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칼럼] 십일조

오춘호 논설위원 ohchoon@hankyung.com
맹자(孟子)는 수익의 10%가 가장 훌륭한 세금제도라 여겼다. 그는 당시 중국 제후들과의 대화에서 수차례 십일조(十一租)를 강조했다. 이후 중국에선 10% 조세가 선정(善政)의 상징이었으며 문란해진 세제를 바로잡는 하나의 불문율로 내려왔다. 우리 역사에서 가혹한 세금으로 상징되는 인물은 태봉의 궁예다. 그는 생산량의 30%가 넘는 가혹한 세금을 거뒀다. 자영농 계층이 몰락하고 농민들이 유민으로 떠도는 것을 목격한 왕건은 고려를 세우자마자 십일조 세금을 공식화했다. 이 제도는 이성계에까지 이어진다. 세종은 1444년 농작물의 풍흉에 따라 9등급으로 나누는 연분구등법을 실시하면서 정률세를 일종의 정액세로 바꿨다.

서양에서 십일조의 전통은 수메르나 이집트 문명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헤로도토스는 고대 바빌론 왕국에서도 제우스신에게 10분의 1을 바치도록 했다고 그의 책 ‘역사’에 적었다. 농경사회에선 생산물의 10% 정도가 노동의 부가가치이자 잉여라고 생각했던 모양이다. 로마도 평균 10%를 세금으로 징수했다. 기독교 십일조(tithe)는 고대 유대교의 관습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아브라함이 전리품의 10분의 1을 제사에 바친 데 기원을 둔다는 주장과 야곱이 시내산에서 제사를 드린 것을 시초로 보는 등 여러 기원설이 있다. 서양사에선 흉년이 들거나 지진 홍수 등의 천재(天災)가 닥치면 십일조에 대한 저항이 잇따랐다. 세금과 십일조에 대한 이중 부담이 컸던 것이다. 1524년부터 2년간 독일 농민들이 벌였던 독일 농민전쟁의 직접적인 원인은 십일조였다. 1529년 프랑스 리용지역에서 번졌던 십일조 저지 운동은 30년을 끌기도 했다.

개신교 최대 교단인 예장합동이 십일조를 이행하지 않는 신자들의 권리를 중지시키는 방안을 추진 중이어서 논란이 일고 있다. 이들 신자에겐 장로 권사 등 교회 안의 선출직에 대한 선거권과 피선거권을 박탈하겠다는 것이다. 예장 측은 이 내용을 9월 총회에 상정할 계획이라고 한다. 물론 반대 여론도 만만찮다. 교회 통계에 따르면 십일조를 철저하게 지키는 개신교인은 1998년 32.8%에서 지난해 26%로 계속 낮아지고 있다고 한다. 신앙의 약화라기보다는 불경기 탓일 것이다.

최근 헌금이 걷히지 않아 대형 교회들이 매물로 많이 나와 있다고도 한다. 교회 매매 가격도 더이상 신도수에 십일조를 곱할 수 없게 됐다. 국가에 내는 세금을 놓고도 최근 우리 사회는 큰 홍역을 치르고 있다. 하느님에게 돌아갈 것과 카이사르에게 바쳐질 것이 모두 금액의 크기를 놓고 갈등 중이다.

오춘호 논설위원 ohcho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