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칼럼] 물풀 연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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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춘호 논설위원 ohchoon@hankyung.com연못을 떠다니는 물풀이나 바다 해초에서 석유를 뽑아낼 수 있다면…. 조류(藻類)는 30억년 전부터 살아왔던 원시생물이다. 지금 지구에서 확인된 조류만 35만종이다. 수심 450m에 사는 풀들도 있을 만큼 억세고 끈질긴 생명력을 자랑한다. 이들은 이산화탄소나 태양 물 등을 이용한 광합성 작용을 통해 자신에게 필요한 화학 물질을 만들어낸다. 개중에는 오일 성분과 비슷한 지질(脂質)을 가진 물풀들도 있다. 김 미역 파래 우뭇가사리 등 소위 거대 조류보다 뿔돌말 별돌말 등 미세조류가 더욱 가능성이 높다. 이런 물풀들을 찾아 오일 생산이 가능한 상태로 배양하고 정제하는 노력이 가속화되고 있다. 효율성과 경제성만 갖추면 대박이 될 수도 있다.
미국 정부가 조류 연구를 시작한 것은 석유파동 이후인 1978년이었다. 20년 동안 계속 공을 들였지만 1995년 결국 사업을 접게 된다. 채산성이 도저히 나오지 않아서다. 2000년대 들어 석유값이 급등하자 사정이 변했다. ‘그린 크루드(green crude·녹색 원유)’로 부르면서 석유화학업체 및 에너지업체 생명공학업체 등이 조류 연구에 박차를 가했다. 빌 게이츠가 2008년 미국 벤처 사파이어에 1억달러를 투자한 것도 견인차 역할을 했다. 오바마 미 대통령은 올해 2월 한 연설에서 미세조류가 새로운 에너지원이 될 것이며 미국 정부는 여기에 집중 투자할 것이라고 힘을 보태고 있다. 하지만 정작 구체적인 성과는 다른 데서 나오고 있다. 일본 중공업기업 IHI가 연못에서 채집한 물풀을 이용해 항공기용 제트연료를 양산하는 단계에 이르렀다는 외신 보도다. 일본 고베대학의 에노모토 교수가 연못 등지에서 채집한 조류 1주(株)를 배양했는데 이 조류는 다른 조류에 비해 1000배의 증식능력을 갖고 있었다고 한다. 그는 자신의 이름을 따 이 물풀을 ‘에노모토모’라고 불렀다. 원래 보일러 회사인 IHI는 자사의 핵심역량인 플랜트기술을 이용해 에노모토모를 고속으로 증식시켜 대량 생산에 성공했다는 것이다. 이 연료를 쓰면 현재 사탕수수를 이용한 바이오 연료 가격보다 10% 수준밖에 들지 않는다고 한다. 이 회사는 ℓ당 가격을 100엔(1100원)까지 내리기 위해 동남아시아와 호주에서 양산할 계획이라고 한다.
미국이 연구 개발은 앞섰지만 양산에서는 일본 업체에 뒤지는 형국이다. 우리나라도 생명공학연구원 등 연구소와 산업계에서 열심히 뛰고 있다. 그러나 아직 만족할 만한 성과는 나오지 않고 있다. 태양광이나 풍력 조력 등 재생에너지에 대한 경제성이 아직 검증되지 않은 상태다. 물풀 에너지는 과연 인류를 구원할 새로운 에너지원이 될 것인가.
오춘호 논설위원 ohcho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