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칼럼] 라오펑유(老朋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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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춘호 논설위원 ohchoon@hankyung.com경어 접두어가 발달한 대표적 언어는 일본어다. 일본어의 오(お)와 고(ご 御)는 사람뿐 아니라 각종 사물에도 쓰인다. 경우에 따라 쓰임새가 달라 외국인으로선 이들 접두사를 배우기가 여간 불편한 것이 아니다. 불어나 스페인어 독어 등 인도 유럽어족 언어에서도 상대방을 높이는 경어 접두어가 발달돼 있다. 스페인 이름인 돈키호테나 돈카를로 등에 포함돼 있는 돈(Don), 독일식 이름에 나타나는 폰(von) 등도 이런 뜻이다. 우리말은 복잡한 경어 호칭을 갖고 있지만 이런 접두어는 없다. 하지만 고대 한국어에선 접두어가 상당히 발달했을 것이라는 추정도 있다.
중국어를 배울 때 가장 까다로운 단어 하나가 접두어 ‘라오(老)’다. 우리말로 나이가 많다거나 오래됐다고만 해석하면 큰일 난다. 젊은 부부들은 서로를 라오쿵(老公), 라오파(老婆)라고 부른다. 아니 젊은 아내를 노파라고 부르다니! 기업체 사장을 뜻하는 단어는 라오판(老板)이고 선생님은 라오슈(老師)다. 일반인들을 뜻하는 어휘는 라오바이싱(老百姓)이다. 상대방의 뛰어난 재능에 탄복했을 때 그의 성 앞에 라오를 붙이는 것도 하나의 관례다. 호랑이(老虎)나 쥐(老鼠) 등 동물에도 라오를 넣는다. 조선시대엔 역관들이 배우는 중국어 교재 이름을 노걸대(老乞大)라고 불렀다. 걸대는 북방민족이 중국을 가리키는 말이라고 한다. 중국어 학자들은 그래서 라오를 오래됐다는 뜻뿐 아니라 친근 존경의 뜻이 변화돼 아무 뜻이 없어져버린 접두사라고도 해석한다. 물론 경어의 의미가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다.
박근혜 대통령이 중국을 방문하자 중국 매체들이 ‘중국 인민의 라오펑유(老朋友)’라면서 반겼다고 한다. 라오펑유에는 오래된 친구라는 뜻과 친근한 친구, 존경하는 친구라는 뜻이 중첩돼 있다. 외국인 지도자들 앞에 그냥 붙이는 일반적인 경어 접두어일 수도 있을 것이다.
중국에선 지금까지 깊은 친교를 맺거나 정치이념이 비슷한 외국인 지도자 600명에게 라오펑유라는 호칭을 썼다. 쿠바의 피델 카스트로나 베트남의 호찌민, 북한의 김일성은 물론이고 리처드 닉슨 전 미국 대통령, 조지 부시 전 미국 대통령, 자크 시라크 전 프랑스 대통령 등도 라오펑유 호칭을 받았다. 중국 인터넷에선 박 대통령이 정말 라오펑유인지 묻는 네티즌도 꽤 있다고 한다. 이승만 전 대통령이 1953년 대만을 방문해 중국(자유중국)을 오래된 친구라고 얘기한 지 60년이 지났다. 대한민국과 중국은 과연 서로에게 어떤 라오펑유일까.
오춘호 논설위원 ohcho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