쥐구멍 찾는 적립식펀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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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억만들기' 추억된지 오래‘적립식펀드 전성시대 끝나나.’
증시 부진에 자금 썰물…전성기 2009년 77조서 52조로 비중 쪼그라들어
은행권, 수수료 수입 많은 보험·적금 판매에 열올려
수년 전까지 불티나게 팔리던 적립식펀드의 인기가 사그라지고 있다. 경기 침체로 투자자 지갑이 얇아진 데다 증시 부진까지 겹친 탓이다. 은행권이 적립식펀드 대신 수수료가 높은 보험과 자사 적금 판매로 눈을 돌린 것도 주요 배경 중 하나다. 전문가들은 장기 적립식펀드에 대한 세제 혜택 등이 마련되지 않으면 이런 추세를 되돌리기 어려울 것으로 전망했다. ○4년 새 반토막난 적립식펀드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적립식펀드 판매잔액은 2009년 초만 해도 77조원을 돌파하며 전성기를 누리다가 이후 내리막길을 걷고 있다. 2011년 말 57조802억원, 작년 말 53조8640억원, 올 5월 52조7673억원으로 감소했다. 적립식펀드 잔액이 4년여 만에 30% 이상 빠졌다.
2009년 5월 1565만개였던 적립식펀드 계좌 수는 올 5월 763만개로 반토막이 났다. 전체 펀드 판매액 중 적립형이 차지하는 비중 역시 2009년 말 31.8%에서 올해 5월 28.5%로 줄었다. 적립식펀드가 이처럼 외면받는 것은 증시 침체로 수익률이 예전만 못하다는 인식이 굳어져서다. 김철배 금융투자협회 집합투자서비스본부장은 “한때 1억만들기, 3억만들기 등의 적립식펀드가 선풍적인 인기를 모았지만 금융위기 때 원금 손실이 발생한 후 투자자의 관심이 멀어졌다”고 말했다.
○미래에셋·한투증권 판매 많아
증권사들이 판매한 전체 펀드 중 적립형이 차지하는 비중은 18.5%에 그친 것으로 집계됐다. 한번에 목돈을 넣는 거치형 펀드가 대다수란 얘기다. 보험사에서 판매하는 적립식 변액보험(펀드) 비중은 9.7%로, 증권사보다도 낮았다. 반면 은행권의 적립식펀드 비중은 43.4%로 가장 높았다. 지금까지 적립식펀드를 가장 많이 판매한 곳은 국민은행(9조6455억원)이다. 다음으로 신한은행(5조6648억원) 우리은행(5조5844억원) 하나은행(4조4248억원) 등의 순이다.
증권사 중에선 미래에셋증권(3조3704억원)과 한국투자증권(3조1277억원)이 적립식펀드를 많이 취급했다. 금융계 관계자는 “영업점이 많은 은행권이 적립식펀드를 판매하기에 유리한 환경”이라며 “다만 은행들은 최근 들어 수수료가 낮은 적립식펀드 대신 보험이나 자사 적금 판매에 치중하고 있다”고 전했다.
○은행 적금엔 뭉칫돈 유입 적립식펀드로 향하던 돈 중 상당액이 은행 적금으로 방향을 튼 것으로 분석됐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은행권의 적금 잔액은 2011년 5월 22조2088억원에 불과했으나 작년 말 32조1680억원, 올 5월엔 34조9760억원으로 급증했다. 적금 잔액이 2년 사이에 57.5% 불어났다.
증권 전문가들은 적금 금리가 연 2~3%대로 낮아진 상황에서 ‘적립식펀드 외면’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김현규 삼성증권 연구위원은 “적립식펀드에 장기간 가입해 평균 매입단가를 낮추는 효과를 누리면 훌륭한 자산 증식 수단이 될 수 있다”며 “다만 각 운용사 펀드의 세부 전략을 따져볼 필요는 있다”고 조언했다. 김 본부장은 “국회에 계류 중인 장기세제혜택 펀드가 도입되면 적립형에 장기 투자하는 문화를 유도할 수 있다”고 말했다.
조재길 기자 road@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