할 수 있다.”(김선정 동국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이달 중 임시국회에서 다뤄질 예정인 금융회사 대주주 적격성 심사 제도 등 금융규제 강화 법안들에 대해 전문가들이 쓴소리를 쏟아냈다. 시민단체인 바른사회시민회의가 12일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개최한 ‘포퓰리즘 경제악법, 무엇이 문제인가’라는 주제의 토론회에서다.
주인없는 금융사 도덕적 해이…정치에 휘둘리면 건전성 훼손
의결권은 사적 자유영역…제한하려면 타당한 근거 필요
참석자들은 정치인들이 금융회사 지배구조법을 만들어 2금융권 대주주 적격성 심사를 강화하겠다고 한 것과 관련해 “요건이 지나치게 까다로워 현실에서 작동하기 어렵다”고 꼬집었다. 또 산업자본의 금융회사 의결권을 ‘9% 이하’에서 ‘4% 이하’로 제한하는 내용의 금융지주회사법 개정안에 대해서도 “사적소유를 제한할 때는 그만한 타당성이 있어야 하는데 아무런 근거나 논리를 찾기 어려운 전형적인 포퓰리즘 입법”이라고 지적했다.
◆“주인 없는 금융사, 도덕적 해이 우려” 금산분리 강화를 강조하는 정치인들은 ‘금융회사 돈이 재벌의 쌈짓돈처럼 쓰일 수 있으며, 금산분리를 강화할수록 경제력 집중을 방지해 사회의 자금순환을 돕는다’는 논리를 펴고 있다. 토론회 참석자들은 이런 주장이 “사실과 전혀 다르다”고 강조했다.
양준모 연세대 경제학과 교수는 “주인 없는 금융회사는 도덕적 해이에 빠지고, 내부 정치논리 등에 휘둘려 건전성이 오히려 나빠질 가능성이 높다”며 “분산된 소유구조가 금융회사의 건전성을 해친다는 미국의 연구결과도 있다”고 말했다.
금산분리를 강화한다고 하더라도 저축은행에서 벌어진 ‘대주주 사금고화’와 같은 현상을 근본적으로 방지하지는 못한다는 지적도 나왔다. 김 교수는 “저축은행은 감독의 사각지대에서 발생한 일”이라며 “동일인 대출한도 규제 등 여러 제약이 있음에도 이를 지키지 않는 곳이 나왔다는 이유로 모든 금융회사를 산업자본과 분리하겠다고 하는 것은 지나치다”고 지적했다.
‘금산분리’와 ‘은산분리’를 구분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왔다. 한상일 한국기술교육대 교수는 “지금까지 우리 사회가 합의한 것은 정확히 말해 은행과 산업자본의 분리(은산분리)였다”며 “이를 금산분리로 불렀다고 해서 보험업 카드업 증권업 등 은행과 전혀 다른 종류의 금융회사들까지 모두 산업자본과 분리해야 한다는 것은 과도한 주장”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나아가 은행 위주 금융지주회사를 기준으로 만들어져 있는 금융지주회사법을 실질에 맞게 은행지주회사 중심으로 고쳐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 교수는 “2금융권에 대해 금산분리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기업결합에 대한 세법 조항을 조금씩 손봐 세금을 더 내도록 유도하는 정도로 충분하다”고 덧붙였다. ◆“2금융권 대주주 적격성 심사는 무리”
보험 카드 증권 등 그동안 대주주 적격성 심사 대상이 아니었던 금융회사가 정기적으로 금융위원회의 적격성 심사를 받도록 하는 문제에 대해서도 비판이 적지 않다.
전우현 한양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대주주가 횡령과 배임을 한 경우라고 해서 대주주의 지위 자체를 무조건 박탈하도록 하는 것은 기본권 제한의 비례성 원칙을 어긴 것”이라며 “범죄의 경중이나 범죄행위자와 금융회사 간 관련성 등을 전혀 살피지 못하는 무소불위식 법률이어서 위헌 소지가 있다”고 강조했다.
조동근 명지대 경제학과 교수는 “상시 적격 심사를 받아야 하는 대주주의 범위가 너무 넓어 현실적이지 못하다”고 지적했다. 그는 “대주주의 자식이나 친척이 소액주주인데 법을 어기면 대주주가 금융회사 지배권을 박탈당하는 식인데, 이런 규제가 과하다 보니 ‘혼외정사로 낳은 자식도 해당되느냐’는 식의 농담이 오고갈 정도”라고 말했다. 거의 ‘코미디’에 가까운 법안이라는 얘기다.
◆“의결권은 사적 자유”
금융지주회사법을 고쳐 산업자본의 금융회사 의결권을 제한하겠다는 법안에 대해서는 뚜렷한 필요성도 제시하지 못하는 법안이라는 비판이 쏟아졌다.
조 교수는 “의결권은 사적 자유의 영역”이라며 “이를 제한하려면 타당한 이유와 필요성이 인정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김 교수도 “지금까지 산업자본의 의결권이 9%라서 특별히 문제가 일어난 적이 없었는데 이를 4%로 낮춰야 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이해하기 어렵다”며 “단순히 공약이니까 지킨다는 식의 논리뿐”이라고 우려했다. 의결권의 분산이 결국 외국계 투자자들의 영향력을 늘리게 될 뿐이라는 현실적인 지적도 나왔다.
이상은 기자 se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