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부문 재정통계 공청회] 공기업 빚 574조 국가부채로…한국 '재정건전國' 더 이상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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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국제기준 맞춰 계산해보니 1000조 훌쩍8분기 연속 0%대 저성장에 시달리고 있는 한국이 경제의 유일한 버팀목으로 내세워 왔던 재정 건전성이 더 이상 위력을 발휘할 수 없게 됐다. 공식 국가 부채 통계에 가려져 있던 공기업 부채 500조원 이상이 내년부터 나랏빚에 고스란히 잡히기 때문이다. 유럽 재정위기를 통해 ‘숨겨진 빚’의 공포를 깨달은 국제사회가 앞으로 공공부문 부채를 남김 없이 밝히기로 하면서다. 새 국제 기준에 따른 한국의 부채는 대충 계산해도 1000조원이 넘는다.
배보다 배꼽이 크다
일반정부 부채는 468조…공기업 빚이 더 많아
부채비율 75%로 껑충
멕시코·필리핀보다 높아…한은 통안채 169조 포함
◆나랏빚에 깐깐해진 국제사회 기획재정부와 한국조세연구원은 4일 서울 aT센터에서 ‘공공부문 재정통계 산출 방안 공청회’를 열고 새로운 공공 부채 산출 방법을 제시했다. 핵심은 중앙정부와 지방자치단체뿐 아니라 공기업까지 ‘모든 공공부문’의 부채를 아우르는 것. 정부는 이 같은 방식으로 내년 3월 새로운 ‘공공부문 부채’ 수치를 발표하기로 했다. 이태성 기재부 재정관리국장은 “복지 지출이 늘어나면서 재정 관리의 중요성이 높아졌다”며 “국정과제 차원에서 공공 부채 관리를 강화하기 위해 통계부터 재편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해 12월 산출한 한국의 부채 규모는 468조6000억원(2011회계연도 기준). 국내총생산(GDP) 대비 37.9%로 일본(205.3%) 미국(102.2%) 등보다 훨씬 낮다. 이는 2001년 국제통화기금(IMF)이 제시한 국제 기준에 따라 ‘일반정부 부채’를 계산한 것이다. ‘일반정부’란 중앙정부와 지자체 외에 공공기관 가운데 비영리 공공기관(233개)을 더한 것이다. 우선 공공기관운영에 관한 법률에서 관리하는 127개 중앙공기업이 산출 대상에 포함된다. 도시개발과 철도 등 지방공기업 50곳의 부채도 합산해야 한다. 지난해 기준으로 이들의 총 부채는 52조2000억원. 공공기관운영에 관한 법률상 관리 대상은 아니지만 엄밀히 보면 공기업인 곳도 있다. 한국은행 금융감독원 KBS EBS 산업은행 산은지주 기업은행 등 7군데다. 이 가운데 한은의 대표적인 부채는 통화안정증권으로, 지난 5월 말 기준 발행 잔액은 169조원에 달한다.
◆‘국가부채 30% 시대’ 막 내린다 대표적인 항목만 추려봐도 공기업 부채는 574조8000억원에 이른다. 일반정부 부채(468조6000억원)에 이를 더한 공공부문 부채는 1043조4000억원가량이다. 공공부문 사이에 이뤄진 내부 거래를 제외해도 1000조원 안팎을 기록할 가능성이 높다. LG경제연구원에 따르면 이렇게 계산한 공공부문 부채는 GDP 대비 75.2%로 일본(308.2%)보다 낮지만 멕시코(38.7%) 필리핀(18%)보다는 높다.
정부는 그동안 “재정 건전성은 안심할 수 있다”며 ‘국가부채 30% 선’을 강조해 왔다. 하지만 한 민간연구원의 연구위원은 “앞으로 공공부문 부채를 아우르게 되면 일반정부 부채에 바탕을 둔 이 수치 자체가 쓸모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새로운 부채 통계가 한국에 특히 불리하다는 지적도 있다. 공기업 부채가 유난히 많기 때문이다. 세계은행에 따르면 한국의 일반정부 부채 대비 공기업 부채 비율은 118.3%로 최고 수준이다. 익명을 요구한 또 다른 전문가는 “내년에 새 부채 통계가 공개되면 국제 신용평가사 사이에서 ‘한국의 부채가 생각보다 많다’는 평가가 나올 수 있다”고 우려했다.
세종=김유미 기자 warmfron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