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자카르타의 시위대가 주는 교훈

"油價보조 복지중단에 시위폭발
문제 알고도 외면한 리더십 책임
송전탑 등 당장에 공감대 넓혀야"

이정동 서울대 교수, 기술경영경제정책 leejd@snu.ac.kr
최근 자카르타를 위시해서 인도네시아 거의 모든 도시에서 격렬한 시위가 벌어졌다. 검은 연기, 최루탄, 피 흘리는 시위대와 몽둥이를 든 진압경찰의 사진이 인터넷을 가득 메웠다. 이번 시위의 원인은 기름값 때문이다. 지난달 17일 인도네시아 의회가 휘발유와 경유에 주어지던 보조금을 낮추는 법률안을 통과시켰다. 그 결과 사실상 휘발유 가격이 44%, 경유가격이 22% 인상될 것이므로, 그동안 싼 유류를 써오던 국민들이 들고 일어난 것이다.

유류 보조금은 수하르토 집권 이래 국민의 일상 경제를 지원하는 대표적인 복지정책으로서 수십년간 지속돼 왔다. 그러나 보조금의 규모가 눈덩이처럼 불어나 인도네시아 경제의 최대 난제로 등장한 지는 오래전의 일이다. 일단 정부재정으로 충당되는 보조금의 규모 자체가 커서 작년 한 해만도 200억달러를 넘어선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이 금액은 인도네시아 정부재정의 16%, 국내총생산(GDP)의 4%에 육박하는데, 정부재정 운용상 큰 부담이 될 것은 자명하다. 그 결과 교육, 보건 및 사회간접자본에 투자해야 할 정부재정이 부족해져서 낙후된 기반인프라가 국가경제의 발목을 잡는 지경에 이르고 있다. 인도네시아는 값이 싼 유류의 과소비가 문제가 되고 있고, 막대한 원유 매장량 및 원유 수출량에도 불구하고, 오래전부터 휘발유와 경유 등을 순수입하는 딱한 처지가 됐다. 유류에 대한 보조금은 역진적 성격을 가지고 있어, 대부분의 혜택이 중산층 이상에 돌아가고 있으며, 보조금 정책의 집행과정을 둘러싸고 부정부패의 고리가 형성돼 있는 것도 큰 문제다. 대체에너지 개발 등 미래를 내다보는 활동도 보조금을 받고 있는 값싼 유류와 경쟁이 되지 않기 때문에 사실상 올스톱된 상태다.

이 유류보조금의 문제는 오래전부터 알려져 왔고, 인도네시아 안팎의 전문가들이 이것을 고치지 않고서는 인도네시아의 경제 발전을 기대하기 어렵다고 입을 모아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도네시아 정부와 의회의 리더들은 문제를 치유하기 위한 결단을 내리지 못했다. 그 이유는 다양하지만, 결과적으로 ‘내 임기 안에는 손을 대지 않는’ 방식으로 슬슬 넘겨온 것이다. 자카르타를 뒤덮은 시위대의 외침과 흰색 최루가스는 국가가 당면한 근본적인 문제를 정면으로 직시하지 않고, 결단을 미룰 때 그 결과가 무엇인지를 압축해서 보여준다.

강 건너 불구경하듯 남의 나라 이야기를 할 때가 아니다. 밀양 송전탑 사태를 두고, 대통령이 국무회의에서 7년 동안 무엇을 하고 있었느냐고 질타했다는 기사가 있었다. 문제가 있다는 것을 모두 알고 있었고, 전문가들의 경고가 더해졌지만, 결국 정부와 정치권의 리더들은 해결 노력을 본인 임기 밖으로 밀어냈다. 전기요금은 어떤가. 수십년간 억지로 눌러놓은 결과 미래세대가 갚아야 할 공적부채가 기하급수적으로 누적되고 있고, 에너지 과소비형 산업구조는 개선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이런 문제가 고쳐지지 않으면, 장기적으로 볼 때 이 땅의 누군가가, 그 언젠가는, 또 어떤 식으로든 그 부담을 지게 돼 있다. 지금 당장 문제가 터지지 않으니 그저 오늘 내일 아무 일 없는 듯 지나갈 따름이다. 인도네시아의 유류보조금 사례를 들여다보니, 에너지문제의 대표적인 예로 송전탑과 전기요금 문제를 이야기했지만, 답을 알고서도 ‘내 임기 밖’으로 결단을 미루고 있는 문제는 한두 가지가 아니다. 고갈될 것을 뻔히 알고서도 마냥 시간을 보내고 있는 국민연금과 건강보험의 재정건전성 문제도 마찬가지다. 몇 년 더 묵히면 묵힐수록 문제가 심각해질 뿐 시간이 약이 되지 않는다.

실무관료를 앞에 놓고, 뭐 했느냐고 닦달할 사안이 아니다. 정치적 리더들이 기꺼이 짊어져야 할 책임의 문제다. 물대포에 맞서는 시위대가 등장하기 전에, 장기적으로 발생할 수 있는 문제에 대해 터놓고, 선제적으로 의제화해 나가야 한다. 그 해법의 장단점을 솔직하게 설명하고, 국민의 동의를 묻고, 또 공감대를 구해야 한다. 그것이 진정 한국의 미래를 걱정하는 정치 리더들이 해야 할 일이다.

이정동 < 서울대 교수, 기술경영경제정책 leejd@snu.ac.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