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art-up] 풀이과정마다 이해도 측정…수학교육 '혁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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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라인 수학교육 솔루션 만든 '노리'지난해 초 수학교육 솔루션을 만드는 한 국내 스타트업을 만난 유명 엔젤투자자는 “어렵겠다”며 고개를 저었다. 국내 시장을 건너뛰고 미국 시장에 곧바로 진출하겠다는 포부를 듣고 나서다. 이 엔젤투자자는 “해외에 나가 성공하기는 극히 힘들다”며 “국내에서 사업모델을 먼저 검증하는 것이 어떻겠느냐”고 만류했다. 처음 듣는 얘기는 아니었다. 이 회사가 만난 투자자 중 80%는 비슷한 피드백을 줬기 때문이다. 당시 10여명으로 이뤄진 팀에는 미국에 ‘연줄’이 있는 팀원도 없었다. 정식 제품이 나오지 않아 해외 마케팅 채널도 갖춰지지 않았다. 하지만 이 회사는 해외 진출 의지를 굽히지 않았다. 지난 5월 미국 뉴욕교육청이 연 교육 솔루션 대회 ‘NYC 스쿨스 갭 앱 챌린지’에서 1등을 차지하며 미국 시장에 이름을 알린 ‘노리(KnowRe)’ 얘기다.
어디서 막혔는지 알려 줘…문제은행式 솔루션과 차별화
투자자 반대 무릅쓰고 해외진출…美 중·고교 36곳에 서비스 제공
◆요소별로 이해도 측정 노리는 딜로이트, AT커니 등 컨설팅 회사 경험이 있는 김용재 대표와 서울과학고를 졸업한 김서준 최고제품책임자(CPO), 조승연 최고기술책임자(CTO) 등이 주축이 돼 설립한 수학 교육 솔루션 업체다. 이 회사가 만드는 제품은 웹사이트 기반의 맞춤형 수학교육 소프트웨어다.
소프트웨어의 핵심 아이디어는 ‘단위 지식(knowledge unit)’이다. 중·고교 과정의 수학 문제를 유형별로 분석해 각 문제를 이루는 요소(단위 지식)를 데이터베이스(DB)로 만들었다. 학생들이 소프트웨어를 통해 문제를 풀면 이 요소별로 이해도를 체크해 어느 부분에서 막혔는지 알아낼 수 있다.
기존 교육 솔루션이 다양한 문제를 단순히 쌓아놓은 ‘문제은행’식인 것과 차별화되는 부분이다. 이 아이디어가 세계 어디서나 통할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다. 신종호 최고정보책임자(CIO)가 처음 생각해냈다. 김 대표는 “다른 업체가 개발하려면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시장을 선점할 수 있는 기술적 허들”이라며 “특허를 통해 보호할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이 같은 특징을 바탕으로 지난 4월 열린 전미수학교사협회 콘퍼런스(NCTM)에 베타 버전 제품을 출품해 큰 관심을 받았다. 미국 120여개 중·고교에서 시범 프로그램 신청이 들어와 이 중 36개교와 계약을 체결했다.
◆세계적으로 온라인 교육 시장 성장
제품에 대한 자신감과 더불어 미국 진출 의지를 굳힌 다른 이유는 미국 온라인 교육시장에 대한 전망이었다. 김 대표는 “미국에서 디지털교과서 인기가 높아지며 학습 자체가 소프트웨어를 통해 이뤄지는 온라인 교육 시장이 급성장하고 있었다”며 “국내에서 온라인을 이용한 교육은 메가스터디 류의 인터넷강의가 대부분이었기 때문에 미국부터 진출하는 전략이 옳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소프트웨어를 이용한 교육은 세계적으로 확대될 전망이다. 김 대표는 “온라인으로 수업을 이수하고 학위를 따는 대중공개수업(MOOC) 등이 교육계의 새로운 트렌드”라며 “앞으로 이 분야도 노리에 기회가 될 수 있을 것”으로 내다봤다.
지난해 5월 국내 최대 창업 관련 행사인 ‘비런치’에서 벤처비트 어워드, 지난해 10월 글로벌 창업지원 프로그램 ‘K스타트업’에서 대상을 받는 등 국내 창업대회에서도 기술력을 검증받았다. 지난해 말에는 소프트뱅크벤처스에서 15억원을 투자받았다.
미국에 성공적으로 첫발을 내디딘 스타트업 중 하나로 꼽히지만 김 대표는 “미국 진출은 쉽게 결정할 일이 아니라는 의견에 동의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노리가 미국 시장을 먼저 고집한 이유로 △미국에서 실패하더라도 국내에서 디자인(UI)만 바꿔 출시하면 되는 ‘기술 기반’ 콘텐츠를 만든 점 △세계적으로 온라인 소프트웨어 교육이 신흥 시장이기 때문에 한·미 어디서나 위험 요소가 컸던 점 △미국 시장에서 아시아권 수학 교육 방식에 대한 신뢰가 높은 점을 꼽았다. 30여명으로 팀원이 늘어난 노리의 당면 과제는 시범 프로그램 계약을 체결한 학교에서 가시적 성과를 거두는 것이다. 김 대표는 “미국 전역의 수학교사들이 몰리는 NCTM에 꾸준히 참여해 인지도를 높일 계획”이라며 “대학 수업 등으로 커리큘럼을 다양화하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김보영 기자 wi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