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창근 칼럼] 原電 재앙 어떻게 오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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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을 수 있는 위험 방치한 후쿠시마2011년 3월 일본 후쿠시마 제1 원자력발전소 사고는 규모 9.0의 지진과 높이 10여m에 이르는 쓰나미에서 비롯됐다. 일본 정부나 전력회사 책임자들은 ‘예상 밖(想定外)’이라는 말만 반복했다. 엄청난 자연재해에 속수무책이었다지만 충분히 막을 수 있는 사고위험을 방치한 자신들의 실패에는 눈감았다.
체르노빌·스리마일 사고도 人災
썩은 원전마피아 도려낼수 있을지
추창근 기획심의실장, 논설위원 kunny@hankyung.com
냉각기능이 마비돼 노심용융이라는 심각한 사태로 이어진 후쿠시마 1원전에서 불과 11.5㎞ 떨어진 후쿠시마 2원전은 멀쩡했던 것이 그 증거다. 1원전은 비상용 디젤발전기 같은 핵심설비를 침수되기 쉬운 지하에 설치했다. 예상 쓰나미의 높이는 겨우 5.7m였다. 그때 2원전에도 14m의 쓰나미가 덮쳤지만 미리 보강공사를 통해 냉각설비 주변에 높게 쌓아올린 방호벽이 피해를 막았다. 이후 독립조사위원회는 후쿠시마 1원전 사고를 ‘완전한 인재(人災)’로 결론지었다. 원전 사고는 대부분 기계설비 요인이 아닌 사람 탓으로 인해 일어난다. 세계 원전 최초의 대형사고였던 1979년 미국 스리마일섬 원전의 노심용융이나, 인류 최악의 1986년 우크라이나 체르노빌 원전 폭발이 그랬다. 스리마일의 경우 원전 냉각수 밸브가 닫혀 비상냉각장치가 작동했는데 기술진은 이를 냉각수가 과잉공급되고 있는 것으로 잘못 판단해 정지시켰다. 그 한순간의 착각이 원자로를 망가뜨렸다. 체르노빌 사태는 그야말로 인재의 결정판이다. 원자로가 멈췄을 때 터빈의 돌아가던 탄력으로 전력을 생산하려는, 황당한 관성(慣性)회전시험이란 걸 진행하다가 자동제어되는 원자로의 비상정지계통을 아예 끊어버렸다. 결과는 치명적인 원자로 폭발과 대량의 방사능 확산이었고, 여기에 원자로에 반드시 존재해야 하는 격납용기를 씌우지 않은 당시 소련 체제의 무모함이 걷잡을 수 없는 재앙을 키웠다.
지난 수십년 이들 심각한 사고에도 불구하고 지금 한국에서 23기, 전 세계에서 430여기의 원전이 안정된 전력공급원으로 가동되고 있는 것은 그동안 원전의 기술적 완벽성을 끊임없이 추구해온 덕분이다. 장치 특성으로 본다면 원전만큼 안전한 시스템도 없다. 설계의 충분한 여유 확보, 만약의 인위적 과실로 인한 오동작의 진행을 막는 잠김(interlock)시스템, 고장이 발생했을 때 기계가 스스로 멈추는 페일세이프(fail-safe) 기능 등이 여러 겹으로 안전을 떠받치고 있다.
그럼에도 사고가 끊이지 않는 것은 원전에 관계된 사람들이 그 다중안전장치까지 무력화시키는 일이 되풀이되고 있기 때문이다. 모든 사고의 중심에 있는 잘못된 인적 행위에 대한 경고 또한 거듭돼왔다. 후쿠시마 사태 때도 안전의 최대 걸림돌로 일본 ‘원전족(原電族)’이 지목됐다. 원전정책을 주무르는 경제산업성, 원전 감독과 안전관리를 책임진 원자력안전보안원, 원전을 운영하는 전력회사 간부 집단이 권력과 부를 공유하는 ‘한솥밥 식구’로 그들끼리 돌고 도는 인사고리를 만들고, 정치 헌금으로 정계와도 유착해 교묘히 안전 신화를 조작한 뒤 만연한 무사안일과 위험불감증으로 재앙을 불렀다는 것이다. 우리나라 ‘원전 마피아’의 수십년 썩은 악취가 진동하는 비리, 원전 관리의 총체적 부실이 하나씩 들춰지고 있다. 지금까지 드러난 것은 빙산의 일각일 뿐 국민 안전을 팔아 사익(私益)을 챙긴 또 어떤 부패의 쓰레기가 터져나올지 모른다. 이미 깊게 곪았다는 여러 차례의 신호에도 별 반응이 없었던 정부는 이제서야 원전 비리를 ‘천인공노할 범죄’라며 전쟁을 선포하고 원전 마피아에 화살을 겨누고 있다.
그들의 먹이사슬 고리를 끊겠다며 원전 퇴직자 재취업 제한, 외부 전문가 영입, 징벌적 손해배상 등의 대책을 잇따라 내놓고 있지만 그런 임기응변으로 뿌리 깊은 원전 마피아를 도려낼 수 있을지 의문이다. 원전 마피아는 고도로 전문화된 기술영역의 제한된 소수 인력이 산업계와 학계, 정부기관에서 거미줄처럼 엮인 그들만의 견고한 장벽을 쌓아 원전 건설과 운영, 감독 등을 모두 움켜쥐고 나눠먹는 구조에서 자라왔다. 태생적 자만과 독점의 폐쇄성으로 자정(自淨)능력 마저 잃었다. 아무리 시스템과 조직, 제도를 바꿔도 사람이 ‘그 나물에 그 밥’인 한계를 벗어나기 어려운 원전 개혁의 딜레마다. 소 잃기 전에 외양간을 뜯어고칠 보다 근본적인 방법을 고민해야 한다.
추창근 기획심의실장, 논설위원 kunn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