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이유 있는 외국계 리포트의 '괴력'

김동욱 증권부 기자 kimdw@hankyung.com
“국내 증권회사들이 아무리 실적이 개선된다고 외쳐봐야 소용없어요. 시장은 외국계 리포트에만 반응을 하니….”(서동필 IBK투자증권 투자전략팀장)

비교적 평온했던 2일 증시에서 그동안 외국인 매도공세 속에서도 선방해 온 SK하이닉스 주가가 8.72%나 급락했다. 프랑스계 크레디리요네(CLSA)증권이 12장짜리 리포트에서 “SK하이닉스 실적은 이번 분기 정점을 찍은 뒤 여름이 지나면 D램가격 하락 영향으로 주춤해질 것”이라며 투자의견을 ‘매도’로 하향했다는 소식이 전해진 탓이다. 지난달 6일 JP모건이 삼성전자 목표주가를 낮춘 뒤 한 달간 12.74%나 떨어지는 폭락을 경험한 ‘학습효과’ 탓인지, 기관들이 허겁지겁 매물을 내놓으면서 거래량도 평소의 5배 수준인 2080만주 수준으로 치솟았다. 2010년 7월 메릴린치의 대한항공 매도리포트(-5.13%), 2011년 4월 골드만삭스의 고려아연 보고서(-6.16%), 2012년 UBS의 LG전자 매도 보고서(-5.42%)에 이어 또 한 번 외국계 리포트가 괴력을 발휘했다.

시장에선 “삼성전자 급락 이후 외국계 증권사들이 매도 리포트를 내는 데 재미 들인 모양”이라는 한탄이 터져나왔다. “홍콩이나 싱가포르 사무소의 탁상 위에서 작성했을 리포트가 지나치게 대우받는다”는 볼멘소리도 적지 않았다. 외국계 증권사가 공매도 세력과 결탁했을 것이라는 식의 ‘음모론’도 돌았다. 유럽계 증권사 애널리스트는 “메신저나 휴대폰 메시지 등을 통해 탐방기업 정보를 공유하는 국내 애널리스트들보다 훨씬 보안규제(컴플라이언스)가 까다롭다”고 펄쩍 뛰었다.

외국계 증권사 리포트가 위력을 키우는 배경에는 일종의 ‘사대주의’를 비롯해 시장에서 커지고 있는 외국인 영향력 등 여러 이유가 있을 듯하다. 그 중에서도 개인적으론 ‘매도 리포트’를 내놓지 못하는 국내 증권사의 ‘업보’라는 지적에 귀가 솔깃했다.조익재 하이투자증권 리서치센터장은 “국내 증권사와 달리 자유롭게 매도 리포트를 내는 것을 바탕으로 외국계 증권사가 힘을 키웠다”며 “국내 기업도 매도 의견을 낸 애널의 탐방을 제한하는 등의 잘못된 관행을 없애야 한다”고 했다. 외국계 리포트의 영향력 과잉은 “지금은 살 때”라고만 외쳐온 국내 증권사들의 판박이 부실 보고서에도 책임이 크다.

김동욱 증권부 기자 kimdw@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