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로 쓰는 경제학원론] 돈 풀면 가난 해결?…인플레이션을 몰랐던 살라스의 착각
입력
수정
지면A17
시네마노믹스 - '인타임'을 통해 본 물가와 통화정책
주인공 살라스는 빈민 구하려고 총으로 은행장 협박해 100만년 시간 시중에 풀지만 공장 폐쇄 잇따르고 사람들은 길거리로
인플레이션 상황에서 물가 더 오를 것이란 기대 생기면 초인플레이션 가능성


영화 속 시간은 화폐의 세 가지 기능을 갖추고 있다. 물건을 사고팔 때 쓰이며(교환의 매개), 물건의 가치를 표기하고(회계의 단위), 일정 시간을 보관했다가 나중에 쓸 수도(가치의 저장) 있다. 한 가지 다른 점은 현실의 화폐보다 저장 기능이 떨어진다는 것이다. 가만히 있어도 시간은 저절로 줄어들기 때문이다. 살라스는 남은 수명을 확인하기 위해 하루에도 몇 십 번씩 손목에 박힌 바코드시계를 들여다 본다. 그의 바람은 ‘남은 시간이 얼마인지 신경쓰지 않고 살아보는 것’이다. 과연 그의 바람은 이뤄질 수 있을까.

살라스는 처음에 커피값이 오른 이유를 몰라 짜증을 낸다. 공교롭게도 그는 중앙은행 산하의 시간통 생산공장에서 일한다. 중앙은행의 통화정책에 따라 매일 성실하게 시간통을 찍어낸다. 그래서 <그래프 1>의 화폐 공급은 늘 수직이다. 통화당국이 일정한 규모로 시간을 공급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화폐의 수요는 어떨까? 커피값이 3분에서 4분으로 올랐을 때 살라스는 더 많은 시간을 갖고 다녀야 한다. 물가가 높은 상황에서 시간을 덜 챙겼을 경우 자칫 목숨까지 위협받을 수 있어서다. 그래서 물가가 높을수록(화폐가치가 낮을수록) 화폐 수요량은 증가한다. <그래프 1>의 화폐수요곡선이 우하향하는 이유다. 그렇게 해서 공급곡선과 수요곡선이 만나는 A지점에서 화폐가치가 결정된다.
그런데 만약 중앙은행이 공장을 더 많이 돌려 시간통 생산을 늘린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그래프 2>처럼 공급곡선이 오른쪽으로 이동한다. 균형은 A에서 B로 변한다. 화폐가치는 떨어지고 물가는 오르는 것이다. 이 이론대로 하면 커피값이 3분에서 4분으로 오른 이유는 간단하다. 시간의 양(통화량)이 증가했기 때문이다. 실제 영화 속 중앙은행도 시간 공급량을 늘렸다.확장적 통화정책의 비밀
인플레이션의 진짜 비용
시간부자의 목숨을 구한 대가로 100년이란 시간을 받게 된 살라스. 모처럼 꽃을 사들고 어머니의 귀가를 기다리지만 그날 어머니는 영영 집으로 돌아오지 못한다. 버스비가 갑자기 1시간에서 2시간으로 오른 탓에 생명줄인 시간이 바닥나버렸기 때문이다.
영화에서 보듯이 인플레이션은 구매력을 떨어뜨린다. 같은 돈으로 구입할 수 있는 재화와 서비스의 양이 줄어든다는 얘기다. 물론 통화량 변화가 실질임금과 실질이자율 등에 영향을 주지 않는다는 ‘화폐의 중립성’ 이론에 따르면 장기적으로 물가 상승은 실질구매력에 영향을 끼치지 않는다. 물가가 오르면 명목소득도 오르기 때문이다. 하지만 현실에서 이 같은 ‘장기 균형’을 기다리기란 어렵다. 당장 임금상승률이 물가상승률을 따라잡지 못할 경우 큰 고통을 겪는다.
게다가 인플레이션은 화폐가치 외에 몇몇 번잡한 비용 상승을 동반한다. 대표적인 것이 ‘메뉴비용’이다. 음식점의 경우 물가가 급격히 올라 가격 조정이 잦아지면 새로운 메뉴를 인쇄하는 데 추가적인 돈이 든다. 그래서인지 영화 속 커피숍의 메뉴판은 언제든 가격을 쉽게 바꿀 수 있는 전광판 식이다. ‘구두창 비용’도 있다. 인플레이션 시기엔 현금 보유를 줄이는 게 이득이다. 예를 들어 4주에 한 번씩 200달러를 인출하는 대신 매주 50달러를 출금하러 은행에 가는 게 낫다. 이때 은행을 오가느라 구두창이 닳는 것처럼 낭비되는 자원이 생긴다는 것이다.
통화량 지나치게 늘리면
어머니를 잃은 살라스는 무작정 한 대형 시간은행의 은행장을 찾아가 협박한다. “저 금고 안에 (지급준비금으로) 보유하고 있는 100만년을 시중에 푸세요.” 은행장은 이렇게 대응한다. “(지금 100만년이란 큰 시간을 풀면) 시스템이 파괴되고 다음 세대 삶의 균형까지 무너집니다.” 통화량을 급격히 늘릴 경우 생기는 초인플레이션 가능성을 우려한 것이다.
초인플레이션은 한 달에 물가 수준이 50% 이상 높아지는 극심한 인플레이션 상황을 뜻한다. 과도한 통화공급에 의해 촉발되지만 물가가 더 오를 것이란 경제주체들의 기대가 기폭제 역할을 한다. 초인플레이션이 생기면 생산량은 줄고 화폐는 휴짓조각이 된다. 통화시스템이 무너져 물물교환의 시대로 회귀할 수도 있다. 빈민들을 구제하겠다고 마음먹은 살라스는 이런 원리를 이해하지 못한다.
살라스는 권총으로 은행장을 협박해 100만년을 시중에 유통시키는 데 성공한다. 짧은 순간 빈민가 사람들의 표정이 밝아진 듯했지만 이내 TV 뉴스에선 앵커의 걱정스러운 목소리가 울린다. “공장들이 모두 폐쇄됐습니다. 사람들은 길거리로 나오고 있습니다. 당국은 부인하고 있지만 경제시스템 붕괴가 우려되는 상황입니다.” 그래도 살라스는 영문을 알 수가 없다. 영화는 살라스가 더 큰 은행을 털기 위해 중앙은행으로 걸어들어가는 장면으로 끝난다.
고은이 기자 koko@hankyung.com 시네마노믹스 자문 교수진 가나다순
▲송준 성균관대 경제학과 교수
▲이창민 한양대 경영학과 교수
▲정재호 고려대 경영학과 교수
▲한순구 연세대 경제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