촘촘한 지붕 사이 솟아오른 첨탑…고고한 자태에 반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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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여행내뱉는 순간 기분이 몽글몽글 좋아지는 마법 같은 힘을 가진 단어들이 있다. 야간열차, 그리고 프라하는 내게 가장 아름답고 로맨틱한 단어다. 난생 처음으로 밤기차를 타고 프라하에 갔다. 오랜 시간 품어 온 두 가지의 로망이 결합된, 심장이 말랑말랑해지는 첫 경험이다. 폴란드 크라쿠프에서 40년 세월을 달린 야간열차에 올랐다. 열차 안의 어느 것 하나 클래식하지 않은 것이 없는, 예스럽고 담백한 분위기다. 오랜 세월, 많은 여행자들이 느꼈을 밤의 낭만과 꿈이 공간 가득 부유하는 것 같다.
체코 프라하
체코 민주화 혁명이 일어난 바츨라프 광장…림같은 풍경에 감탄
고딕양식의 결정체1000년간 지은 '성 비트 성당'…곳곳의 스테인드 글라스 화려
세계적 기술 자랑 '유리공예'
달콤 쌉싸름한 맛 체코 맥주
침대에 눕자 기차가 움직이기 시작한다. 덜컹거리는 기차의 리듬에 몸을 맡기고 귀를 기울이니 마음이 평온해진다. 기차의 규칙적인 움직임은 태아가 뱃속에서 느끼는 엄마의 움직임과 비슷하다는 얘기를 들었다. 아늑한 야간열차는 여행자를 포근히 재우고 낭만의 도시 프라하를 향해 달린다. ○고혹적인 여자 같은 프라하 풍경 도시마다 가진 특유의 분위기가 있다. 프라하는 유럽의 여느 도시보다 낭만적이다. 까닭은 모르겠지만 프라하는 ‘뭘 좀 아는 고혹적인 여자’와 마주하는 느낌이다. 이 막연한 감상의 출처를 알아보기에 더없이 좋은 방법은 무작정 걸으며 탐닉하기다.
시작은 바츨라프 광장으로 정했다. 프라하의 수호성인인 성 바츨라프 기마상을 시작으로 폭 60m, 길이 800m 규모로 시원하게 뻗은 광장이다. 1968년 ‘프라하의 봄’과 1989년 ‘벨벳혁명’으로 불리는 민주화 혁명이 이곳에서 일어났다. 광장을 따라 늘어선 아름다운 건축물들을 두리번거리다 보면 어느덧 15분. 구시가지 광장에 이른다. ‘그림 같다, 병풍 같다, 도시 전체가 박물관이다’ 등의 진부한 표현이 진실로 와 닿는 순간이다. 광장 중앙에는 종교개혁가 얀 후스의 청동상이 있다. 동상 주변으로 관광객들이 기념사진을 찍으며 추억을 박제하고, 연인들은 귀엣말로 사랑을 속삭인다.
14세기 부패한 가톨릭을 비판하다 화형당한 얀 후스 동상의 시선이 향하는 곳은 그가 종교개혁 연설을 했던 틴성당이다. 틴성당은 70m에 달하는 두 개의 첨탑이 아름다운 고딕양식의 건축물이다. 틴성당 옆으로는 로마네스크, 바로크, 로코코 등 다양한 양식의 건축물이 늘어섰다.
4인조 밴드가 틴성당을 배경으로 자리잡고 연주를 시작했다. 광장은 점점 활기를 띠고 모두가 웃고 즐기던 중 사람들이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프라하의 명물, 구 시청사의 오를로이 천문시계가 매시 정각을 알리는 순간이다. 구름 같은 인파가 일제히 숨죽여 하늘을 올려다 보는 광경이 흥미롭다. 시계가 움직이는 시간은 단 30초. 긴 기다림에 비해 허무하게 짧지만 12사도 인형이 행진하고, 해골 인형이 줄을 당겨 종을 울리고, 탑을 장식하는 많은 인형들이 고개를 가로젓는 모든 움직임은 충분히 아름답다. 시계탑 꼭대기의 전망대도 빼놓을 수 없는 볼거리다. 나선형 통로를 뱅글뱅글 돌아 전망대까지 오르면 프라하 시내가 한눈에 보인다. 촘촘히 나열된 수천 개의 홍색 지붕 사이로 드문드문 100여 개의 탑이 솟아 있는 전경은 우아함의 극치다. 탑 위의 풍경은 눈길이 마주치는 누구라도 금세 사랑에 빠질 수 있을 것처럼 낭만적이고 아름답다.
○세계적 세공기술 자랑하는 유리공예
기차 여행자에게 무거운 짐은 부담이다. 하여 어떠한 물욕도 갖지 않겠다고 몇 번이고 굳게 다짐했다. 하지만 이 다짐이 여지없이 무너진 곳이 프라하 구시가지다. 아르누보의 별이라 불리는 알폰스 무하, 세계적 사진가 얀 사우덱, 작가 카프카와 밀란 쿤데라의 조국이 아니던가. 이곳에는 은근하고 내밀하게 발산되는 예술적 분위기가 있다. ‘보헤미안’이라는 어감이 주는 정서적인 이유도 한몫하겠지만 대체로 체코 사람들은 손재주가 좋은 것 같다.
이를 반영하듯 공예품을 만들어 전시, 판매하는 작은 가게들이 많다. 기념품, 공예품, 예술품 등 그 경계와 범위도 다양하다. 구석구석 자세히 보려면 하루는 족히 걸리겠다 싶을 정도로 아기자기한 규모의 가게와 갤러리들이 산재해 있다. 여행자의 가방은 무거워지고, 지갑은 가벼워지는 지점이다. 편집매장인 ‘모더니스타 디자인 숍’에서는 ‘훌륭하다, 갖고 싶다’는 말을 연신 내뱉었다. 큐비즘, 아르누보를 아우르는 예술품과 신진 디자이너들의 작품을 전시, 판매하고 있어서다.
세계적 세공 기술을 자랑하는 체코의 유리공예는 단연 최고의 볼거리다. 소리가 청명한 보헤미안 크리스털 위에 세밀하게 세공된 많은 작품들이 세계적으로 사랑받고 있다. 체코 유리공예의 정수를 보고 싶다면 구시가지에 있는 만토갤러리(mantogallery.com)와 모저갤러리(moser-glass.com)에 들러볼 것을 권한다. 가격이 비싸 구입하기가 만만치 않지만 눈으로 보는 것만으로도 행복해질 만큼 아름다운 작품들로 가득하다.
○프라하 건축의 결정체, 성 비트 성당
구 시가지를 벗어나 블타바강을 건넜다. 언덕 높은 곳에 자리한 프라하 성을 보기 위해서다. 좀 더 정확히 말하면 성 비트 성당을 보기 위해서다. 언덕 아래에서 성당을 올려다보자 소름이 돋았다. 성당이 뿜어내는 특유의 웅장한 기운은 보는 이를 압도한다. 천 년의 시간 동안 지은 고딕양식의 결정체라는 말도, 프라하 건축의 백미라는 말도 이곳을 수식하고 형용하기엔 그저 무기력할 뿐이다.
감동은 성당 내부에 들어서면 배가 된다. 길이 124m의 성당 내부를 덮은 고딕양식의 웅장한 천장, 성당 곳곳의 화려한 스테인드 글라스, 체코 예술가 알폰스 무하의 조각들로 채워진 내부 곳곳은 우아하고 찬란하다.
성당에서 나와 프라하 성의 북동쪽 모퉁이 길을 따라 가면 황금소로가 나온다. 루돌프 2세가 고용한 연금술사와 금 세공사들이 모여 살던 골목이다. 앙증맞은 크기의 집들이 골목을 따라 옹기종기 붙어 있다. 지금은 기념품 가게나 당시 생활상을 재현한 박물관의 기능을 하고 있다. 22번지, 푸른 집은 프란츠 카프카가 머물며 집필했던 작업실로 유명하다. 카프카는 이곳에서 소설 ‘성’을 집필했다.
아름다운 풍경으로 끊임없이 자극 받은 여행자에게 시원한 맥주 한 잔은 더할 나위 없는 위로가 된다. ‘흐르는 빵’. 체코에서 맥주를 일컫는 말이다. 그만큼 체코 사람들의 맥주 사랑은 각별하다. 대표적인 맥주로는 필젠 지방의 필스너가 있다. 우리에게도 잘 알려진 필스너 우르켈은 특유의 달콤쌉싸름한 맛이 일품이다.
맛 좋은 맥주에 근사한 음악까지 더해진다면 금상첨화다. 프라하 성에서 도보로 10분 거리에 있는 ‘우 말레호 글레나 재즈&블루스 클럽’은 화려한 라인업으로 유명하다. 유명한 재즈 뮤지션의 연주를 밤 12시까지 감상할 수 있는 클럽에서 기분 좋게 노곤해진 여행자는 프라하와 사랑에 빠졌다. 다시 기차를 타고 다른 도시로 떠나기가 머뭇거려지는 이유가 수도 없이 생겨나는 여기, 참으로 매혹적이다.
프라하(체코)=문유선 여행작가 hellomygrape@naver.com
◆여행팁 영어 사용 불편함 없어…지하철 등 대중교통 편리, 구시가지 도보여행 가능
언어는 체코어를 사용한다. 동유럽 도시의 젊은 세대들은 영어에 능통한 편이라 영어 사용에 불편함은 없다. 화폐 단위는 코루나(CZK), 1코루나는 56.8원이다. 대중교통은 트램, 지하철, 버스 등이 다양하게 운행되고 있다. 한 해 1억명이 넘는 관광객이 다녀가는 대도시답다. 구시가지는 도보로 여행할 수 있는 거리다. 폴란드 크라쿠프에서 체코 프라하까지 이용한 동유럽패스는 폴란드, 체코, 슬로바키아, 헝가리를 아우르는 동유럽의 철도 네트워크를 이용할 수 있는 패스다. 초고속 열차, 야간 열차, 관광열차를 이용할 경우 사전 예약이 필수다.
동유럽 야간 열차의 치안에 대해 우려하는 의견들이 있었다. 이번 경험을 통해 괜한 걱정이었다는 것을 알았다. 기차 안 치안은 스스로 주의하면 되는 수준으로 서울과 별반 다들 바 없다. 기차 내부는 생각보다 아늑하고 쾌적하다. 야간열차 객실은 1인실, 2인실 3인실로 다양하다. 자세한 정보는 레일유럽 홈페이지(raileurope.co.kr)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