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감몰아주기 첫 과세] 수직계열화 등 정상거래에도 세금 부과…기업 불만 '폭증'

동일지분 합작사 세금 주체놓고 '오락가락'
지나친 내부거래 규제…계산방식도 복잡
이달부터 일감몰아주기 관련 상속·증여세 신고 납부가 시작된 가운데 기업들이 복잡한 관련 법 조항 때문에 불만을 토로하고 있다. 한경DB
여천NCC는 에틸렌·프로필렌 등 석유화학 기초원료를 만드는 회사다. 한화그룹 계열사인 한화케미칼과 대림그룹 계열사인 대림산업은 석유화학 원재료를 안정적으로 공급받기 위해 1999년 합작으로 이 회사를 설립했다. 지분은 두 회사가 50%로 똑같다. 올해 처음 시행되는 일감몰아주기 관련 상속·증여세 대상에 여천NCC도 포함돼 있다. 다른 계열사를 통해 여천NCC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이나 이준용 대림그룹 회장이 세금을 내야 한다.

문제는 정확히 반반씩 지분을 나눠갖고 있는 여천NCC의 세금을 누가 내야 하느냐다. 관련 세법은 ‘2명(2개 법인)이 50%씩 지분을 보유한 경우 사실상 영향력을 행사하는 지배주주가 과세대상이다’고 규정하고 있다. 그런데 여천NCC는 한화와 대림 측에서 대표이사도 공동으로 두고 있다. 한화와 대림 두 그룹이 똑같은 영향력을 행사한다는 의미다. 대림그룹 세무담당자는 “지난달 국세청에 유권해석을 요청했는데 처음엔 김 회장과 이 회장 모두 과세 대상이라고 했다가 이달 초 간접보유지분이 더 많은 이 회장만 과세 대상이라고 통보해왔다”며 “우리도 뭐가 맞는지 헷갈린다”고 말했다. 일감몰아주기 관련 상속·증여세 신고납부가 이달 1일 시작된 가운데 기업들의 불만이 폭증하고 있다. 복잡한 관련 법 조항 탓에 과세 대상이 누구인지, 얼마의 세금을 내야 하는지를 파악하기가 쉽지 않아서다. 정상적인 거래까지도 일감몰아주기로 규정하고 있다는 볼멘소리도 나온다.

◆헷갈리는 일감 과세법

기업들이 가장 혼란스러워하는 점은 ‘누가 과세 대상이냐’는 것이다. 관련 세법은 수혜법인(일감을 받은 기업)의 ‘지배주주’를 과세 대상으로 규정하고 있다. 문제는 지배주주의 개념이다. 수혜법인의 지분 3% 이상을 보유한 대기업 오너 일가라는 게 세법상 정의인데, ‘지분 3%’를 계산할 때는 직접보유지분과 간접보유지분을 따져야 한다.

예컨대 대기업 총수 김××씨가 A기업(수혜법인)의 지분 3%를 갖고 있다면 계산은 간단하다. 그런데 김씨가 다른 계열사를 통해 간접적으로 A기업에 영향력을 행사한다면 셈법은 복잡해진다. 김씨가 B사 지분을 50% 갖고 있고, B사는 C사의 지분 30%, C사는 A사 지분 20%를 보유한 경우를 가정해보자. 이 경우 김씨가 A사 지분을 단 한 주도 갖고 있지 않지만 관련 세법에 따라 A사에 대한 김씨의 간접보유지분은 3%(0.5×0.3×0.2×100)가 된다. 기업 입장에선 대주주가 보유한 모든 계열사 및 관계사 지분관계를 따져야 한다. 삼일회계법인 관계자는 “실제 기업들의 지분구조는 이보다 훨씬 복잡하다”며 “이 때문에 하루에도 과세 대상이 누구인지를 묻는 기업 세무담당자들의 전화가 수십통 걸려온다”고 전했다.

여천NCC의 사례처럼 두 기업이 5 대 5 비율로 합작사를 세운 경우도 기업들이 헷갈려 하는 대목이다. 이준용 회장과 김승연 회장이 계열사를 통해 지분을 나눠갖고 있는데도 간접보유지분이 누가 더 많으냐에 따라 과세 대상이 결정되는 구조다. 그렇다 보니 이 회장은 합작사인 여천NCC에 일감을 몰아줘 세금을 내야 하는데, 똑같은 입장인 김 회장은 세금을 내지 않는 결과가 나오는 것이다. ◆정상적인 거래도 무차별 과세

일감 과세법이 지나치게 광범위하게 기업 내부거래를 규제하는 것도 문제점이다. 중소기업인 미원EOD가 대표적인 사례다. 이 회사는 계면활성제를 만드는 곳으로 미원상사가 100% 지분을 보유하고 있다. 계면활성제, 산화방지제, 타이어첨가제, 고무첨가제 등을 만드는 미원상사는 사업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3년 전 계면활성제 원료를 생산하는 미원EOD를 자회사로 분리했다.

미원EOD를 통해 계면활성제 원료를 안정적으로 공급받기 위한 일종의 수직계열화를 시도한 것이다. 100% 출자사란 점에서 회사만 나눴을 뿐이지 미원상사와 미원EOD는 사실상 같은 회사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이런 거래관계도 관련 세법상 일감몰아주기로 판단돼 미원상사 대주주는 세금을 내야 한다. 미원EOD 관계자는 “미원상사가 100% 지분을 보유하고 있기 때문에 미원EOD가 내부거래로 올리는 모든 수익은 미원상사에 귀속되지 대주주가 이득을 얻는 게 아니다”며 “현행법 조항은 세금을 안 내려면 다시 합병하라는 것이나 다름없다”고 지적했다. 경제계는 관련 세법이 기업 대주주가 내부거래로 실제 이익을 얻지 않았는데도 증여를 받은 것처럼 규정하는 법 조항 자체가 문제라고 지적한다. 학계와 회계법인 업계에선 관련 세법이 위헌 소지가 있다고 보고 있다.

한 회계법인 관계자는 “계열사 간 내부거래로 이익을 얻는 건 해당 기업이지 대주주가 아니다”며 “일감몰아주기로 해당 기업의 주가가 올라 대주주가 배당이득을 얻으면 소득세를 매기는데 증여세를 또다시 부과하는 건 이중과세”라고 지적했다.

이태명/정인설 기자 chihir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