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수, 30년새 6배…기후변화에 뒤처진 인프라, 禍 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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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이슈 따라잡기 - 유럽·캐나다·중국·인도 곳곳이 '거대한 호수'로
◆구멍 뚫린 지구촌의 하늘
서유럽도 안전지대는 아니었다. 지난 17일 내린 폭우로 프랑스 남서부 지역이 물에 잠겼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최근 급상승한 기온으로 피레네 산맥 지역에 쌓였던 눈이 대거 녹아 흘러내리면서 홍수 피해를 키웠다. 기적의 샘물로 해마다 수백만명이 찾는 가톨릭 성지 루르드는 이번 홍수로 수개월간 폐쇄될 것이라고 전해졌다. 힌두교 성지로 유명한 인도 북부 우타라칸드주(州)에서도 이달 중순 발생한 기록적인 폭우로 인한 홍수로 680여명이 사망했다. 예년보다 빨리 닥친 몬순(우기)이 피해를 키웠다. 산사태까지 겹쳐 사망자는 5000명에 육박할 것으로 주 정부는 추산하고 있다. 중국에서도 지난 19일 쓰촨성에 쏟아진 폭우가 홍수와 산사태로 이어져 460㏊의 농경지가 침수되고 6만6000명의 수재민이 발생했다.
캐나다 앨버타주 캘거리는 지난 20일부터 쏟아진 폭우로 엘보강이 범람하면서 4명이 죽고 수천명의 이재민을 냈다. 이번 홍수로 캐나다 최대 석유산업 지대인 캘거리는 전력망이 파괴돼 복구에만 최대 수개월이 걸릴 전망이다.
기상학계에 따르면 탄소배출량 증가로 지구에 온실효과가 발생해 뜨거워진 대기가 수증기를 더 머금을 수 있게 된다. 지표면의 물은 더 많이 증발해 육지는 건조해지고 해양은 더 많은 수증기를 품은 기단을 만든다.
이 과정에서 해양과 지표의 수증기 밀도 차가 커지면 바람을 타고 해양에서 육지로 이동하는 수증기의 양이 증가한다. 문제는 더 많은 수증기의 수송이 단시간에 많은 비를 내리게 해 홍수를 유발한다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비가 내리지 않는 기간 지표는 건조해져 가뭄이 들고, 한번 비가 오면 과도하게 많은 양이 단시간에 내려 홍수가 발생하게 되는 것이다. 근본적인 문제는 기후 변화에 있지만, 이에 대한 대비가 매우 부족한 실정이다. 지구온난화에 의한 기후 변화가 만들어낸 폭우에 적절하게 대응할 수 있는 수단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하경자 부산대 대기환경과 교수는 “최근 잇따르고 있는 홍수는 심화되는 기후 변화에도 수해에 대비할 수 있는 인프라를 늘리지 않은 탓”이라고 말했다.
급격한 도시화로 농경지가 감소하고 도로포장이 늘어나면서 지표의 물 저장 능력이 감소한 것도 홍수 피해를 키우는 문제점으로 꼽힌다. 땅에 흡수되지 못한 물이 지표면을 흐르면서 지반이 낮고, 배수 조건이 나쁜 곳으로 한꺼번에 몰려 홍수의 강도를 배가시키기 때문이다.
인도 우타라칸드주의 이번 홍수도 순례객을 겨냥한 호텔이 난립하고 대규모 삼림 벌채로 인해 땅의 물 저장 능력이 감소해 피해가 커졌다고 현지 언론들은 분석하고 있다. 이렇게 지표의 물 저장 능력이 감소하면 빗물 펌프장, 임시 저류시설 등 수해방지시설이 잘 갖춰져야 하는데 그렇지 못한 것이 홍수의 주요 원인이라는 것이다.
폭우는 자주 발생하지만 세계는 갈수록 물 부족 현상에 시달리는 기현상도 벌어지고 있다. 비가 단시간에 몰아서 내리기 때문에 지표에 저장해 사용할 수 있는 물이 적은 탓이다. 강수량이 적어서가 아니라 강수의 형태가 바뀌면서 나타나는 구조적인 문제다.
◆기후 변화 대응책 마련 촉구
폭우와 홍수에 따른 피해 규모가 갈수록 커지면서 글로벌 경제에도 악영향을 미치고 있다. 국제 신용평가사 피치는 최근 홍수 피해로 인한 독일의 경제 손실이 120억유로(약 18조원)까지 커질 수 있다고 전망했다. 독일산업협회(BDI)도 홍수 피해로 독일 경제 성장이 단기적으로 저하될 가능성이 있다고 내다봤다. 미국의 시장조사업체 BMO캐피털마켓은 “캘거리 홍수로 캐나다 국내총생산(GDP) 중 20억달러가 줄어들 것”이라고 설명했다.
홍수 피해로 직격탄을 맞은 보험사들도 발을 구르고 있다. 독일의 재보험사 뮌헨리의 분석에 따르면 전 세계적으로 홍수, 태풍, 가뭄 등의 자연재해는 1980년 300회에서 2012년 900회로 증가했다.
전 세계 보험업계를 대변하는 제네바협회는 “(홍수가 자주 발생하는) 영국 일부와 미국 플로리다 연안은 이미 보험으로 해결할 수 없는 수준에 이르렀다”고 주장했다. 영국 보험사들은 “정부가 수해 위험이 큰 지역에 사는 사람들에게 보험 보조금을 지급하라”고까지 요구하고 있다. 존 피츠패트릭 제네바협회 사무총장은 “각국 정부가 수해방지시설에 더 투자하고 수재위험지역에는 건축 허가를 제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또 “수해 방지를 위한 투자는 단기적으로 재정에 무리를 줄 수 있겠지만 장기적으로는 홍수 피해시설을 복구하는 데 드는 비용을 줄여준다”며 “이는 오히려 정부 재정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박병종 기자 dda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