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 무대 '영상 마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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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몬테 크리스토' '레 미제라블' 등 무대 미학 눈길뮤지컬 역사상 사람들의 입에 가장 많이 오르내리는 장면 중 하나는 ‘미스 사이공’ 의 헬리콥터 탈출 신이다. ‘사이공 탈출’ 장면에서 등장하는 실물 크기의 헬리콥터 모형은 이 뮤지컬의 상징이 됐다. 2006년 국내 첫 공연에서는 제작비와 무대 여건 등을 이유로 3차원(3D) 영상이 실물 모형을 대체했다. 무대 위에서 실물 헬리콥터가 움직이는 장관을 보고싶었던 관객들에겐 실망을 안겨줬지만, 필사의 탈출을 감행하는 사람들의 몸부림과 아우성, 극장을 진동시키는 프로펠러 굉음과 함께 무대로 밀려 날아오를 듯한 헬기 영상은 오감을 짜릿하게 하는 볼거리를 선사했다.
이때만 해도 낯설고 신선했던 ‘무대 위 영상’은 요즘엔 영상을 활용하지 않는 공연이 드물 정도로 일반화됐다. 대부분 영상이 단순한 배경 그림이나 인물의 심리 표현 수단에 머물고 있지만 최근들어 날로 정교해지는 3D 기법과 예술가들의 상상력이 만나 새로운 무대 미학을 창출하는 공연들도 속속 등장하고 있다. 서울 흥인동 충무아트홀에서 내달 4일까지 공연되는 ‘몬테 크리스토’와 한남동 블루스퀘어 무대에 오는 28일까지 오르는 ‘레 미제라블’, 오는 10~14일 올림픽공원 체조경기장에서 펼쳐지는 ‘태양의 서커스-마이클 잭슨 이모털 월드투어’ 등이 대표적이다. ‘몬테 크리스토’는 무대 영상 미학의 진수를 보여준다. 배우의 퍼포먼스와 조명 기술이 3D 영상과 유기적으로 결합해 깊이있고 입체적이면서도 역동적인 무대를 만들어낸다. 여기에는 조명의 밝기에 따라 막 뒤의 모습이 보이거나 보이지 않는 ‘샤막’(회색 톤의 특수 천으로 제작된 반투명 가림막)이 중요한 역할을 한다. 주인공 단테스의 탈출 장면에서 샤막은 바닷속 물의 움직임을 영상으로 보여주고 배우는 막 뒤에서 와이어를 이용해 물에 풍덩 빠진 것처럼 내려왔다가 결박을 풀고 다시 위로 올라간다. 사실적이면서도 아름다운 장면이다.
샤막에 펼쳐지는 커다란 벚꽃나무나 정원 숲속은 막 앞뒤 배우들의 움직임과 세트와 맞물려 마치 무대에 실제로 존재하는 것처럼 보인다. 송승규 영상 디자이너는 “영상은 3D 그래픽 프로그램으로 제작되지만 극장에선 2D 환경에서 구현된다”며 “조명의 세밀한 조정과 치밀하게 계산된 배우들의 계산된 움직임과 한치의 오차없이 맞아 떨어져 3D 영상처럼 보이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레 미제라블’에서는 무대 뒷편 회색 벽면에 목탄과 파스텔로 그린 듯한 그림이 공연 내내 배경으로 펼쳐진다. 컴퓨터 영상합성기술(CGI)로 만들어낸 애니메이션 영상이다. 극 배경과 인물의 심리 변화를 드러내는 역할에 머물며 정적으로 흐르던 영상은 장발장이 터널에서 마리우스를 옮기는 장면이나 자베르가 다리에서 뛰어내리며 자살하는 장면에서 역동적으로 변한다. 다양한 각도로 다가오는 하수구와 소용돌이 치는 강물의 영상이 배우들의 움직임과 절묘하게 어우려지면서 인상적인 장면을 연출한다. ‘마이클 잭슨 이모털’ 은 이전 태양의 서커스 내한 공연에서는 볼 수 없던 첨단 영상 기술이 접목된 아크로바틱(공중 기예)를 보여준다. 막이나 벽에 영사기로 쏘는 방식이 아니라 무대 뒷편에 설치되는 초대형 LED 전광판에 영상이 구현된다. 절정의 ’융합 미학’을 보여주는 장면은 ‘휴먼 네이처’ 다. 잭슨의 가냘픈 미성으로 흐르는 노래에 맞춰 대형 전광판에는 광활하고 화려한 우주의 모습이 펼쳐지고 이에 맞춰 LED 의상을 입은 곡예사들이 다양한 아크로바틱을 펼친다. 다양한 색깔의 LED 불빛만으로 드러나는 곡예사들의 움직임과 우주의 영상이 일체화돼 빚어내는 아름다움은 이전에 경험하지 못한 새로운 쇼의 세계로 안내한다.
송태형 기자 toughlb@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