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급 공무원 시험 20만명 몰렸다

올 대졸자의 절반 규모…민간 '좋은 일자리' 줄어 사상 최대 지원
오는 27일 치러지는 올해 9급 공무원(서기보) 공채 시험에 20만4698명이 몰렸다. 정부 수립 이듬해인 1949년 9급 공채 시험을 시행한 이래 최대다. 그동안 대학졸업자들이 선호하던 대기업 금융사 등의 ‘좋은 일자리’가 줄어들자 대졸자들이 대거 응시한 데 따른 것으로 분석된다.

안전행정부는 24일 행정직 기술직 등 9급 국가공무원 2738명을 선발하는 올해 공채 시험에 20만4698명이 원서를 제출해 74.8 대 1의 평균 경쟁률을 보였다고 발표했다. 공무원 선발 인원은 지난해에 비해 558명 늘었다. 2008년 49.1 대 1이던 9급 공채 경쟁률은 2011년 94 대 1까지 치솟았다. 올해 경쟁률은 2011년과 비교하면 낮지만 지원자 수는 2011년의 14만2732명보다 6만명가량 증가했다. 올해 4년제 및 전문대 등 대학졸업자가 48만8616명임을 감안하면 절반에 가까운 인원이 9급 공채에 응시한 셈이다.

조성제 안행부 채용관리과장은 “예년보다 선발 인원이 늘어난 데다 올해 처음으로 선택과목에 고교 교과목인 사회, 과학, 수학을 추가하면서 시험이 쉬워졌다는 인식이 퍼져 응시자가 급증했다”고 설명했다. 응시자 대부분은 대졸자인 것으로 알려졌다.

대졸자들이 5급 행정고시나 7급 공무원에 이어 9급 공무원 시험에 대거 몰리는 것은 이른바 민간 기업들이 뽑는 ‘좋은 일자리’가 갈수록 줄어들기 때문이다. 수익성이 나빠진 은행들은 상반기 대졸자 채용 규모를 지난해 1484명에서 올해는 926명으로 500여명 줄였다. 우리은행의 경우 작년 6월 200명보다 65% 줄인 70명을 지난달 대졸 신입행원으로 뽑았다. 국민은행도 지난해 상반기 대졸자(외국 대학 졸업)를 92명 뽑았으나 올 상반기에는 46명으로 줄였다. 농협은행은 지난해 상반기 580명을 채용했으나 올해는 300명으로 축소했다. 은행과 증권사 등 금융회사들은 올 하반기도 점포 축소 등 구조조정을 예고하고 있어 채용 규모를 작년보다 줄일 전망이다. 대기업도 상반기에 대졸 신규 채용을 줄였다. SK그룹은 올 상반기 인턴으로 지난해보다 200명 적은 300여명을 채용했다. 지난해 상반기 300명의 신입사원을 채용한 두산그룹은 올해 150여명을 뽑았다. CJ그룹은 지난해 상반기 550여명에서 올해는 500여명으로 줄였고 롯데그룹은 지난해 1700명(신입과 인턴 포함)에서 올해는 1400명으로 축소했다.

고교과목 선택 가능…고졸도 지원 늘어

일각에서는 경기 침체로 경영이 어려워진 기업들이 △비정규·계약직의 정규직 전환 △시간제 정규직 도입 △고졸 채용 확대 등으로 인해 대졸 신규 채용 규모를 줄인 것으로 해석하고 있다. 이국헌 고려대 경영학과 교수는 “기업 경영 환경 악화로 대학생이 선호하는 은행 증권 대기업 등 ‘좋은 일자리’가 10만명 이하로 줄고 있다”며 “이에 따라 대졸자 48만명 중 나머지 38만명 가운데 많은 사람이 공무원 시험에 지원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한편 ‘공무원 취업준비반’을 구성해 지원하는 특성화 고교가 대폭 늘어난 것도 9급 공채 응시자가 증가한 요인으로 꼽힌다. 이른바 ‘공시족(공무원 시험 준비생)’이 몰려 있는 서울 노량진·신설동 주변의 학원가에도 대학을 졸업한 취업 재수·삼수생은 물론 고졸자까지 섞여 학원생이 늘고 있다.

1997년 외환위기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거치면서 민간 기업의 고용 안정성이 낮아져 사회 전반적으로 공직 선호 현상이 확산되고 있다. 민간 기업이나 창업 전선에 뛰어들어야 할 청년들이 쾌적한 근무 여건, 평생 직장, 안정된 노후연금 등을 보장받는 공무원에 몰리면서 사회 전반의 활력이 떨어질 것이라는 우려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김문조 고려대 사회학과 교수는 “기업들의 성장 속도가 빨랐던 산업화 시대에는 기업 선호도가 높았지만 경기 침체가 이어지면서 공직과 공기업에 대한 선호도가 높아졌다”고 분석했다. 조경호 국민대 행정학과 교수도 “기업에 입사해 경쟁을 통해 성공하기보다 경쟁이 덜한 공직을 직장으로 택하려는 움직임이 두드러졌다”며 “성취보다는 안정을 직업 선택의 잣대로 삼고 있다”고 지적했다.

강경민/양병훈/홍선표 기자 kkm1026@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