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사, 제작비 절반 주며 "PPL로 벌어라"
입력
수정
지면A32
김종학 PD 자살 부른 드라마 외주제작 실태출연료 미지급 소송에 휘말려 비극적으로 삶을 마감한 고(故) 김종학 PD의 죽음을 계기로 부실한 드라마 제작시스템을 개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출연료 지급보증제나 보험제 등을 도입하는 방안이 유력시되고 있다.
'신의' '도망자' 등 9편 출연료 총 31억 미지급…지급보증·보험제 도입을
◆출연료 미지급 드라마 9편 김 PD가 소송에 연루된 드라마는 지난해 8월 방영된 24부작 ‘신의’. 회당 제작비가 5억5000만원으로 총제작비가 132억원에 달했다. SBS는 방영권만 확보하는 대가로 8억원 규모의 3차원(3D) 영상 예고편 제작비와 함께 회당 2억3000만원을 제공했다. 나머지 회당 3억2000만원의 제작비는 김 PD 측이 판권 수출과 간접광고(PPL) 등으로 조달하기로 했다.
김 PD 측은 당초 10억원 정도 흑자가 날 것으로 기대했으나 판권 수출과 PPL 협찬 수입이 기대에 못 미치면서 15억원 정도 적자를 봤다. 시청률(10%)이 기획 당시 예상의 절반에도 못 미쳤기 때문. 톱스타 김희선과 이민호 등에게 지급하지 못한 출연료가 총 6억4000만원에 달했다. 방영이 끝나고도 출연료를 지급하지 못한 드라마는 이뿐만이 아니다. 한국방송연기자노동조합(한연노)에 따르면 24일 현재 연기자들에 대한 드라마 출연료 미지급액은 총 31억7400만원, 드라마 편수는 총 9편이다. 모두 외주제작 드라마이다. 방송사별로는 KBS가 5편으로 가장 많다. MBC ‘아들녀석들’은 외주제작사 대표가 해외 도피 중이다.
◆방송사에만 유리한 제작관행
이 같은 사태가 발생하는 이유는 부실한 제작시스템 때문이다. 국내 드라마 제작비는 회당 평균 3억원 안팎. 방송사가 계약조건에 따라 30~80%를 제공하고 나머지를 제작사가 조달하고 있다.
방송사는 드라마 방영 때 광고료나 판권 수출로 대부분 흑자를 거두지만 제작사는 적자를 내는 경우가 많다. 방송사는 편성권을 무기로 제작비를 깎고, 제작사는 편성을 따내기 위해 무리하게 예산조달 계획을 세우기 때문이다.
안인희 한연노 사무국장은 “출연료 미지급 사태는 대부분 영세한 신생 제작사들이 초래하고 있다”며 “방송사가 외주사를 선택할 때 재정능력을 반드시 살피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방송계 관계자는 “방송사와 제작사는 기존의 갑을 관계를 청산하고 새로운 상생관계로 나아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방송사에만 유리한 외주제작 관행이 사라져야 한다는 얘기다. ◆지급보증·출연료보험제 도입해야
정부도 대책을 마련 중이다. 박영국 문화체육관광부 미디어정책국장은 “연기자 출연료에 대한 지급보증을 규정한 표준계약서를 다음달 초 고시할 것”이라고 말했다. 표준계약서가 도입되면 미지급 사태가 거의 사라질 것으로 박 국장은 예상했다.
김종학프로덕션 대표를 지낸 박창식 새누리당 의원은 “PPL 제도가 제작사 측에 비용을 떠넘기는 역할을 하는 만큼 PPL을 아예 없애고 방송사가 전액 부담하는 방안도 검토해야 한다”며 “표준계약서를 가이드라인 정도로만 여겨서는 효과가 없기 때문에 강제하는 방안도 적극 검토해야 한다”고 말했다. 연기자들의 출연료에서 일정액을 적립해 미지급 사태 시에 지원하는 출연료 보험제를 도입하는 방안도 제기되고 있다. 톱스타의 개런티 상승을 억제하는 효과를 가져와 제작시장을 건전하게 만들 수 있다는 주장이다.
유재혁 기자 yooj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