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구전략에 '화들짝'…金값 날개없는 추락

트로이온스당 1236달러 3개월새 23%나 떨어져
철·구리도 급락…FT "원자재 슈퍼사이클 사망"
“원자재 ‘슈퍼사이클’이 사망했다.”(27일자 파이낸셜타임스)

지난 19일 벤 버냉키 미국 중앙은행(Fed) 의장이 양적완화 축소를 예고한 이후 금을 비롯한 주요 원자재 가격이 급락하고 있다. 2003년 신흥국 경제의 성장으로 시작된 원자재 값의 장기 상승을 일컫는 ‘원자재 슈퍼사이클’이 끝났다는 분석이다. 원자재 관련 금융상품 수익률이 곤두박질치는 것은 물론 호주와 남아프리카공화국 등 원자재 값 상승이 경제를 견인했던 국가들도 침체를 맞는 등 파장이 확산되고 있다.
○원자재 값 동반 추락

26일 뉴욕상업거래소(NYMEX)에서 금값은 트로이온스(31.1g)당 1229.80달러로 2010년 8월 이후 최저치까지 떨어졌다가 27일 소폭 반등했다. 4월 이후 3개월간 하락폭은 23%에 달해 1971년 브레턴우즈 체제 붕괴로 금 본위제가 무너진 이후 분기 기준으로 가장 큰 낙폭을 나타냈다.

다른 원자재들도 최근 2년여간 가격 하락이 지속되고 있다. 2011년 2월 이후 철광석 가격은 39.9% 떨어졌으며 구리값도 33.9% 내렸다. 미국의 양적완화로 촉발될 수 있는 인플레이션을 헤지하기 위해 원자재에 투자된 돈이 빠져나가고 있다. 올 들어 금 관련 상장지수펀드(ETF)의 환매가 이어져 금 ETF 보유 물량의 20%인 500 이상의 금이 시장에 나왔다.

중국의 신용경색 우려와 인도의 금 관련 대출 단속으로 신흥시장의 수요도 예전 같지 않다. 특히 중국 정부가 경기부양보다는 안정으로 경제 정책 기조를 잡으면서 과거와 같은 폭발적인 원자재 수요 증가는 없을 것으로 예상된다.

○관련 기업은 물론 국가까지 흔들 전문가들은 원자재 가격 하락이 당분간 지속될 것으로 내다봤다. 카말 나키비 크레디트스위스 원자재팀장은 “과거 원자재 상승 사이클은 일단락됐다고 볼 수 있다”며 “수요는 부진한 가운데 공급은 예상했던 것 이상으로 순조롭다”고 말했다. 헤지펀드 HFZ캐피털의 스콧 호바트 투자담당자는 “앞으로 4~5년간 이어질 원자재 가격 하락의 시발점에 들어섰다”며 “가격 하락폭이 더 가팔라질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

원자재 및 광산 개발 관련 기업들의 주가는 원자재 가격 하락폭 이상의 급락세를 보이고 있다. 호주의 광산 기자재업체인 올마인그룹 주가는 올 들어 75% 폭락했다.

원자재 수출이 경제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는 호주와 남아공, 브라질 등이 직격탄을 맞을 전망이다. 올 들어 남아공 랜드화는 14.5%, 호주 달러화는 12%의 가치가 떨어졌다. 광산업체 앵글로아메리칸의 마크 커니파니 최고경영자(CEO)는 “호주에서만 최근 1년간 9000명의 광산 노동자가 일자리를 잃었다”고 말했다.

노경목 기자 autonom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