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대기업이 벤처 M&A 큰손 돼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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벤처활성화 관건은 '자금 선순환'
대기업이 M&A에 적극 나서게 세제혜택 등 강한 유인책 필요해
남민우

중간회수시장 가운데서도 가장 중요한 것은 M&A다. 대기업은 벤처기업 M&A로 다양한 아이디어와 기술을 외부에서 조달함으로써 ‘오픈 이노베이션’이 가능해지고, 벤처업계는 자금 선순환이 촉진되며 창업생태계가 활성화됨으로써 경제 전반에 활력을 불어넣기 때문이다. 최근 이런 혁신형 M&A의 중요성이 부각되면서 새 정부가 지난 5월15일 발표한 ‘벤처·창업 자금 생태계 선순환 방안’에도 M&A와 관련한 각종 지원제도가 포함됐다. 벤처업계에서는 이 같은 정부 대책을 환영하면서도 벤처기업 M&A 시장에 대기업이 활발하게 참여할 수 있도록 더 강력하고 다양한 유인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의견을 내고 있다. 그러나 일각에서 이번 5·15 벤처 활성화 정책 가운데 M&A 시 매수기업 법인세 감면 혜택, 대기업의 계열사 편입 유예 등 M&A 세제지원 및 규제완화가 대기업 몰아주기 혹은 대기업과 중소·벤처기업 간 상생이 아닌 대기업의 벤처 잡아먹기라는 오해를 하고 있는 점은 매우 안타깝다. M&A 활성화는 벤처 투자자금의 중간회수시장으로서의 역할뿐만 아니라 기술이나 아이디어를 정당하게 매매하는 기업문화와 재도전 환경을 위해서도 필요한데, 자칫 M&A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또 하나의 걸림돌이 될 수 있어서다.
지난 2월 공정거래위원회가 발표한 ‘2012년 기업결합 동향’을 보면, 국내 M&A 시장의 침체를 짐작할 수 있다. 지난해 국내에서 일어난 기업결합 건수는 651건, 금액은 150조5000억원인데, 구조조정을 위한 대기업 계열사 간 기업결합이 대폭 늘었으며, 시장지배력 확대를 위해 경쟁기업을 인수한 경우를 제외하고 혁신형 M&A 등 다른 기업 인수는 오히려 감소해 2011년에 비해 거래금액이 35.0%나 줄었다. 특히 작년 10월부터 6개월간 10대 그룹의 국내 다른 기업 지분취득은 사실상 ‘0’건이다.
이와 달리 벤처강국이자 세계 최대 M&A시장으로 꼽히는 미국에서는 기업가치 극대화를 위한 우호적 M&A가 자연스럽고, 자유롭게 이뤄지고 있다. 올 1분기에만 1670억달러의 M&A가 성사돼 지난해 같은 기간 1250억달러보다 33.6% 늘었다. 미국 M&A시장을 이끈 산업 분야는 이른바 TMT(첨단기술, 미디어, 장거리통신) 업종으로 M&A 딜의 25.7%를 차지했다. 이처럼 미국에서는 다수의 기업이 협력과 합병을 선택해 창업벤처의 핵심역량인 기술이나 아이디어가 활발하게 거래되면서 산업 경쟁력을 높여가고 있는 것이다. 구글은 2006년부터 2011년 8월까지 69개 벤처를, 마이크로소프트는 53개 벤처를 인수해 M&A를 통한 혁신체계를 구축했지만, 같은 시기 삼성은 17개 기업만을 인수했다. 대기업의 참여 없는 M&A 활성화는 불가능하다. 한국은 대기업의 국내 M&A 시 많은 행정적 규제와 반(反)M&A 기업 문화에 대응해야 하는 대내외적 리스크가 존재한다. 벤처기업 M&A에 대기업 참여를 독려하기 위해 세제혜택뿐만 아니라 대기업 M&A에 대한 사회적 인식 개선 등을 위한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 지금처럼 벤처기업의 사업화와 회수과정의 불확실성이 지속되면 창의적 자산형성과 융복합 등을 통한 창조경제 구현은 불가능하다.
대기업이 적극적인 혁신형 M&A를 통해 오픈 이노베이션을 실현함으로써 지속성장을 꾀하고 벤처 생태계의 자금 선순환을 촉진하도록 해야 한다. 이런 선순환 구조를 통해 엔젤투자를 활성화함으로써 미래성장동력을 육성하고, 기술력 있는 벤처기업의 기술이나 아이디어가 사장되지 않고 창조경제에 기여하도록 해야 할 것이다.
남민우 <벤처기업협회장·대통령 직속 청년위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