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협동조합의 두 얼굴] 지역경제 길라잡이냐…제2의 '벤처 거품'이냐

협동조합기본법 시행 6개월

벌써 1210개…일자리 창출·복지 기여 순기능
출자금 달랑 500원…지원금 노린 조합 수두룩
내년 6월 지방선거 앞두고 '정치 결사체' 시각도
#1. 지난 12일 국회 경제분야 대정부 질문. 질문자로 나선 김용태 새누리당 의원은 “박원순 서울시장은 자신의 재선을 염두에 둬서인지는 몰라도 차기 시장 임기 만료 시한인 2019년까지 8000개 협동조합을 만들겠다고 공언하고 있다”며 “협동조합이 다른 목적으로 결성돼 활용될 수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2. 박원순 시장은 김용태 의원의 지적에 대해 지난 20일 처음으로 입을 열었다. 그는 “(김 의원이) 협동조합을 잘 모르고 한 말씀”이라며 “협동조합은 지속 가능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 꼭 필요한 것으로, 누가 시장이 됐어도 강력히 추진했어야 하는 사업”이라고 반박했다. 공교롭게도 박 시장의 발언은 윤여준 전 환경부 장관이 설립한 정치협동조합 ‘울림’의 창립 행사에서 나왔다. 지난해 12월 협동조합기본법 시행 이후 협동조합 설립 열풍이 이어지고 있다. 지난달 말 기준 인가를 받은 협동조합은 전국에서 1210개에 달한다. 하루 평균 6개가 설립된 셈이다. 지역 기반의 협동조합이 지역경제를 살리고, 일자리 창출과 복지서비스에도 기여할 것이란 기대가 높다. 그러나 김 의원의 지적처럼 협동조합의 정치성에 대한 우려도 적지 않다.
윤여준 전 환경부 장관(오른쪽 첫번째)과 박원순 서울시장(두번째)이 지난 20일 서울 정동 프란치스코 회관에서 열린 정치소비자협동조합 ‘울림’ 창립 행사에서 대담하고 있다.   /뉴스1
○서울·광주시 조합 설립 적극적

지난해 12월 시행된 협동조합기본법은 3억원 이상이던 출자금 제한을 없애고, 200명 이상이던 설립 동의자를 5명으로 줄였다. 특정산업분야에서만 허용하던 것을 금융·보험을 제외한 모든 분야로 확대했다. 광역지방자치단체별로 서울시 일반협동조합은 349개로 전체의 29.9%를 차지한다. 이어 경기(147개) 광주(143개) 부산(86개) 전북(67개) 등의 순이다. 협동조합 지원에 가장 적극적인 곳이 서울과 광주라는 게 정부 관계자의 설명이다.

협동조합기본법 10조는 국가와 지자체가 필요한 자금 등을 지원할 수 있다고 돼 있다. 박 시장은 지난 2월 “향후 10년간 협동조합을 8000개까지 확대하고 협동조합 경제규모를 지역내총생산(GRDP) 5% 수준까지 올리겠다”고 선언했다. 서울시는 상담·컨설팅 등 간접지원은 물론 마을기업 정책과 연계해 사업비도 지원하고 있다. 마을기업 예산을 활용해 공공성 강한 마을기업으로 선정된 협동조합에 최대 2년간 사업비 8000만원과 기업당 최대 1억원의 임대보증금을 지원하고 있다. 광주시도 ‘협동조합 모범도시’를 목표로 특별교부금을 편성해 협동조합 대상으로 사업비를 지원 중이다.
○출자금 달랑 500원인 조합도 문제는 지원금을 노리고 무작정 뛰어드는 사례가 적지 않다는 점이다. 보조금만 기대하다 실패한 ‘사회적 기업’이나 일확천금을 노린 벤처기업의 전철을 밟을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개정 협동조합법 시행 후 서울시에 처음 등록된 한국대리운전협동조합. 대리운전기사 22명이 열악한 근무환경을 개선하기 위해 만들었다. 서울 1호조합이어서 출범 때부터 주목받았다. 이창수 이사장은 “자금도 없는 데다 수익을 전혀 못 내고 있다”며 “9월께까지 정부나 기업의 협찬을 받지 못하면 위기를 맞을 수 있다”고 털어놨다.

지난달 말까지 서울시의 인가를 받은 협동조합 349곳의 평균 출자금은 1908만원. 출자금 100만원 이하는 86곳(25.5%)에 달한다. 물품 공동구매 취지로 설립된 우리협동조합은 500원의 출자금으로 인가를 받았다. 서울시 경제진흥실 관계자는 “협동조합은 출자자 5명 이상 요건과 구비서류만 갖추면 100% 수리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출자금 부족으로 설립 후 제대로 활동하지 못하는 곳이 절반을 넘는다는 게 조합 관계자의 설명이다. ○지방선거 앞두고 논란 일어

내년 6월 지방선거를 앞두고 협동조합 설립붐을 경계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협동조합에 발을 딛는 정치인들이 늘고 있기 때문이다. 협동조합기본법 9조는 협동조합이 특정 정당이나 정치인을 지지 혹은 반대할 수 없도록 규정하고 있지만 정치분야 협동조합 설립은 가능하다. 현직 정치인들도 협동조합 조합원으로 참여할 수 있다.

김한길 민주당 대표는 지난 4월 당대표 경선 출마 당시 “협동조합 운동 등을 통해 민주당이 지역공동체에 깊이 뿌리 내리도록 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나꼼수 멤버인 김용민 씨를 비롯한 야권 인사들은 지난 4월 미디어협동조합인 ‘국민TV’를 개국해 활동하고 있다. 정식 조합 인가를 받지는 못했지만 문재인 의원과 이호철 전 청와대 민정수석 등 친노 인사들이 조합원으로 참여한 술집 ‘바보주막’도 전국 각지에서 개점을 준비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강경민 기자 kkm1026@hankyung.com

전문가들 한목소리 “경쟁서 이기고 자생력 갖춰야”

전문가들은 협동조합이 지역경제 활성화라는 본래의 목표를 달성하려면 경쟁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자생력을 갖추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김성오 한국협동조합 창업지원센터 이사장은 “협동조합을 보호하고 북돋아 주는 정책도 필요하지만 기본적으로 경쟁에서 이길 수 있어야 한다”며 “처음엔 사회적 경제 원리 안에서 시작하지만 점차 기존 기업들과 경쟁해야 하는 각박한 국면에 접어들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장승희 LG경제연구원 책임연구원은 최근 리포트를 통해 “미국에서도 일부 대형조합들이 조합원들의 정치적 요구로 인해 효율적인 사업을 진행하기가 어려워지면서 위기를 자초한 사례가 있었다”며 “협동조합은 이미 각 사업 영역에서 세계적 수준의 주식회사들과 경쟁해야 하는 처지에 놓여 있다”고 강조했다.김정호 연세대 경제대학원 특임교수는 “협동조합이 정부와 지방자치단체의 지원금에 의존하지 않고도 살아남을 수 있는 자생력을 갖춰야 한다”고 조언했다.

그는 이와 함께 협동조합이 지나치게 정치성을 띠는 것에 대해 우려를 표시했다. 김 교수는 “특정 정당과 정치인을 지지하는 행위만을 정치라고 볼 수는 없다”며 “자본주의와 주식회사 등에 대한 지나친 공격도 일종의 정치 행위”라고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