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IZ Insight] '모바일 빅뱅' 이끈 KT…이젠 세계 시장 '정조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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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ver Story - KT2009년 여름. 임원회의를 끝내고 집무실로 돌아온 이석채 KT 회장은 고민에 빠졌다. 회의 주제는 애플 아이폰 도입이었다. 이 회장은 KT가 아이폰을 들여와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일부 임원은 반대했다. 삼성전자와의 관계 때문이었다. 삼성전자는 KT에 휴대폰을 공급한다. 임원들은 경쟁사인 애플 제품을 들여오면 삼성전자와의 관계가 나빠질 것을 걱정했다. 아이폰의 위력이 크지 않을 것이란 의견도 있었다. 당시만 해도 국내에서 아이폰은 일부 얼리어답터들 사이에서만 인기 있는 제품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회장은 아이폰이 통신시장은 물론 국민의 일상생활에까지 엄청난 변화를 몰고 올 것으로 예상했다.
세계 최고 와이파이 기술력으로 스마트폰 확산 불 붙여
IPTV·위성·스마트TV로 콘텐츠 융합서비스 혁신…'거실의 혁명' 준비 중
해외시장 개척 활발…르완다 등서 성과…"2년내 매출 4조 해외서 올릴 것"
그해 11월28일. KT는 아이폰을 시장에 내놓았다. 반응은 예상 밖이었다. 100일 만에 40만대가 팔렸다. 9개월 만에 100만대를 넘어섰다. 기껏해야 20만대 정도 팔릴 것이란 예상을 뒤엎은 것이다. ‘아이폰 쇼크’라는 말이 나왔다. 삼성전자와 SK텔레콤은 부랴부랴 대응에 나섰다. 두 회사의 앞글자를 따서 ‘SS프로젝트’에 착수했다. 7개월 만인 2010년 6월 ‘갤럭시S’를 내놓았다. KT의 아이폰 도입 3년 만에 국내 스마트폰 이용자는 37배 증가했다. 이동통신 가입자 10명 중 6명이 스마트폰을 이용하게 됐다. 스마트폰 이용자가 큰 폭으로 늘자 모바일 애플리케이션(앱·응용프로그램)과 광고 시장이 급팽창했다. 새로운 산업 생태계가 만들어졌다. KT가 ‘모바일 빅뱅’을 주도한 것이다. ◆무선, 유선을 만나 강해지다
모바일 빅뱅은 아이폰을 들여온 것만으로 일어난 것이 아니다. 언제 어디서나 끊김 없이 데이터를 주고받을 수 있는 망이 없다면 스마트폰은 무용지물이다. 세계적인 와이파이(무선인터넷) 기술력을 갖춘 KT는 와이파이존을 공격적으로 늘렸다. 스마트폰 도입 초기 데이터 요금을 내는 데 익숙지 않았던 이용자들이 쉽게 스마트폰을 이용할 수 있도록 진입장벽을 낮췄다. 스마트폰이 확산되는 데도 기여한 셈이다.
KT의 와이파이 경쟁력은 유선망에서 나온다. 와이파이 서비스는 유선망에 접속장치(AP)를 장착해 구현한다. AP를 이용해 유선 데이터 도로와 무선 데이터 도로를 연결해 도로를 넓히는 것이다. 유선망은 KT가 전통적으로 강한 분야다. KT의 와이파이 경쟁력이 높은 이유다. KT는 지난 4월 수도권 등 전국 주요 지역에서 기가 와이파이 서비스를 시작했다. 국내 통신사 가운데 처음이었다. 기가 와이파이를 적용하면 데이터 전송 속도가 최대 1.3Gbps(초당 기가비트)에 이른다. 현재 스마트폰 등에서 주로 쓰는 와이파이 서비스(300Mbps·초당 메가비트)에 비해 약 네 배, 기존 유선인터넷(100Mbps)보다 10배 이상 빠른 속도다. 1기가바이트(GB) 분량의 고화질 동영상을 10초에 내려받을 수 있다.
망뿐 아니라 서비스와 요금제에서도 유선과 무선을 묶어 경쟁력을 높였다. KT는 지난해 11월 유무선 결
상품을 알리기 위해 ‘올레 올아이피(All-IP)’ 브랜드를 선보였다. 올아이피는 유무선 통신망을 하나의 인터넷 프로토콜(IP)망으로 통합해 제공하는 서비스를 의미한다. 종전엔 휴대폰 초고속인터넷 인터넷TV(IPTV) 요금을 따로따로 내야 했다. 올아이피에 가입하면 각 서비스를 묶어 요금을 할인해준다. 또 스마트폰과 웹 IPTV에서 같은 콘텐츠를 연속으로 즐길 수 있다. 스마트폰에서 보던 영화를 IPTV에서 이어 볼 수 있단 얘기다. 최근엔 한발 더 나아간 서비스를 내놨다. 지난 1일부터 음성통화 무제한 요금제인 ‘유선무선 완전무한’ ‘모두다올레’ 가입자의 데이터 제공량을 두 배 늘렸다. 멤버십, 음악·방송 콘텐츠 혜택도 두 배로 확대했다.
◆거실의 혁명
KT는 스마트폰 혁명에 이어 또 다른 혁명을 준비 중이다. IPTV를 통한 거실의 혁명이다. 거실에 있는 스마트TV가 콘텐츠 소비 활동의 중심, 즉 ‘미디어 허브’로 떠오를 것이란 전망에서다. 정보통신기술(ICT) 사업자들의 격전지가 모바일에서 거실로 이동할 것이란 관측이 나오자 IPTV 서비스 혁신으로 눈을 돌린 것이다. IPTV 혁신은 올 들어 가시화하고 있다. 1월 구글의 안드로이드 운영체제(OS)를 탑재한 스마트TV 서비스인 ‘올레TV 스마트’를 내놨다. 비싼 가격의 스마트TV를 구입하지 않아도 IPTV에만 가입하면 기존 TV를 스마트TV처럼 활용할 수 있는 서비스다. TV로 검색하고 다양한 앱을 내려받아 구동할 수 있다. 이달 안에 차세대 웹 표준 기술인 HTML5를 적용한 스마트TV 서비스도 선보일 예정이다. 안드로이드 스마트TV보다 더 많은 콘텐츠를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는 진화된 서비스다. TV를 PC처럼 활용할 수 있다고 KT는 소개했다.
현재 KT는 IPTV 시장에서 압도적인 1위다. 가입자 수가 440만명으로 2위인 SK브로드밴드(170만명)보다 두 배 이상 많다. 2011년 위성방송 KT스카이라이프를 인수, 위성방송 결합상품을 선보여 경쟁사와의 격차를 벌렸다. 스마트TV 서비스로 이 격차를 더 확대하겠다는 것이 KT의 전략이다.
◆다음 무대는 세계다
해외 시장 개척에도 나서고 있다. 비좁은 국내 통신시장에서 벗어나 새로운 미래 수익원을 찾기 위해서다. KT는 유선망, 부호분할다중접속(CDMA)에서 롱텀에볼루션(LTE)까지 무선망, 초고속인터넷망, 와이파이와 와이맥스망 등을 구축하고 운영해온 기술력과 노하우를 갖고 있다. 이를 수출해 세계적인 기업으로 발돋움한다는 계획이다. 2015년까지 매출 목표 40조원의 10% 해당하는 3조9000억원을 해외에서 올리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지난해 하반기부터 해외에서 성과가 나오고 있다. 몽골 브루나이 폴란드 사우디아라비아 등에 진출했다. 지난달엔 르완다에 LTE 기술을 이용해 무선초고속인터넷망을 구축하는 계약을 맺었다. KT와 르완다 정부가 합작사를 세워 3년 이내에 르완다 국민 95%가 무선초고속인터넷을 쓸 수 있도록 하는 사업이다. 합작사는 앞으로 25년간 LTE 등 통신망을 민간 통신사에 빌려준다. 25년간 르완다 통신사들은 직접 통신망을 설치하지 못하고 KT에 이용료를 내고 망을 빌려 써야 한다.
전설리 기자 slju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