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칼럼] 첨밀밀

고두현 논설위원 kdh@hankyung.com
중국의 개방 열풍에 많은 젊은이가 홍콩으로 몰려들던 1986년 봄. 푸른 인민복 차림의 순수 청년 여소군(리밍)이 홍콩에 도착한다. 고모의 다락방에 얹혀살며 배달 일을 하던 그는 맥도날드 가게 종업원 이소(장만위)를 만나 가까워진다. 그녀 또한 돈을 벌기 위해 이곳에 온 ‘홍콩 드림’의 주인공이다. 그러나 둘의 사랑은 쉽게 이뤄지지 않고 이별과 재회만 계속한다. 결국 엇갈린 운명으로 각자의 길을 가는 두 사람.

이들의 안타까운 러브스토리를 다룬 영화가 천커신 감독의 ‘첨밀밀(甛蜜蜜)’이다. 홍콩이 대륙으로 반환된 1997년 ‘타임 선정 세계 10대 영화’에 오른 작품인데, 덩리쥔(鄧麗君)의 경쾌한 주제가로 더 유명해졌다. 소군이 짐자전거 뒤에 이소를 태우고 달리면서 함께 부르던 그 노래. 꿀처럼 달콤하다는 뜻의 제목처럼 가사 또한 매혹적이다. ‘달콤해요. 당신의 웃음은 아주 달콤해요. 봄바람 속에서 꽃이 피는 것처럼. 봄바람 속에 피는 꽃처럼. 어디서, 어디에서 당신을 만났었죠? 당신의 웃는 얼굴이 무척 낯익어요. 지금은 생각이 나지 않네요. 아 꿈속이었군요. 꿈속에서, 꿈속에서 당신을 보았어요.’

명장면 중의 백미는 후반부에 나온다. 1995년 미국 뉴욕의 차이나타운. ‘아메리칸 드림’을 찾아 이곳까지 왔다가 추방될 뻔한 이소가 혼자 거리를 배회하는 동안 덩리쥔의 또 다른 명곡 ‘저 달이 내 마음을 대신하오’가 흐른다. ‘그대는 물었었지, 그대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그대 생각해 보오, 그대 가서 보오. 저 달이 내 마음을 대신하오.’

부드러운 발라드의 여운이 잦아들 즈음 그녀가 가전제품 가게의 TV 앞에서 걸음을 멈춘다. 소군과 함께 그토록 좋아했던 덩리쥔이 갑자기 사망했다는 소식에 넋을 잃은 그녀. 잠시 후 그 옆으로 다가서며 뉴스에서 눈을 떼지 못하는 한 남자. 정신을 차린 그녀가 천천히 눈을 돌려 그를 발견하는 순간, 그 옛날의 ‘첨밀밀’이 화면을 적신다. 격동기 중국과 홍콩의 역사를 배경으로 한 이 영화는 젊은이들의 꿈과 사랑, 피할 수 없는 운명의 궤적 등을 아우르며 수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았다. 어제 중국을 국빈 방문한 박근혜 대통령이 유창한 중국어로 덩리쥔의 ‘첨밀밀’과 ‘야래향(夜來香)’까지 부른다는 걸 알고 중국 언론도 놀랐던 모양이다. 2005년 한나라당 대표 시절 청두를 방문했을 때 “감기 때문에 (부르지 못해) 유감”이라고 했던 일화까지 소개했다. 이런 감성과 소통의 언어로 양국 지도자가 역사에 길이 남을 ‘작품’을 함께 빚어내기 바란다. 두 주인공이 낯선 이국땅에서 극적으로 재회하는 영화의 명장면처럼….

고두현 논설위원 kd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