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과 맛있는 만남] 한정화 중소기업청장 "中企 정책 미래像 보여줄 큰 그림 그리는 중"

정책 만드는 공무원들 책 읽어야
세밀함에 치중하면 놓치는 게 많아
中企·소상공인 다 보듬어
사자가 풀 뜯어 먹으면 초원 망가져
진입장벽 만들어 약자 보호할 것
학교에 있을 때 중기 정책의 효과가 있었는지, 어떤 목표를 갖고 시행하는지 항상 궁금했습니다.
그래서 앞으로 5년 뒤 중소기업계의 모습을 그려보는 시뮬레이션 작업을 시작했습니다.
박근혜 정부 중소기업 정책의 미래상을 보여주는 거죠. 내외부 전문가들이 투 트랙으로 작업을 할 겁니다.
정동헌 기자 dhchung@hankyung.com
한정화 중소기업청장(59)이 최근 새로 시작한 것이 있다. 독서토론회다. 그는 직원들에게 “정책을 만들 때 큰 그림을 염두에 두라”고 말한다. 그런 차원에서 공무원들도 독서가 필요하다는 게 그의 지론이다. 취임 100일을 맞은 지난 1일, 한 청장은 독서토론회 첫 행사에서 미국의 미래학자 대니얼 핑크의 저서 ‘새로운 미래가 온다’를 주제로 발표하고 20여분 동안 간부들과 토론을 벌였다. 행사는 앞으로 매주 월요일 간부회의 전에 국별로 돌아가며 주제 발표를 한 후 토론하는 형식으로 계속할 예정이다. 한 청장은 “개인적으로 책 읽기를 좋아하는데 바쁜 일정 때문에 짬을 내기 힘들다”며 “업무에 도움을 받고 개인적인 교양도 쌓을 겸해서 토론회를 시작했다”고 말했다.

직원들의 반응은 어떨까. 기대 반 우려 반이다. 중소기업청의 한 간부는 “학자 출신 청장이 취임하면서 새로 생긴 풍속도”라며 “부담은 되지만 억지로라도 책을 읽게 되면 얻는 것도 많을 것 같다”고 말했다.

한 청장과는 서울 마포구에 있는 전통 한식당 '아리랑'에서 만났다. 이날도 다섯개가 넘는 일정을 끝내고 도착한 한 청장은 “가야금 연주하는 식당이 근방에 두 군데인데 그중 하나”라며 “이곳에 오면 마음이 편해져 좋다”고 말했다.

과로로 몸살감기

독실한 크리스천으로 교회 장로이기도 한 그는 술로는 가벼운 백세주를, 코스 메뉴로는 푸짐한 ‘댁정식’을 골랐다. 댁정식 코스는 전복죽에 잡채, 모둠회(전복 포함), 등심구이, 자연송이탕, 낙지볶음, 가자미구이, 간장게장 등으로 짜여 있다. ▷첫 교수 출신 중기청장인데 어떻습니까.

“제가 체력은 좋은 편인데 얼마전 감기몸살로 2주 정도 아팠습니다. 하루 평균 6~7개 행사에다 내부 회의까지 챙기다 보니 솔직히 힘듭니다. 국가에 대한 사명감이 없으면 하기 힘들다는 생각이 들어요. 중기청은 특히 맡은 분야가 넓어서 더 그런 것 같습니다. 중소기업이 232만개인데 여기엔 재래시장 소상인들까지 다 포함돼 있습니다. 취임하고 나서 1주일 후 재래시장에 갔는데 봉제업 하시는 분이 ‘청장님은 학교에 있다 오셔서 현장 일일 체험을 해봐야 한다’고 하시더라고요. 하루는 금형공장 가고 하루는 봉제공장 가는 식으로. 아마 그랬으면 지금쯤 쓰러졌을지도 모릅니다.”

▷바쁜데 독서 토론회까지 한다고 들었습니다. “공무원들이 마이크로한 정책을 하다 보면 큰 그림을 놓칠 수 있습니다. 책을 읽어야 합니다. 여기 와서 가장 아쉬운 게 책 읽고 지인들과 세미나 하면서 새로운 것을 배우지 못하는 겁니다.”

“상생에 대한 인식 바꿔야”

대화 중 한복 차림의 종업원이 매콤하게 양념된 낙지볶음과 소고기 편채를 내왔다. 소고기 편채는 불에 익힌 소고기를 기름과 고춧가루로 버무린 부추에 싸먹게 돼 있다. 한 청장은 음식을 맛있게 먹는 스타일이다. 적당하게 양을 조절해 젓가락으로 집은 뒤 입에 넣고 맛있게 씹는 소리를 냈다. 대화가 경제민주화 쪽으로 흘러가자 그는 온화한 이미지와 다른 강경한 모습을 보여줬다.

▷‘기울어진 운동장론’을 강조하는 이유가 있습니까.

“운동장이 기울어져 있으면 저쪽 골대에서 차면 이쪽 골대까지 공이 날아오는데, 이쪽에선 아무리 차도 중앙선을 못 넘어갑니다. 축구 경기를 하면 항상 10-0 이렇게 되는 거죠. 그게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현실입니다. 게임을 정당하게 하려면 운동장 기울기부터 바로잡아야 합니다. 또 다른 문제는 사자가 풀까지 뜯으면 초원은 황폐화된다는 사실입니다. 이게 적합업종 문제입니다. 울타리를 치는 게 문제가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어쩔 수 없이 장벽을 만드는 겁니다. 이걸 대기업들이 조금만 깊이 생각해보면 이런 건 하지 말아야 하겠다는 생각을 할 수 있는데, 아직 우리나라 대기업들은 여기에 못 미치는 경우가 있습니다.”

▷대기업 만나 설득하겠다고 했는데 성과가 있었습니까.

“취임 후 전국경제인연합회와 심포지엄을 하면서 ‘대기업이 선도형 동반성장에 나서야 한다’고 했더니 대기업 측 참석자가 ‘정부가 그렇게 대기업을 옥죄면 굳이 부품 조달을 한국에서 할 필요가 있나. 중국으로 가면 되지’라고 하더군요. 대기업들의 인식이 아직 이렇습니다. 그러나 잘 봐야 합니다. 앞으로 3년이면 대기업 우위의 구도가 깨질 겁니다. 권력이 중소기업과 소상공인 쪽으로 넘어가고 있습니다. 지금 국회의원들이 왜 갑을관계를 얘기하고, 중기 살리기를 외치는지 그 흐름을 잘 봐야 합니다.”

“소상공인 인위적 구조조정 불가능”

대화의 열기가 뜨거워질 무렵 삶은 돼지보기를 명이나물과 백김치에 싸서 먹을 수 있는 보쌈과 홍어무침이 함께 나왔다. 새 안주에 백세주를 한잔 더했다. 그는 중소기업과 소상공인 문제에 대한 관심을 부친의 일을 들어 설명했다.

“제 부친이 소상인이셨습니다. 군에서 나와 작은 사업을 하셨는데 제대 후 돌아와보니 사업이 어려워져 집안이 위태로웠습니다. 그때 왜 중소기업이나 소상공인들은 항상 어렵게 될 수밖에 없는지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됐습니다. 경제장관회의를 하면 장관들도 한마디씩 다 합니다. 관심들은 많은데 현실적으로 문제를 깊이 있게 이해하고 대안을 제시하는 사람은 많지 않아요.”

▷소상공인 지원도 필요하지만 구조조정을 해야 효율성을 높일 수 있다는 지적도 많습니다.

“소상공인 문제 해결은 간단합니다. 진입장벽을 만들고 구조조정한 뒤 경쟁력이 있는 분야에 지원하는 겁니다. 2005년에 그런 대책을 내놨었습니다. 빵집을 내려면 몇 개월 전에 제빵사 교육을 받아라, 미용실을 개업하려면 미용사 자격증을 받고 교육을 받은 뒤 하라는 내용이었습니다. 그래서 어떻게 됐습니까. 솥뚜껑 시위가 벌어지고 한바탕 난리가 났습니다. ‘먹고 살기 힘들어 창업했는데 교육을 받고 자격증도 강화하겠다는 게 말이 되느냐’ ‘탁상행정 그만둬라’는 비난이 쏟아졌습니다. 결국 백지화됐습니다. 진입장벽을 만드는 것만으로는 안 됩니다. 구조조정도 말이 쉬워 구조조정이지, 그 많은 실업자는 누가 구제합니까.”

▷그냥 놔두자는 얘기인가요.

“중소기업이 잘되고 창업이 활발해져 생계형 자영업자들이 그쪽으로 방향을 돌리게 유도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국민소득이 1만달러로 넘어가면 자영업이 줄어듭니다. 그러다 2만달러, 3만달러로 늘어나면 학교나 연구소에서 새로운 사업기회를 찾으려고 도전하는 기회추구형 창업이 늘어납니다. 우리가 만들어야 할 새로운 흐름이 바로 이런 기회추구형 창업을 늘리는 겁니다.”

▷해법이 쉽지 않아 보입니다.

“우리는 ‘선진화 혁명’의 기로에 있습니다. 50년 전 근대화 혁명을 했다면 지금은 선진화 혁명을 해야 하는 때입니다. 수직사회에서 수평사회로, 개인능력사회에서 네트워크사회로 가야 합니다. 그런데 거대 기업 몇 개가 사회를 지배하고 있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거기에 못 들어가면 기회가 없으니까 사회가 참 재미없어지는 거죠. 기회추구형 창업을 통해 꿈을 일궈내고 꿈을 가진 젊은이들이 늘어나는 사회. 이런 사회를 만들 수 있느냐 없느냐가 선진화 사회로의 진입을 가름할 겁니다.”

中企정책 미래 조감도 그려보는 중

노릇노릇 보기 좋게 구워진 가자미구이와 간장게장이 된장찌개와 함께 반찬으로 나왔다. 마지막으로 꼭 소개하고 싶은 정책이 있는지 물었다.

“학교에 있을 때 중기 정책의 효과가 있었는지, 어떤 목표를 갖고 시행하는지 항상 궁금했습니다. 그래서 앞으로 5년 뒤 중소기업계의 모습을 그려보는 시뮬레이션 작업을 시작했습니다. 박근혜 정부 중소기업 정책의 미래상을 보여주는 거죠. 내외부 전문가들이 투 트랙으로 작업을 할 겁니다. 15명 정도의 전문가 집단이 지난 5년간의 중소기업 정책을 평가하는 작업도 시작했습니다. 과거 정책을 리뷰하는 겁니다. 저도 이 작업의 결과물이 어떻게 나올지 기대됩니다.”
한정화 중기청장의 단골집 아리랑 가야금 소리에 '힐링'…소고기편채 씹으면 힘이 절로

정겨운 가야금 소리를 들으며 고풍스러운 분위기에서 한정식을 즐기고 싶다면 서울 마포구 용강동에 있는 '아리랑'이 제격이다. 이 곳에 가면 서울시내 한복판에서 저녁마다 울려퍼지는 가야금 병창을 들을 수 있다.

메뉴는 소고기편채, 철판불고기, 명이보쌈, 양념꽃게장 등 다양하다. 한정화 청장이 선택한 것은 ‘댁정식’이다. 이 코스는 전복죽으로 시작해 모둠회, 등심구이, 자연송이탕, 낙지볶음 등이 나온다. 서울 마포구 용강동 67의 1 인우빌딩 3층. 아리랑 정식 2만원, 매(梅)정식 3만8000원, 댁정식 5만5000원, 국(菊)정식 7만8000원.

박수진/김희경 기자 psj@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