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철·현대청운고는 되고 하나고는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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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사이드 Story 기업이 세운 학교 '임직원 자녀 전형' 이중잣대 논란포항제철고와 하나고는 비슷한 점이 많다. 일단 손꼽히는 명문 고교다. 포스코와 하나금융그룹이라는 특정 기업이 설립한 점도 같다. 매년 모기업으로부터 일정액의 운영자금을 지원받는다. 정원의 일정 비율을 임직원 자녀에게 우선 배정하는 것도 똑같다.
교육법 대신 은행법 우선 적용…하나금융은 하나고 지원 못해
금융위 "고객돈으로 장사하는 금융사는 엄격한 기준 필요"
앞으론 달라진다. 포항제철고는 바뀌는 게 없다. 하나고가 문제다. 하나금융으로부터 자금을 지원받지 못하거나, 임직원 자녀에 대한 우선 배정을 없애야 한다. 정부가 최근 은행법 시행령 등을 개정해 임직원 우대와 같은 대가성이 있으면 출연을 금지키로 했기 때문이다. 비슷한 성격의 학교에 이중잣대를 적용하는 것이 뭔가 어색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기업과 학교가 ‘윈윈’
임직원 자녀에 대한 별도 전형을 두고 있는 고교는 5개다. 포항제철고(포스코) 광양제철고(포스코) 현대청운고(현대중공업) 인천하늘고(인천공항공사) 하나고(하나금융) 등이다. 충남 아산 탕정에 삼성디스플레이 등이 출연한 은성고가 내년 개교하면 6개로 늘어난다.
이들은 모기업에서 운영자금을 지원받는 대신 정원의 일정 비율을 임직원 자녀에게 배정하고 있다. ‘기업체가 설립한 학교는 복지 증진을 위해 입학정원의 일정 비율을 종업원 자녀로 선발할 수 있다’고 정한 초ㆍ중등교육법 시행령에 근거해서다. 포항제철고는 포스코에서 매년 90억원 안팎을 지원받아 기숙사 운영비, 장학금, 시설 보수 등에 쓴다. 대신 정원(455명)의 60%를 임직원 자녀로 뽑는다. 교육감의 승인을 얻어 정한 비율이다.
70%를 포스코 임직원 자녀로 뽑는 광양제철고, 현대중공업의 현대청운고(15%), 인천공항공사의 인천하늘고(45%), 삼성 4개 관계사가 출연해 내년 3월 문을 여는 은성고(70%)도 마찬가지다. 교육부는 직원 복지증진과 교육발전에 모두 도움이 된다는 판단에서 임직원 자녀 선발을 허용했다.
◆이중잣대냐, 정당한 차별이냐 이처럼 관련법상 허용되는 임직원 자녀 전형을 하나고에만 금지하는 내용의 은행법 시행령 개정안이 최근 통과돼 형평성 논란이 불거지고 있다. 이 안은 하나고가 하나금융으로부터 자금지원을 받으려면 임직원 자녀 전형을 없앨 것을 주문하고 있다.
은행법은 특별법의 성격을 갖고 있기 때문에 하나고는 임직원 자녀 전형의 폐지 여부를 검토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금융위원회는 “고객 돈으로 장사하는 금융사 대주주의 사익에 회사가 이용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일반 기업보다 엄격한 기준이 적용돼야 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재계의 한 관계자도 “하나고를 제외한 다른 곳은 모두 지방에서 국가 기간산업을 영위하는 데 대한 배려 차원이 있는 만큼 차별로 보기 힘든 측면도 있다”고 말했다. 하나금융의 지원이 없다고 해서 하나고가 당장 문을 닫아야 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사회적배려 대상자(매년 40명)로 입학한 학생들에게 지원해 온 장학금 지급이 어렵게 되는 등 운영 전반의 타격은 불가피하다. 2008년 서울시가 은평 뉴타운에 자립형 사립고를 유치키로 하고 공모를 거쳐 하나금융을 선정할 당시 관련법에 따라 임직원 자녀 전형은 당연하다는 공감대가 있었다. 이래저래 이중잣대 논란은 쉬 가라앉지 않을 전망이다.
김일규 기자 black0419@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