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마을] 정전 60년…판문점에서 웃고 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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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면A27
판문점과 비무장 지대
김봉규 외 사진·이태호 글 / 눈빛 / 528쪽 / 2만9000원
![1953년 8월 인민군 전쟁포로를 실은 트럭들이 판문점으로 향하고 있다. /눈빛출판사 제공](https://img.hankyung.com/photo/201307/AA.7684396.1.jpg)
당시 널문리에는 초가 세 채와 주점이 콩밭 옆에 있었다. 유엔군은 콩밭에 회담장을 지었다. 회담장 명칭을 영어, 중국어, 한글로 표기할 수 있어야 했다. 중국어 표기가 문제였다. 그래서 만든 지명이 널문리의 널문에서 딴 판문(板門)과 주점의 점(店)을 따서 지은 판문점이다. 이후 양측은 여기서 동쪽으로 500m 옮긴 지점에 새 판문점을 설정했고, 1953년 7월27일 이곳에서 정전협정에 조인했다.
![](https://img.hankyung.com/photo/201307/AA.7684423.1.jpg)
전·현직 사진기자와 사진가들이 찍은 사진과 사회평론가 이태호 씨의 글이 역사의 현장을 생생하게 증언한다. 유엔군 머레이 대령과 북측 장평산 대좌가 비무장지대 분계선을 지도 위에 긋고 있는 모습, 서울에서 열린 정전회담 반대 시위 모습이 생생하다. 정전협정 조인 후 각기 귀환하는 전쟁포로들의 너무나 상반된 모습도 인상적이다. 유엔군 포로들은 덤덤한 표정인 데 비해 인민군 포로들은 남측에서 지급받은 옷을 벗어던지는 등 돌아가는 행차가 요란하다.
![판문점 ‘자유의 집’ 앞에 도열한 유엔군 경비병들. /눈빛출판사 제공](https://img.hankyung.com/photo/201307/AA.7684413.1.jpg)
일러스트레이티드, 런던뉴스 등 외신이 전한 정전회담 사진, 정전 조인 다음날 평양에서 벌어진 대중집회 및 중공군 전선 철수 사진, 북한 잔류 유엔군 포로의 판문점 기자회견 사진, 군사분계선을 합동으로 실측하는 컬러 사진, 유엔군과 북한군 경비병의 난투극 장면 등은 국내 최초로 공개하는 것이라고 출판사 측은 설명했다. 1971년 남북적십자회담부터 남북정상회담과 고위급회담, 이산가족찾기, 경협, 개성공단 건설 등 대화와 협력, 교류의 현장도 생생하게 담았다. 판문점과 비무장지대가 분단과 절망의 땅이 아니라 희망의 땅이요, 분열의 쐐기가 아니라 상생의 접합제이기를 바라는 글쓴이의 염원이 간절하다.
서화동 기자 firebo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