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력 일으키는 법"…美 '정당방위법' 시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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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이슈 따라잡기후드티를 입은 10대 흑인 소년 트레이번 마틴을 범죄자로 오인해 물리적 충돌 끝에 총으로 살해한 조지 지머먼이 미국 플로리다주 법원에서 무죄 평결을 받은 뒤 그가 풀려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정당방위법(Stand your ground law)’을 둘러싼 논란이 뜨겁다.
플로리다주가 2005년 이 법을 도입하기 전까지 미국에서는 누군가 자택에 침입하거나 재산을 탈취하려는 경우에 한해 마지막 방편으로 무기를 사용하는 것만 정당방위로 인정됐다. 하지만 2004년 허리케인 ‘이반’이 미국 남부를 강타한 후 플로리다 지역에서 약탈이 늘어나자 정당방위 범위를 크게 확대한 이 법안은 주 의회에서 만장일치로 통과했다. 정당방위법은 신변에 대한 물리적 위협뿐 아니라 심리적 위협을 느낄 경우에도 물러서거나 도망가지 않고 ‘영역을 지킬 수 있는 권리’를 보장한다. 가택 침입자에 대한 총기 사용을 허용한 ‘캐슬 독트린(Castle Doctrine)’을 공공장소까지 확대했다. 지머먼이 마틴을 총으로 쏴 죽인 곳도 길거리였다.
이 법안은 도입 당시부터 논란이 많았다. 플로리다 경찰조차도 “술을 마시고 실수로 다른 집에 들어가거나 핼러윈 사탕을 받기 위해 이웃집을 찾은 아이들이 공격당할 위험이 있다”며 법안에 반대했다.
그러나 결국 법안은 통과됐고 이후 정당방위 살인 건수는 급격히 늘어났다. 주 사법당국에 따르면 법안이 통과되기 전 5년간 정당방위 살인은 연평균 12건에 불과했지만, 이후 5년 동안 연평균 36건으로 세 배나 뛰었다. 게다가 법안이 흑인에게 불리하게 작용하면서 인종차별 문제까지 불러일으켰다. 미국 연방수사국(FBI)에 따르면 2005년 이후 4년간 흑인을 사살한 백인에게 정당방위가 인정된 비율은 34%였지만 백인을 사살한 흑인의 구제 비율은 3.3%에 불과했다.
미국 최초의 흑인 법무장관인 에릭 홀더 장관도 정당방위법을 재고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그는 지난 16일 미국 최대 흑인권익단체인 유색인종지위향상협회(NAACP) 연례회의에서 “폭력을 방지하기보다 오히려 폭력을 일으키는 법이라면 철저히 살펴볼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뉴욕=유창재 특파원 yoocoo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