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기업CEO 인사 왜 늦나 했더니…靑 '3+3 추천' 6배수 검증

뉴스 추적

후보군 두 배로 늘려
고유 인사권 확실히 행사
"親朴 챙겨주기 없다"
공기업 기관장 선임을 놓고 ‘관치 인사 논란’이 벌어진 뒤 청와대의 인사 검증 시스템이 크게 달라졌다. 후보군을 기존 3배수에서 최대 6배수로 두 배 늘렸고, 이들을 대상으로 다각도의 검증 절차를 거쳐 후보를 2명으로 압축한 다음 박근혜 대통령이 1명을 최종 재가하는 형태로 이뤄지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런 과정을 거치는 데 최소한 한 달 이상의 시간이 걸리는 것으로 전해졌다. 최근 공기업 기관장 인사가 줄줄이 늦어지고 있는 것도 이 같은 인사 시스템 변화 때문이라는 것이다.

10일 복수의 여권 관계자에 따르면 청와대는 최근 임기가 끝났거나 기존 기관장이 사의를 표명해 교체가 예정된 공기업 기관장 인선 과정에서 후보군을 최대 6배수까지 늘려 검증하고 있다. 기존에는 해당 부처 장관이 후보군으로 3배수를 올렸으나 바뀐 시스템에서는 장관이 3명을 추천하고, 별도로 관련 수석비서관이 3명을 더해 최대 6명의 후보를 추천하는 것으로 바뀌었다. 장관과 수석은 각각의 후보에 대한 추천 사유도 쓴다. 여권 관계자는 “장관과 수석은 자신의 자리를 걸고 추천하는 것인 만큼 사적인 이해가 개입될 여지가 없다”고 말했다.

경우에 따라 장관과 수석 외에 외부에서 추천을 받기도 한다. 추천된 후보군은 모두 청와대 인사위원회로 올라가고, 인사위는 민정 라인과 함께 검증 작업을 벌인다. 인사위원회는 허태열 비서실장이 위원장을 맡고 유민봉 국정기획수석, 곽상도 민정수석이 고정 멤버로 참석한다. 정무수석도 고정 멤버지만 지금은 공석이어서 이정현 홍보수석이 대신 참석한다. 이 외에 해당 공기업을 관할하고 있는 수석이 함께한다.

인사위는 6명의 후보군을 대상으로 다각도의 검증을 벌이는데, 과거에는 상대적으로 소홀히 했던 평판 조회도 면밀하게 이뤄지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런 과정을 거쳐 최종 후보 2명으로 압축한 ‘쇼트 리스트’를 만들어 순위를 매긴 후 박 대통령에게 보고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박 대통령은 최종 후보로 올려진 2명 중 1명을 낙점해 재가한다. 이처럼 박 대통령이 인사권을 행사하는 공기업(준정부기관 등 포함)은 모두 295곳에 달한다. 여권 관계자는 “박 대통령은 대통령으로서 고유의 인사 권한을 매우 중요하게 생각하고 그에 따라 인사권을 행사하려는 의지가 강하다”며 “밀실인사라는 외부의 오해가 있지만 대통령은 본인의 국정 철학에 맞고 전문적 식견을 갖췄는지 여부를 가장 중요하게 따진다”고 말했다.
연내 교체 100명 넘어 검증 후보만 600명

여권의 다른 관계자는 “대통령은 본인의 원칙에 따라 인사했지만 결과적으로 특정 관료 출신만 중용하는 ‘관치 인사’가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면서 이를 피하기 위해 후보군을 넓히는 식으로 인사 시스템을 바꾼 것”이라며 “인사는 작용과 반작용의 과정을 거치면서 계속 보완해 나가고 있다고 보면 된다”고 설명했다. 여권의 친박(친박근혜)계 한 인사도 “친박이라고 일부러 챙겨주고 그런 것은 전혀 없는 것 같다. 오히려 같은 값이면 배제하는 것 같다”고 했다.

◆관료 낙하산 줄어드나

청와대가 후보군을 넓히는 식으로 인사 시스템을 바꾸면서 관료 일색의 낙하산 인사는 사라질 것으로 예상된다. 주무부처 장관과 해당 분야 청와대 수석이 좀 더 나은 후보를 추천하기 위해 경쟁해야 하기 때문이다. 여기에다 추천 이유까지 밝혀야 하는 만큼 추천 후보의 전문성 등을 세세하게 증명해야 한다. 정부 관계자는 “그렇다고 관료를 원천적으로 배제할 수는 없겠지만 지금까지 인선이 끝난 주요 기관장 가운데 관료 출신이 많았던 데 따른 비판이 제기된 만큼 앞으로 인사에서는 상대적으로 비관료 출신 전문가들이 중용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인사 검증 절차가 복잡해진 까닭에 기관장 인선 작업은 예상보다 더 늦어질 가능성이 크다. 당초 청와대 측은 검증을 서둘러 이달 중순부터 순차적으로 인선 결과를 발표할 것이라고 했다.

◆검증 후보 최대 600명에 달해

하지만 최근 공공기관장 경영평가 결과 D·E등급을 받아 교체 대상에 오른 인사와 올해 임기 만료자, 자진 사퇴자를 모두 합할 경우 올해 중 교체되는 공공기관장이 100명을 넘어설 것으로 예상돼 이들을 대상으로 한꺼번에 인선 작업을 벌이는 게 만만치 않다. 6배수 후보군을 감안하면 최대 600명을 검증해야 하기 때문이다.

여권 관계자는 “후보군을 넓힌 이후로 인사 검증 작업을 맡은 비서진의 업무 부담이 급격히 늘어나 퇴근도 못할 지경”이라고 전했다. 여기에다 당장 지난달 이후 임기가 끝난 기관장은 52명으로 상당수가 최근 들어 사의를 밝힌 상태다. 이미 인선 절차가 상당히 진행된 기관장도 복수 후보 추천 방식을 적용하기로 해 혼란이 예상된다. 가스공사의 경우 지난달 25일과 지난 9일 두 차례나 주주총회에서 사장 선임 안건을 의결하기로 했지만 정부 방침에 따라 무산된 바 있다. 복수 후보 추천 과정에서 이들 후보의 결격 사유가 확인되면 23일 열릴 예정인 주주총회에서 사장 선임안이 부결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이정호/조미현 기자 dolp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