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번역원과 함께하는 인문학 산책] 획일화 거부했던 권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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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종한 삶에 대한 충고편지에 획일화 요구하는 세상에 반항
다양성 말하며 "너나 잘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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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천성이 분방하여 세상과 잘 맞지 않았습니다. 고래등 같은 기와집을 보면 반드시 침을 뱉으며 지나갔고, 뒷골목 누추한 초가 앞에서는 언제나 서성이며 혹시 안연(顔淵)을 볼 수 있을까 하며 기웃거렸습니다. 세상이 모두 어질다 하는 높은 벼슬아치를 만나면 호로처럼 더럽게 여겼지만, 동리에서도 멸시당하는 건달이나 개백정을 보면 나도 모르게 반가워 따라다니고 싶은 마음에 ‘아, 내가 오늘 드디어 형가(荊軻)를 만나는구나’라고 했습니다. 이것이 세속에서 저를 괴상하게 보는 까닭인데, 저도 제가 무슨 마음으로 이러는지를 모르겠습니다.” 그의 편지는 이렇게 이어진다.
“때문에 굳이 세상에 맞추기가 싫었으며 산속에 숨어서 심성이나 수양하며 고인이 말한 이른바 ‘도’라는 것을 구해 보려고 했습니다. 이에 결심하고 공부에 전념한 지 이제 6~7년이 됐습니다. 그러나 엄한 스승이 없었고 좋은 벗도 없어서 그럭저럭 세월만 보냈으며, 더구나 술과 시를 좋아하는 습관이 온몸을 휘감고 있으니 비록 도에 뜻을 두었다고는 하지만 그 말과 행실은 예전과 달라진 것이 없었습니다. 그러니 족하(足下·상대를 높여 부르는 말)께서 이리 책망하시는 것도 당연합니다. 저는 항상 ‘벗이 선하고 어진 사람이 되도록 권면하고 도와주는 책선보인(責善輔仁)의 도리’는 옛날 성세(盛世)에나 있었던 일이고 지금 세상에는 더는 볼 수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지금 세상에 그런 일이 생겨났고, 그것도 제게 생기게 됐습니다. 어찌 족하께 절을 올려 감사드리지 않을 수 있겠으며, 또 저 자신에게 축하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비록 그렇기는 하지만, 남을 책망하기는 쉬워도 자신을 책망하기는 어려운 법입니다. 만약 족하께서 저를 책망하신 것을 가지고 능히 자신을 책망하신다면 참으로 다행일 것입니다. 삼가 필은 사룁니다.”
예나 지금이나 오지랖 넓게 남의 일에 참견하는 사람은 항상 있기 마련이다. 편지를 보낸 사람이 무엇이라 충고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아마도 뛰어난 재주를 시주로 탕진해서는 안 된다는 말과 주희와 같은 성인의 글을 배워 혼탁한 세상을 제도해야 한다는 훈계였으리라. 그런데 권필의 답변이 황당하다. 자기는 세상이 가치 있게 여기는 것을 멸시하고 사람이 귀하게 생각하는 것을 무시한다며 어깃장을 치고 있다. 그리곤 마지막으로 어퍼컷을 올린다. “너나 잘하세요”라고. 얼핏 보면 권필이 충고에 반발한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누항(陋巷)의 봉실(蓬室) 옆에서 서성거리며 떠나지 못하는 그의 모습엔 세상에 대한 안타까움이 묻어 있다. 더구나 6~7년간이나 공부했지만, 자신은 달라진 게 전혀 없다는 그의 말은 정신적 고백에 가깝다.
신유학이란 새로운 학문으로 조선을 건설한 사대부는 사화(士禍)를 거치며 비로소 심화된 성리학을 갖게 되고, 사림정치(士林政治)라는 조선의 독특한 정치 질서를 완성한다. 그러나 조선 중기에 발생한 당쟁은 사림정치의 근본 이데올로기인 주자학을 종교적 도그마로 변질시켜 나갔다. 획일화된 이론, 반대를 인정치 않는 정치 집단의 출현은 조선사회를 경직되게 만들었고, 변화의 역동성은 소멸됐다. 권필의 저 안타까움과 처연함은 도그마로 변질되기 시작하는 바로 그 지점에 위치한다.
서정문 한국고전번역원 수석연구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