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인터뷰] 이순우 우리금융지주 회장 "줄 없어도 묵묵히 일하는 직원 승진하는 풍토 정착시키겠다"

"자회사 CEO·지주사 임원…독한 사람 만나 고생할 것"
"인사 청탁 땐 외부 공개 '망신'…회사 그만둔 임원 가슴 아파"
"특정기업에 편중된 여신과 몰빵 영업 막아 부실 축소"
정동헌 기자 dhchung@hankyung.com
“빽이나 줄이 없어도 눈물나게, 묵묵하게 일하는 직원이 승진할 수 있는 조직문화를 정착시키겠다.”

이순우 우리금융지주 회장 겸 우리은행장(63·사진)은 약화된 영업력을 회복할 수 있는 방안을 묻자 대뜸 “인사가 해법”이라며 이처럼 말했다. 그는 “자회사 최고경영자(CEO)들과 지주사 임원들이 독한 사람(이 회장) 만나 앞으로 고생 좀 할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18일 서울 회현동 우리은행 본점 은행장실에서 이 회장을 만났다. 그는 회장 취임 후에도 23층 회장실이 아닌 22층 은행장실을 쓰고 있다. 몸을 낮추고 직원들과 소통하기 위해서다.

이 회장은 인터뷰 내내 ‘인사’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그는 “결정적인 인사청탁을 하면 외부에 공개해 망신을 주겠다”고 경고했다. 우리금융 민영화에 대해선 “기업 가치가 훼손되지 않았으면 좋겠다”며 “고객과 직원들이 슬퍼하지 않는 민영화가 되길 바란다”고 답했다.

▷회장이 바뀌는 과정이 길어지다보니 영업력이 약화됐다는 지적이 있는데. “인사가 해법이다. 빽 없고 줄대기를 하지 않더라도 묵묵히 일하는 직원들을 승진시키면 자연스럽게 영업력이 회복될 것으로 본다. 내가 열심히 하면 조직에서 클 수 있다는 원칙과 문화를 만들겠다.”

▷자회사 CEO 인사는 어떻게 되나.

“일반 직원보다 CEO 인사가 훨씬 중요하다. 계열사 전체의 경쟁력을 좌우하기 때문이다. 올초 만년 꼴찌였던 우리은행 여자농구팀이 우승한 게 대표적 사례다. 감독과 코치를 바꿔 결국 우승을 일궈냈다. 해당 계열사의 가치를 높일 수 있는 사람을 CEO로 선임할 계획이다. 오래 했다고 바꾸거나 선임된 지 얼마 되지 않았다고 유임시킨다는 식의 인사 기준은 없다.” ▷관료 문화가 자리잡는 등 조직 문화가 많이 흐트러졌다는 지적에 대해선.

“공적자금이 투입된 뒤 관료적 문화가 암암리에 자리잡았다. 직원들이 영업에 신경쓰기보다 줄을 대 윗사람에게 잘 보이는 것에 몰두하게 됐다. 하지만 조직의 질서를 무너뜨린 사람은 몇몇에 불과하다. 회장이 누가 되느냐에 따라 자신의 운명이 직결돼온 사람들이다. 그들만 솎아내면 된다.”

▷조직 문화와 관련해 직원들에게 강조하고 싶은 말은 무엇인가. “민영화를 앞두고 환골탈태를 위해 절실한 마음으로 일하는 직원이 많아졌다. 우리은행뿐 아니라 다른 계열사 직원들도 절실한 마음으로 일하는 데 동참해줘야 한다.”

▷취임사에서 인사청탁을 엄단하겠다고 했는데, 방법은 무엇인지.

“좋은 사람을 천거해주면 추천인데, 능력 없는 사람을 치켜세우면 청탁이다. 그동안 외부에서 들어온 인사청탁도 꽤 있었다. 그런데 이런 직원들 대부분은 오히려 좋지 않았다. 줄을 댄 직원은 능력이 없거나 회사에 대한 충성심이 부족한 사람이었다.”

▷인사청탁한 직원에 대한 처리는.

“결정적인 인사청탁을 해온 사람을 외부에 공개해 망신을 주겠다. 그게 대책이다.”

한참 동안 인사 관련 얘기를 하던 이 회장은 자신도 모르게 핏대를 세웠다. 회장 취임 후 눈빛도 달라진 듯했다. 평소 따뜻함이 묻어나던 눈빛은 다소 냉정하게 비쳐졌다. 그 이유를 물었다. 이 회장은 손으로 자신의 눈을 가리키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회장 내정자 때 계열사 업무보고를 받으면서 계속 따뜻한 모습만 보이면 죽도 밥도 안 되겠다는 생각을 했다”며 “모질게 다그쳐야겠다는 마음을 먹었더니 눈빛도 바뀐 것 같다”고 설명했다. “계열사 CEO들과 지주사 임직원들 입장에선 독한 사람(이 회장) 만나 고생 좀 하게 됐다”고도 했다.

▷회장에 취임한 다음날 기존 지주사 임원 18명 중 16명이 물러났다.

“가슴이 아팠다. 하지만 조직을 위해 어쩔 수 없었다. 지주사는 사람이 많으면 일을 만들어 하는 측면이 있는 것 같았다. 그래서 조직과 인력을 대폭 줄였다.”

▷우리은행의 부실채권비율이 지난 3월 기준 2.01%로 4대 은행 중 가장 높다.

“부실채권이 많은 건 우리은행의 타고난 운명이다. STX 쌍용건설 성동조선해양 등 어려운 기업들에 대한 대출채권이 많아서다. 지금까지 부실은 어쩔 수 없다. 문제는 새로운 부실을 얼마나 줄이느냐다. 앞으로 특정 기업에 대한 편중 여신과 ‘몰빵 영업’을 막아 부실을 최소화하겠다. ”

▷우리금융 민영화에 대한 입장은.

“지방은행은 그룹과 시너지 효과가 없으니 빨리 매각하는 게 맞다. 문제는 우리투자증권이다. 증권 부문을 따로 떼어내 파는 게 높은 가격을 받을 수 있는지, 증권과 우리은행을 묶어 가치를 높여 파는 게 맞는지는 냉정하게 따져볼 필요가 있다. 어쨌든 민영화 과정에서 우리금융의 본질적 가치가 훼손되지 않길 바란다. 고객과 직원들이 슬퍼하지 않는 민영화가 돼야 한다.”

▷민영화를 앞두고 있어 해외 사업 확장이 어려울 것 같은데. “중국 베트남 인도네시아 등 아시아 위주로 글로벌 네트워크를 확대할 생각이다. 임기 안에 해외 자산 비중을 5% 수준에서 15%까지 늘릴 계획이다. 아무리 민영화를 앞두고 있더라도 가만히 앉아 있을 수는 없는 것 아닌가.”

장창민 기자 cmj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