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포럼] 남자는 모르는 여성 대통령

오형규 논설위원 ohk@hankyung.com
최측근이라던 남자1호가 서류를 내밀었다. “검찰 인사는 이렇게 하심이…”라는 인사 건의였다. 여자1호는 말이 없었다. 이튿날 비서관의 전화를 받았다. “당분간 전화나 방문을 자제하시랍니다.”

야당 대표가 된 남자2호는 여자1호를 잘 안다고 자신했다. 대통령 딸이 주인공인 소설 ‘여자의 남자’를 썼던 그다. 한데 각을 세울수록 자꾸 이전투구로 말려든다. 국정원 댓글은 어느덧 없는 대화록을 찾느라 낭패다. 이젠 정쟁의 페달을 멈추면 넘어질 자전거의 처지다. 터프한 척하는 남자3호는 도무지 뜻대로 되는 게 없다. 막말도 협박도 안 통하니 차라리 존댓말로 하면 여자1호가 봐줄까 기대했다. “귀측은 답변을 회피하였습니다. 쓴맛을 보게 될 것입니다.” 해놓고 보니 스스로도 남사스럽다.

단호함과 여성성의 완급조절

SBS ‘짝’을 패러디 한 남자1~3호는 대강 짐작할 것이다. 물론 여자1호는 내일로 취임 5개월인 여성 대통령이다. 남자들은 너나 없이 여성 대통령을 어려워한다. 하긴 마누라, 딸과도 소통에 애를 먹는 남자들이니 오죽하겠나 싶다. 작가 박민규의 표현대로 남자들은 도무지 여자라는 주파수를 잡지 못하는 AM라디오인지도 모른다. 여성 대통령은 남성 전임자들에게선 볼 수 없는 몇 가지 특징을 갖고 있다. 여성이기 때문일 수도 있고 본인만의 특성일 수도 있다. 우선 침묵의 금언을 잘 안다. 말수가 적고 화내는 법도 없다. 당 대표 시절 “왜 그러셨어요”라는 조근조근한 추궁으로 3~4선 중진들도 오금이 저리게 만든 내공이다. 북한의 막말과 욕설도 “우리 국민에게도 존엄이 있다”는 한마디로 잠재웠다.

여성성을 되레 강점으로 활용할 줄 안다. 화사한 색과 미소로 표현하는 무언의 언어는 오바마, 시진핑도 한 수 접고 들어갔다. 이것이 북핵 대응의 단호함과 맞물려 완급조절의 시너지를 낸다. 또한 빚진 게 없으니 봐주는 것도 없다. 학연 지연 혈연의 패거리즘과 거리가 멀다. 전직 대통령 일가를 압수수색하고 재벌 총수 3명이 감옥에 있어도 세간의 반응은 “그럴 만했다”는 쪽이다.

허니문 이후 경기회복이 문제그런 덕에 60%대 지지율로 현역 세계 지도자들 중 1위라고 한다. 호남에서도 50%가 넘는다. 야권에서도 새누리당은 비난해도 대통령의 꼬투리 잡기가 쉽지 않다고 하소연이다. 고작 귀태(鬼胎)니, 다카기 마사오니 공격해봐야 본인만 다치기 십상이다.

하지만 정권 초기의 장점이 금세 단점으로 뒤바뀐 사례는 수없이 많다. 전임자들의 정권 초기 이벤트도 문제였지만 여성 대통령의 신비주의에도 물음표가 달려 있다. 더구나 저녁 6시부터 아침 9시까지 15시간을 혼자 지낸다. 특유의 원칙주의는 역대 정권의 문제들과 확실히 선을 긋는 장점인 동시에 자칫 ‘깨끗한 독선’이 될 수도 있다.

이제 허니문 기간도 거의 끝나간다. 아무리 좋은 부부도 흠결이 보일 때다. 잘난 사람들이 설설 기고, 제어불능이던 북한이 먼저 구애하게 한 것으로 초기 인사파행이나 윤창중 파동을 덮을 수 있었다. 아직까진 대중이 듣기 좋은 말만 해도 큰 문제가 없었다. 하지만 복지와 세수, 창조경제와 경제민주화의 상충과 모순이 드러나기 시작한 것도 사실이다. 배아픔을 해소할 서커스는 충분히 보여줬다. 문제는 빵이다. 8분기 연속 0%대의 초저성장에다 잘해야 30만개인 일자리에 만족할 사람은 없다. 투자하는 분들 업어준다지만 현장에선 저인망 세무조사와 중소·중견기업까지 옥죄는 경제민주화 광풍으로 꽁꽁 얼어붙었다. 성장잠재력은 아무 때나 의도한다고 살아나는 게 아니다.

오형규 논설위원 oh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