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칼럼] 행복 호르몬

고두현 논설위원 kdh@hankyung.com
‘그가 안나에게 이야기할 때마다 안나의 눈에는 기쁨의 섬광이 불타올랐고, 행복한 미소가 그 진홍빛 입술을 일그러뜨렸다. 그녀는 차마 그러한 태도로 마음속 환희의 징후를 밖으로 나타내지 않으려 애쓰고 있는 듯했다. 그러나 그러한 것들은 저절로 그녀의 얼굴에 나타났다.’

톨스토이 소설 ‘안나 카레니나’의 한 대목이다. 사랑에 빠지면 눈이 반짝이고 입술에는 미소가 그득하며 뺨은 홍조로 붉게 물든다. ‘행복 호르몬’으로 불리는 도파민이 분수처럼 분비되기 때문이다. 도파민은 포유동물과 달팽이의 뇌 안에 있는 신경전달 물질로 쾌감·즐거움에 관한 신호를 전달함으로써 행복을 고조시킨다. 쾌락 에너지가 발산되면 활력이 넘치고 기쁨이 최고조에 달하면서 연신 웃음을 터트리게 된다. 도파민은 일단 한번 맛보면 지속적으로 그것을 추구하도록 기억에도 새겨진다. 그래서 인류에게 달콤한 사랑의 과즙을 제공하는 ‘낙원의 사과’로도 불린다. 쾌락 에너지와 흥분은 마약중독자의 뇌 활동과 비슷한데, 아쉽게도 격정적인 사랑의 유효기간은 길어야 30개월이라고 한다. 헤어진 연인들이 슬픔과 고통을 겪는 것은 도파민 중독의 후유증인 셈이다.

부지런하고 게으른 것도 도파민과 관련이 있다. 도파민이 늘어나면 의욕이 샘솟아 부지런히 활동하게 되고, 부족하면 의기소침하거나 우울해진다. 과도하면 환각이나 편집증을 겪고, 너무 모자라면 몸을 제대로 움직이기 어려운 파킨슨병이나 정신분열증에 걸린다. 그래서 마음속의 당근과 채찍 역할을 동시에 수행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기대보다 나은 보상이나 예상보다 덜한 처벌에 민감하게 반응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엊그제 도파민이 보상과 처벌을 각각 따로 인식한다는 연구결과가 나왔다고 한다. KAIST의 크리스토퍼 피오릴로 교수가 ‘도파민 신경세포가 보상에만 반응할 뿐 처벌에는 반응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발견했다는데, 그동안의 상식을 완전히 뒤집은 것이어서 주목된다. 붉은털원숭이에게 달콤한 주스(보상)와 짠 소금물(처벌)을 줘서 조건반사 반응을 보이도록 했더니 보상에는 민감하게 반응했지만 처벌에는 별다른 변화를 보이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는 처벌에 반응하는 신경전달물질이 따로 있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을 보여준다. 기분을 좌우하는 호르몬은 쾌감을 주는 도파민 외에도 불안과 스트레스를 관장하는 노르아드레날린, 이 둘의 균형을 잡아주는 세로토닌 등이 있다. 앞으로 이들의 기능을 더 연구하면 우울증 치료에도 도움을 받을수 있다고 한다. 각각의 역할을 더 정밀하게 구분하면 고통이나 공포까지도 완화할 수 있다니 기대가 크다.

고두현 논설위원 kd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