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라이프] "1회성 트렌드· '미투' 제품으론 한계…시장 흔들고 싶다면 모방 힘든 가치 만들어라"

경영코치 - 하얀국물 라면 돌풍에도 농심이 1위 지킨 배경은…

낮은 가격 앞세운 PB 라면이나 '건강' 앞세운 풀무원 라면이 시장서 태풍의 눈 될 수도
2011년 가을 갑자기 몰아닥친 ‘하얀 국물’ 라면 열풍은 절대 강자인 농심의 아성을 뒤흔들 태풍으로 발전하지 않을까 큰 관심을 끌었다. 추격자인 삼양식품과 오뚜기, 팔도는 당시 시장 판도를 뒤바꿀 계기를 찾았다며 쾌재를 불렀다. 팔도가 꼬꼬면을 내놓은 것을 시작으로 삼양식품이 나가사끼짬뽕, 오뚜기가 기스면을 연이어 선보이며 시장점유율을 높여갔다. 2등 삼양의 점유율은 10% 수준에서 16% 이상으로 수직 상승했고, 팔도 역시 꼬꼬면 판매에 힘입어 점유율이 13%까지 올랐다. 반면 농심은 점유율이 60% 아래로 추락하며 자존심을 구겼다.

하지만 출렁이던 시장은 기대만큼 오래가지 않았다. 1년여 만에 하얀 국물 라면 인기가 시들해지면서 삼양의 점유율은 내리막길을 걸었다. 올해 들어선 1등을 추격하기는커녕 3등 오뚜기에 2등 자리마저 뺏겼다.

라면 업계에선 ‘하얀 국물 라면이 예외적으로 나타난 트렌드인데도, 너무나 큰 열풍이 불다 보니 마케팅 전문가들조차 착각한 것’이라는 반성이 나왔다. 이 기간 농심은 공고한 시장지배력을 재확인했고, 오뚜기는 하얀 국물 라면에만 매달리지 않고 신제품 개발에 힘을 쏟아 2등 자리를 꿰찼다. 김수언 기자 sookim@hankyung.com

코칭포인트 1
초경쟁 시장에선 제품별 경쟁우위 기간이 매우 짧다
1963년 국내 시장에 처음 선보인 라면은 50년 역사 이래 가장 치열한 초경쟁(hyper competition) 상황에 직면했다. 초경쟁이란 시장에 매년 신제품이 쏟아져 나오지만, 정작 소비자들은 특별한 차이점을 느끼지 못하는 경쟁 상황을 의미한다.

이 기간 동안 라면 시장은 경쟁 관점에서 볼 때 1980년대 중반 농심이 삼양식품을 제치고 1위로 등극한 이후 큰 변화가 없었다. 길게 보면 농심이 1위가 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소고기 육수 사용, 삼양식품의 위기를 초래한 1989년 ‘우지 파동’, 그리고 정체된 라면시장을 확장시킨 용기면 등장이 거의 전부였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2000년대 들어 농심, 삼양식품, 오뚜기, 팔도의 4강 구도로 과점 경쟁이 고착화됐고, 그 가운데서도 소고기 육수와 용기면을 선도했던 농심이 확고한 1위 자리를 유지할 수 있었다. 초경쟁의 특징 중 하나는 어떤 기업이 신제품을 출시해도 극히 짧은 시간 내에 경쟁자들이 모방 제품을 출시하기 때문에 그 기업이 누릴 수 있는 경쟁우위 유지 기간이 대단히 짧다는 점이다. 따라서 일시적인 유행은 단기간은 몰라도 중장기적으로 시장에서 의미 있는 변화를 일으키지 못한다. 순식간에 ‘미투(me too)’ 제품이 쏟아져 나오기 때문이다.

2011년 한 방송에서 시작된 하얀 국물 라면이 그랬고, 올 들어 다른 방송에서 유행시킨 짜파구리 즉, 자신의 취향에 맞게 새롭게 레시피를 만드는 모디슈머(modify+consumer) 이슈도 한계가 있을 것이다.

코칭포인트 2
모방하기 힘든 가치를 만들어야 시장을 흔들 수 있다 지금 필요한 것은 단기 유행이 아니라 초경쟁 상황에서 흔히 관찰할 수 있는 구조적 변화에 주목하는 것이다. 구조적인 변화는 라면 시장의 양극단에서 시작될 수 있다.

첫 번째는 2000년대 대형 유통업체를 중심으로 출시된 자체상표(PB) 라면의 위협이다. 강력한 저가격(→초경쟁시장을 뒤흔들 수 있는 가치) 경쟁자가 등장해 기존 라면업체들의 수익성을 압박하는 경우이다. 이들은 기존 라면제품과 비슷한 품질을 제공하면서 저렴한 가격으로 소비자를 유혹하고 있다. 우유 산업에서도 비슷한 현상이 관찰되는데, 우유 소비량이 많은 미국과 유럽의 경우 이미 자체상표 우유가 제조업체 브랜드 우유보다 시장점유율이 더 높다.

두 번째 변화는 기존 라면업체들이 사활을 걸고 있는 프리미엄 라면의 출시다. 농심이 신라면 블랙으로 신시장 개척을 위해 노력 중이고 다른 업체들도 정체된 내수시장에서 수익성을 제고하기 위해 앞으로 계속 프리미엄 제품 출시를 시도할 것이다.

관건은 소비자들이 높은 가격을 수용할 수 있게 만드는 차별화 요소를 창출할 수 있느냐다. 아직 초기지만 튀기지 않은 면과 합성 첨가물을 넣지 않은 스프(→초경쟁시장을 뒤흔들 수 있는 가치)를 강조한 후발업체 풀무원은 ‘건강’이라는 새로운 가치로 기존 업체에 도전하고 있다.

무작정 신제품을 내는 것이 해결책이라고 오판해서는 안 된다. 고만고만한 신제품 출시는 오히려 초경쟁을 가속화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경쟁자들이 모방하기 어려운 독특한 가치를 구현하는 업체만이 초경쟁에서 시장을 흔들 수 있다.

코칭포인트 3
본질에 충실하라…성공 마케팅의 시작은 훌륭한 제품

세계적인 경영구루 필립 코틀러 미국 노스웨스턴대 켈로그 경영대학원 석좌교수는 ‘마케팅은 경쟁사보다 더 나은 방식으로 고객을 만족시키는 예술’이며, 경제 성장이 둔화돼 제품 수요가 줄어드는 시기일수록 기업이 성장하기 위해서 마케팅의 역할은 더욱 중요해진다고 강조한다.

코틀러 교수는 무엇보다 기업들은 각자의 시장 위치에 걸맞은 전략을 추구하라고 조언한다. 예를 들어 1위 기업은 혁신자 노릇보다는 ‘빠른 추종자’가 되는 편이 낫다. 스스로 혁신적 제품을 내놔 기존 시장질서를 무너뜨리기보다는 ‘빠른 모방’을 통해 시장 지배력을 유지하라는 것이다.

반면 2위 기업은 1위 기업보다 더 나은 가치 제공 및 생산성 격차 해소를 통한 가격 인하 전략을 활용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더 작은 업체라면 시장 격차를 단숨에 해소할 수 있는 혁신과 차별화 전략을 추구해야 한다. 확실한 리더가 되기 위해선 업계 표준이 될 수 있는 혁신적 제품을 제공해야 선두로 부상할 수 있다.

꼬꼬면 돌풍을 몰고 왔던 팔도는 업계 4위 업체로 빨간 국물 시장 일변도였던 라면업계의 표준을 하얀 국물로 바꾸기 위해 혁신적 제품을 제공했다. 2위 업체였던 삼양은 나가사끼짬뽕을 출시해 하얀 국물 라면 전쟁에 뛰어들었고 초기에는 시장점유율이 올라가는 소기의 성과를 이뤘다.

하지만 시장 1위 업체였던 농심은 코틀러 교수의 제언과는 반대로, 즉 ‘빠른 모방’을 통해 시장 지배력을 유지하는 대신 업계 표준이었던 빨간 국물 시장을 지키는 길을 선택했고 결과적으로 그 선택은 적중했다.(→농심이 1위 자리를 지키기 위해 택한 전략)

왜 그랬을까? 하얀 국물 돌풍이 경쟁사보다 더 나은 혁신적인 제품으로 고객을 만족시켰다기보다는 TV 프로그램을 통해 일어난 일시적인 호기심에 기인했기 때문이다.

팔도와 삼양이 하얀 국물을 바탕으로 한 새로운 신제품 출시에 더딘 사이에 농심은 빨간 국물 시장에서 새 제품을 계속 내놓으면서 업계 표준을 지켜낼 수 있었고, 그 결과 시장은 기존의 질서로 회귀하게 됐다.

뜨겁게 달아올랐다가 이내 식어버린 하얀 국물 라면 광풍 현상은 성공적인 마케팅은 결국 훌륭한 제품에서 시작한다는 평범한 진리를 새삼 깨닫게 한다.도움말 주신 비즈&라이프 자문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