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마을] 역사는 분열의 불씨 아닌 통합과 공유의 매개체

대한민국 역사
이영훈 지음 ㅣ 기파랑 ㅣ 496쪽 │ 1만9500원
1962년 2월 열린 울산공업센터 기공식. 맨 왼쪽이 박정희 당시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이다. 한경DB
역사는 언제나 뜨거운 논쟁거리다. 명백한 사실을 놓고도 관점에 따라 해석이 달라진다. 사실에 기초하지 않은 주장마저 난무하면 논쟁을 정리할 길이 없다. 지난 5월 국내에서 때아닌 역사 논쟁이 벌어진 것도 아직 공개되지 않은 한 권의 역사교과서를 놓고 ‘왜곡’이라며 몰아세웠던 결과였다.

《대한민국 역사》를 쓴 이영훈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는 이런 소모적 논란에서 벗어나 국민 모두가 자랑스럽게 공유할 통합의 역사를 새로 쓸 필요가 있다고 주장한다. 이 교수는 우파 진영으로 분류되는 경제사학자다.

그는 이 책에서 통합의 역사를 위한 전제조건으로 ‘대한민국 역사를 위한 올바른 관점’ 다섯 가지를 제시한다. 국민이 공유하는 역사가 필요하다는 것, 사실을 있는 그대로 정확히 이해해야 한다는 것, 민족주의는 우리의 소중한 공동체 정서라는 점, 자유의 이념은 역사 발전의 근본 동력이라는 점, 해방 후 경제성장과 민주주의가 정착된 1987년까지는 ‘나라 만들기’의 과정이라는 점 등이다.

이 교수는 특히 40년에 걸친 나라 만들기의 과정을 하나의 잣대로 단순하게 평가할 수 없다고 지적한다. 준비 없이 황급하게 건국이 이뤄진 상황에서 국가의 기초이념, 정부 형태, 든든한 군대 육성, 최소한의 복지제도 확충 등 기초 여건을 갖추느라 빚어진 건국 초기의 잘못을 두고 나라의 정체정을 의심 또는 부정하는 쪽으로 비약해서는 곤란하다는 설명이다. 이런 시각에서 그는 대한민국의 역사를 해방과 건국 투쟁, 국민국가 건설, 나라 만들기 세력의 교체, 고도 경제성장, 민주주의 발전 등의 순으로 서술한다. 역사의 밝은 면과 어두운 면을 두루 살피자는 게 기본 입장이다.

그는 건국 과정에서 독재자로만 인식되고 있는 이승만 전 대통령의 역할과 위상은 보완하자는 쪽이다. 4·19에 대해서는 “한국사에서 일반 대중이 봉기해 정권을 쓰러뜨린 최초의 사건”이라며 “미완의 민중·민족혁명이 아니라 한국인의 정신생활과 정치의식에 민주주의의 기본 가치를 혁신적으로 각인했던 민주혁명”이라고 평가한다.

5·16에 대해서는 ‘군사정변’이라며 두 가지 관점을 제시한다. 정변 이후 고도의 경제성장을 이룬 점에서는 ‘혁명적 근대화’의 출발이고, 정치체제로는 이승만 권위주의 체제를 계승했다는 것. 유신체제에 대해서는 “국민의 상식적인 정치감각에 어긋난 것”으로 “처음부터 국민의 마음에서 멀어져 있었다”고 평가한다. 저자는 “자유민주주의의 국가체제가 이승만 건국대통령에 의해 세워졌다면, 4·19와 5·16은 그 토대 위에서 국가경제의 곳간을 채우는 역사적 과제를 추구했다”며 “4·19와 5·16은 나라 만들기의 2단계 과제를 수행하기 위해 새로운 정치세력이 등장하는, 연속하는 두 혁명”이라고 평가한다. 통합의 역사를 쓰자며 낸 책이 또 다른 논란을 불러올 가능성도 없지 않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서화동 기자 firebo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