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노삼성차 'SM5 TCE', 1600㏄ 작은 심장 갖고도 힘·연비 뛰어나

Car&Joy - 전예진 기자의 '까칠한 시승기'

'문 워크'의 달인 "원래 밀려요"
지난주 ‘평온’하던 자동차 업계에 한바탕 싸움이 벌어졌다. 기아자동차가 르노삼성자동차를 ‘디스(무례·결례를 뜻하는 disrespect의 줄임말로 다른 사람을 폄하하는 행동을 말함)’한 것. 얼굴을 ‘튜닝’한 뒤 컴백한 기아차의 2000㏄급 K5는 1600㏄인 르노삼성 SM5 TCE를 보고 “힘도 약한 게 비싸게 군다”고 했고, 르노삼성은 격분했다. 가뜩이나 차가 잘 안팔려서 속을 끓이는데 야심차게 내놓은 신차의 앞길에 대못을 뿌려 놓았으니 얼마나 얄미웠을까. 소동은 기아차가 비공식적으로 사과하면서 일단락됐다.

사실 이번 일로 홍보효과를 톡톡히 누린 덕분에 SM5 TCE는 더 이상 발끈할 필요가 없어졌다. K5와 비교되면서 구매를 문의하는 고객이 늘었다고 한다. 지난달 출시된 SM5 TCE는 누적 계약 대수가 1200대를 넘어섰다. 이달에만 900대를 넘었다. 출발이 괜찮다. 10년 전만 해도 SM5는 쏘나타도 마음대로 건드리지 못하는 중형 세단의 최강자였는데, 지금은 노이즈 마케팅에 기뻐하다니 씁쓸하다.
어쨌거나 SM5 TCE는 국내 자동차 분류법의 패러다임을 바꾼 변종이다. 국내에서 처음으로 중형차에 1600㏄급 엔진을 얹었다. 중형인지 준중형인지 애매하다. 작은 심장으로도 큰 덩치를 끌고 다니게 만들었다는 점은 칭찬해줄 만하다. 르노 닛산의 최첨단 직분사 터보 엔진에 독일의 유명 변속기 전문 업체인 게트락(GETRAG)의 6단 듀얼 클러치 트랜스미션(DCT)까지 총동원하다니. 왕년의 스타 SM5를 어떻게든 부활시켜보려고 애쓴 노력이 보인다. 힘과 연비는 나쁘지 않다. 최고출력 190마력(6000rpm), 최대토크 24.5㎏·m(2000rpm), 연비는 13㎞/ℓ다.

문제는 경사로에서 뒤로 밀리는 ‘문 워크’ 현상. 경사가 심한 곳에서는 액셀러레이터를 끝까지 밟고 진득하게 기다려야 앞으로 나간다. 액셀에서 발을 떼면 주르륵 밀린다. 르노삼성에 문의하니 “TCE는 원래 그렇게 타는 겁니다”라고 한다. 차량 특성이라나 뭐라나. 다운사이징을 했다지만 가격은 부담스럽다. 2000㏄인 SM5 플래티넘 LE보다 50만원 비싼 2710만원이다. 스타일의 완성을 위해 파노라마 선루프, 바이제논 헤드램프, 18인치 휠을 넣고 조금만 꾸며줘도 3200만원대가 훌쩍 넘는다. 내장재는 화이트로 포인트를 줘 산뜻해보이지만 살짝 ‘싼 티’가 난다. 기존 SM5 플래티넘처럼 우드 내장재로 바꾸려면 돈을 더 줘야 한다. 1618㏄여서 1600㏄ 준중형차 세금이 적용되지 않는 점도 억울하다. 고작 18㏄ 차이로 10만원을 더 내야 하다니. 기왕 다운사이징할 바에 1600㏄에 맞춰줬으면 좋겠다. 이 차, 내년 현대차가 신형 쏘나타(LF)에 1600㏄ 터보 GDI 엔진을 올릴 때까지 잘 버틸 수 있을까.

전예진 기자 ac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