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동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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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토벤의 어머니, 바흐에겐 하나님…
위대한 음악 뒤엔 위대한 후원자가
김대진 수원시립교향악단 상임지휘자 fadela04@hotmail.com
![](https://img.hankyung.com/photo/201306/01.7569966.1.jpg)
유학 시절 느꼈던 외로움과 내 음악에 대한 회의가 내 삶에 있어서는 가장 큰 고독이었다. 슬픈 시간이 계속되던 어느 날, 나는 아내를 만나게 됐다. 유학생이란 동질감, 드러내진 않았지만 마음 깊은 곳의 외로움 때문에 쉽게 친해질 수 있었던 것 같다. 하지만 우리의 사랑을 꽃피게 한 것은 아내의 바이올린과 나의 피아노였다. 아내의 바이올린 소리에 묻혀 있는 그리움은 참으로 친숙한 나의 외로움이었는데, 아무 말 없이 우리가 맞춰가는 하모니는 어느새 사랑의 멜로디로 이어져 새로운 나날이 됐다. 차츰 아내의 바이올린 소리가, 나의 피아노 소리가 하나씩 울려도 더 이상 슬프지 않게 됐을 때 우리는 결혼했다. 그리고 때로는 다투고 때로는 서로의 그늘에 누워 투정도 부리면서 둘의 아름다운 하모니를 위해 함께 걸어가고 있다. 카메라타는 16세기 후반 이탈리아 피렌체의 예술후원자였던 조반니 데 바르디 백작의 응접실에서 모이던 예술가들의 모임이다. ‘살롱’이라는 쉬운 이름의 이탈리아어 ‘카메라’에서 유래된 말로 훨씬 따뜻하게 청중에게 다가서는 말이다. 카메라타는 당시 예술가들의 사교모임이었을 뿐만 아니라 그들에게 큰 예술적 영감을 줬다. 카메라타 구성원들의 노력은 당시 음악계 전 분야에 영향을 줘 결국 최초의 오페라를 탄생시킨다.
이러한 후원자들의 모임은 커다란 극장이나 교회에 많은 사람들을 모아놓고 연주자가 떨리는 걸음으로 나가 멋들어진 연주를 마친 뒤 커튼콜을 받고 내려오는 지극히 형식적인 음악은 아니다. 왕후나 귀족의 저택 안에서 긍정적인 미소로 반겨주는 몇 사람을 앞에 놓고 따뜻한 선율을 풀어내는 것이다. 오늘날 예술가나 단체들의 후원회 성격의 이런 모임은 당시 예술가들에게도 큰 힘이 됐을 것이다. 내 음악 인생은 아직도 먼 길을 가야 한다. 아무리 외롭고 힘들다 하더라도 더 깊고 따뜻한 빛깔로 만들어져 세상을 밝게 비추기 위해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아름다운 하모니를 이루며 살아가고 싶다.
김대진 < 수원시립교향악단 상임지휘자 fadela04@hotmail.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