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가 은행이 알루미늄값 왜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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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 음료수캔 업체들 주장“월가의 투자은행들이 원자재 창고의 알루미늄 공급량을 조절해 시장 가격을 왜곡했다.”
美 Fed, 실물투자 제한 검토
유럽의 음료수 캔 생산업체들이 미국 상품선물거래위원회(CFTC) 조사에서 이같이 진술했다고 텔레그래프가 23일(현지시간) 보도했다. 계속되는 은행들의 가격 왜곡 의혹에 CFTC가 피해업체들을 대상으로 기초 조사를 한 결과다. 최근 미국 중앙은행(Fed)이 시중은행의 원자재 실물투자를 금지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어서 이번 조사에 관심이 모아진다. 알루미늄 생산에 차질이 없고 재고는 오히려 늘었는데도 캔 제조업체 등 수요자들은 알루미늄을 제때 확보하지 못하는 일이 계속됐다. 시장의 수요공급 법칙이 제대로 작동했다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어떻게 이런 일이 발생했을까.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2003년 상품시장에서 은행의 원자재 거래가 허용되자 월가의 대형은행들은 원자재 창고 사업에 뛰어들었다. 골드만삭스는 런던금속거래소(LME)에서 인가된 39개 저장창고 중 34개를 운영하는 창고업체 ‘메트로 인터내셔널 트레이드 서비스’를 인수했고 JP모건은 세계적인 금속창고 업체 헨리바스를 사들였다.
창고업체를 앞세운 은행들은 알루미늄 소유자에게 각종 인센티브를 주면서 창고 저장 물량을 늘리도록 종용했다. 재고가 늘자 알루미늄 현물시세는 낮게 형성됐고 현물과 선물 간 가격 차이가 벌어졌다. 선물시세가 현물보다 높은 상황에서는 현물을 사고 선물을 파는 차익 거래가 가능하다. 월가의 은행들은 저금리를 이용해 현물을 사들여 선물로 팔았고 이에 따라 가까운 시기에 인도되는 물량이 줄어들었던 것이다. 결국 공급 물량 부족으로 제조업체들이 물건을 공급받기 위해선 최대 18개월을 기다려야 했다. 당장 원재료가 필요한 제조업체들은 웃돈을 주고서라도 알루미늄을 구할 수밖에 없었다. 미국 시장에서 2010년 파운드당 6.5센트였던 알루미늄 프리미엄은 지난 6월 12~13센트로 치솟았다. 미국 맥주협회는 “맥주 캔용 알루미늄 조달에 2010년 이후 연간 30억달러의 비용이 추가로 들었다”고 주장했다.
박병종 기자 dda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