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한국 경제, 긴장감이 부족하다
입력
수정
게티스버그서 패퇴한 남군처럼 기업들 옥죄기에 어수선한 한국지난 1일은 미국 남북전쟁의 주도권을 북군으로 가져온 게티즈버그 전투 150주년이었다. 게티즈버그는 펜실베이니아주의 도시로, 전선에서 멀리 떨어진 북군 후방지역이었는데 남군 사령관 로버트 리 장군은 과감한 기동작전을 실시했다. 리 장군은 북군의 안방에서 결정적 승리를 거둠으로써 링컨 대통령이 남부연합을 승인하도록 할 속셈이었지만 무리한 작전이었고 준비도 미흡했다.
이젠 기업·정부·국회 합심할 때
최중경
우선 두 달 전의 챈스로스빌 전투에서 입은 피해가 복구되기도 전에 남부연합의 운명을 건 큰 싸움을 서두른 것이 지적된다. 특히 챈스로스빌 전투에서 토머스 ‘스톤월’ 잭슨 장군이 전사해 군 지휘체계를 재편했는데 손발을 맞출 틈이 없었다. 잭슨 장군은 리 장군 휘하병력의 60%를 거의 독자적으로 운용하며 신출귀몰한 작전으로 승전을 일궈내던 핵심이었다는 평가를 받는다. 둘째, 게티즈버그에서 가장 가까운 남군 철도역이 150마일(약 241㎞) 떨어져 있어 보급선 확보가 거의 불가능한 상태에서 어려운 전투를 치렀다. 셋째, 눈과 귀 역할을 해야 하는 기병부대가 통신두절로 보병부대와 함께하지 못함으로써 게티즈버그의 지형에 대한 사전정찰 없이 전투에 임해 북군에게 요충지를 선점당했다. 리 장군에 대한 전쟁사학자들의 평가는 일반적으로 알려진 것과는 달리 후하지 않다. 리 장군은 전투경험이 거의 없는 공병장교 출신(전쟁 전에 기병으로 전과)이었고 남북전쟁 발발 당시 계급도 중령에 머물러 있었다. 아버지가 독립전쟁 당시 기병사령관을 지낸 명문가 출신이고, 전쟁이 발발하자 사직서를 내고 버지니아로 돌아와 민병대를 조직한 투철한 애향심의 소유자였다. 그러나 그 투철한 애향심도 버지니아 위주로 좁은 개념의 전략을 구사해 미시시피강 수송로 같은 남부연합의 전략적 요충지를 소홀히 함으로써 전쟁물자 부족으로 수세로 몰리게 된 요인이 됐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리 장군은 게티즈버그로 출전하기에 앞서 잭슨 군단을 둘로 나눠 두 명의 군단장을 새로 임명했는데 해당부대 내부인사로 한정해 선정했고 사병들에게 인기 있는 장교를 우대했다. 군대의 사기를 위한 것이었다고는 하나 건곤일척의 중대한 전투를 앞두고 안이하고 독단적인 결정이었다는 비판이 있고 실제로 값비싼 대가를 치른다. 신임 군단장은 7월1일 전투에서 리 장군의 고지확보 명령을 이행하지 않아 계속된 전투에서 남군이 고전하게 되는 결정적인 실책을 범한다. 리 장군이 ‘반드시 점령하라’고 명령하지 않고 ‘현실적이라면 점령하라’고 재량판단의 여지를 남긴 것이 화근이었다. 리 장군을 비판하는 사람들은 리 장군의 명령이 모호해 오해의 소지가 있다고 지적한다. 연락이 두절돼 게티즈버그 전투 초반에 기병부대 9000여명 전체가 게티즈버그에 없었던 이유도 며칠 전에 내보낸 명령서를 달리 해석한 기병사령관의 실책을 수습할 시간적 여유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남부연합 대통령 제퍼슨 데이비스는 리 장군의 웨스트포인트 후배로서, 수학에 뛰어났던 리 장군이 생도신분으로 급여를 받으며 후배생도를 가르쳤던 훤칠한 선배로 기억하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리 장군을 파격적으로 등용했고 어디로 봐도 무모한 펜실베이니아 원정도 승인했는지 모른다. 게티즈버그에서 남군이 진 것은 군사 작전상의 문제지만 크게, 멀리 보면 당면한 상황과 과업의 엄중함에 비해 지휘부의 긴장감이 부족했던 데 기인한다. 소규모 개방경제이기 때문에 숙명적으로 외환위기 가능성에 노출돼 있는 한국 경제는 미국발 양적완화 축소 예고, 아베노믹스의 부작용 우려, 중국경제 경착륙 가능성으로 긴장해야 할 상황이다. 외채구조, 외환보유액, 경상수지가 2008년에 비해 양호하지만 외부충격이 더 클 가능성을 예의주시해야 한다. 과도한 기업 때리기, 세금감면 축소 등 수출전선에 나가 싸울 기업들을 지치게 하고 약발 다한 부동산대책을 바라보고만 있는 한국은 긴장감이 부족해 보인다.
당면 상황을 평가하고 정책 아젠다의 우선순위를 바꿔야 한다.
시간과의 싸움이 이미 시작됐는지도 모른다. 정부와 국회, 여야 모두 긴장해서 합심 노력해야 할 때다.
최중경 <美 헤리티지재단 객원연구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