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라이프] 잘 만든 차, 그 이상의 브랜드 가치를 느끼게 하라

경영코치 기아차 K9, 프레스티지 시장에 진입하려면

브랜드 개성 끌어올리고 경쟁 포지셔닝 재설정을
경제적 가치 뛰어 넘어 K9 브랜드 좋아하는 고객을 늘려 나가야
K9은 기아자동차의 최상위 모델로 지난해 5월 선보였다. 기아차는 개발 콘셉트부터 기존 오피러스와는 차원이 다른, 최고급 세단으로 설정했다. 또 벤츠와 BMW, 아우디 등을 직접적인 경쟁 상대로 삼았다. 전자식 변속레버, 주행모드 통합제어 시스템 등 안전과 편의를 위한 최첨단 기술을 총동원했고 피터 슈라이어 사장이 총괄한 디자인 역시 간결하면서도 세련된 고급차의 품격을 살려냈다.

K9에 대한 기아차의 기대와 자부심은 대단하다. ‘TO THE GREATEST-명차의 가치를 더하다’는 광고 카피는 자부심을 그대로 드러내고 있다. 준중형 K3, 중형 K5, 준대형 K7, 대형 고급 세단 K9으로 이어지는 라인업을 갖춰 시장점유율 확대와 함께 브랜드 이미지를 높일 수 있을 것으로 기아차는 기대해왔다. K9은 시장에 선보인 지 13개월 만인 지난달 내수판매 1만대를 돌파했다. 다만 월평균 판매가 800대 이하로 당초 기대엔 못 미친다는 평가다. 국내 고급 대형차 시장규모는 10만~11만대, 이 가운데 수입차가 6만대 이상이다. K9의 판매가는 기본형인 3.3ℓ 프레스티지가 5228만원, 3.8ℓ 이그제큐티브가 6600만원, 최상위 3.8ℓ 프레지던트가 8538만원이다.

김수언 기자 sookim@hankyung.com

코칭 포인트 1
성공한 기존 브랜드의 유혹을 떨쳐내라
목표 측면에서 보자면 K9은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성과를 내고 있다. 그러나 K9 브랜드의 역할을 기아차 전반에 걸쳐 고려한다면, 조금 다른 시각에서 바라볼 수 있을 것이다.

첫 번째는 기아차 K시리즈 브랜드 이미지를 제고한다는 측면에서 K9의 공헌이 있으며, 이런 공헌은 K9의 판매 수치가 아니라 K시리즈 전반에 반영돼 있을 것이다. 기아차가 이를 주효과로 염두에 둔다면 눈앞의 K9 판매량이 아니라 K9 투자가 다른 K시리즈에 어떻게, 그리고 얼마만큼 전이(spill over)되는지를 소비자 구매 관련 인식 및 선택 측면에서 엄밀하게 측정해야 할 것이다. 두 번째는 첫 번째 시사점과 깊이 관련돼 있으나 전략적으로는 반대되는 방향으로 기아차의 럭셔리 브랜드 전략을 생각해 볼 수 있다. K9 브랜드는 소비자들에게 다른 K시리즈와 독립적으로 인지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BMW 3,5,7시리즈를 예로 든다면, 소비자들은 차종별로 고급감에 대한 차이를 둘망정 BMW 브랜드 전반에 대해서는 매우 안정적이고 일관된 이미지를 가진다.

제니퍼 아커를 포함한 많은 마케팅 학자들은 브랜드도 살아있는 인격체처럼 개성(brand personality)을 지니고 있다고 생각하고, 이를 이해하고 측정하고 전략적으로 개발하는 방향에 대해 연구하고 있다. 기아차의 브랜드 퍼스낼리티는 K3, K5, K7, K9 전체에 걸쳐 공통되고 일관되게 존재할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이런 브랜드 퍼스낼리티의 존재는 K3나 K5 등 하위 차종에서는 상향 평준화라는 유리한 방향으로 작용할 공산이 크지만, 반대로 K9에선 하향 평준화로 움직일 가능성이 높다.

독일 럭셔리 세단을 대체할 브랜드 개발이 궁극적 목표라면, 기아차는 이 시점에서 브랜드 전략에 대해 심각한 고민을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된다. 과거 일본 자동차 회사들이 우수한 품질을 바탕으로 글로벌 시장에서 이코노미 세단으로 훌륭한 성과를 거뒀지만 럭셔리 시장엔 도요타 렉서스, 닛산 인피니티, 혼다 아큐라 등 전혀 다른 브랜딩으로 진출한 사례가 시사점이 될 것이다.

럭셔리 브랜드로 인식되기 위해서는 고객들이 럭셔리에 대한 진정성을 인정해야 한다. 이탈리아 레스토랑의 셰프가 피자 본연의 맛을 내기 위해 화덕을 이탈리아에서 공수해왔다고 하자. 많은 소비자들은 맛의 차이를 느끼지 못할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구별할 수 있는 고객들에게는 셰프의 진정성이 각인될 것이다.

럭셔리 브랜드의 개척은 그러한 진정성에 대한 기업의 헌신(commitment)에서 시작돼야 한다. 어쩌면 그 시작은 성공한 기존 브랜드의 유혹을 뿌리치는 고통에서 비롯되는 것인지 모른다. K5와 K7의 성공이 럭셔리 세단 브랜딩에 독이 돼버린 것은 아닌지, 이미 성공한 K시리즈 외의 다른 브랜드는 회사 내에서 금기시돼 버린 것은 아닌지 등을 점검하는 것이 이 시점에서 그리 늦지 않은, 의미 있는 작업일 것이다.

코칭 포인트 2
어중간한 경쟁 포지셔닝에서 탈출하라

K9의 성과가 기대에 못 미치는 것은 시장에서 ‘어중간한 상태(stuck in the middle)’에 빠졌기 때문이다. K9의 ‘경쟁 포지셔닝(competitive positioning)’이 시장에서 제대로 먹히지 않고 있다. 이때 경쟁 포지셔닝은 제품 특성이나 가격대만을 의미하는 개념은 아니다. 신차를 출시하는 전략적 목표를 중심으로 목표 고객, 제품 성능, 디자인, 브랜드 이미지, 가격, 광고, 영업, AS, 생산, 구매, 물류 등이 일관성 있게 조율될 때 비로소 시장에서 특정 포지셔닝을 차지할 수 있다.

K9은 당초 독일 럭셔리 세단을 경쟁 상대로 지목하고 BMW 7시리즈와 5시리즈, 메르세데스 벤츠 S클래스와 E클래스, 혹은 현대차 에쿠스와 제네시스 사이에 포지셔닝을 시도했다. 하지만 소비자들은 아직까지 K9의 포지셔닝을 인정하는 데 혼란스러워하고 있다.

소비자들은 기아차의 바람과 달리 K9을 상위가 아닌 하위의 경쟁 차종과 비교하고 있다. 특히 기존 K시리즈는 예컨대 그랜저, 쏘나타, 아반떼 등 명확한 경쟁 포지셔닝을 설정하고 경쟁 제품 대비 탁월함을 강조해 성공했다. 반면 K9은 같은 K시리즈의 브랜드를 사용하면서도 새로운 상위 포지셔닝을 창출하려다 보니, 소비자들이 K시리즈의 연장선에서 K9의 위상을 인식하는 데 그치고 있다.

소비자들이 인식하는 하위 포지셔닝의 경쟁 차종보다 K9이 탁월하다는 것을 설득하기 어렵다면, 경쟁 포지셔닝을 원점에서 재검토해볼 필요가 있다.

코칭 포인트 3
기아차가 아닌 K9을 팔아라

중저가 시장에서 성공을 거둔 기업들이 프리미엄 시장에 진출할 때 겪는 어려움은 해당 기업이 기존에 갖고 있는 브랜드 이미지다. 프리미엄 시장의 소비자들은 가격에 상대적으로 덜 민감한 반면 남들과 차별화된 브랜드 이미지를 소비하고자 하는 욕구가 강하기 때문이다.

기아차가 K9의 시장 안착에 어려움을 겪는 이유는 대형 고급차의 잠재 고객에게 K9만의 차별화된 브랜드 이미지를 제공하는 게 쉽지 않기 때문이다. BMW와 벤츠, 그리고 국내 다른 대형차와 경쟁하기 위해서는 자동차의 성능과 디자인의 개성뿐만 아니라 기아차의 이미지를 벗는 것이 중요하다.

최근 뉴욕에서 열린 렉서스 발표회에서 도요다 아키오 도요타자동차 사장은 “자동차는 사용자의 오감을 일깨워야 하고, 특히 아름다운 차를 볼 때 느끼는 정서적 유대감이 매우 중요하다(경쟁자의 철학)”고 말했다. 가격 대비 성능 같은 경제적 가치를 넘어 ‘K9’ 브랜드 자체가 좋아 차를 소유하려는 고객을 늘려야 한다. 도움말 주신 비즈&라이프 자문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