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치왕국 일군 김재철 동원그룹 회장, 사모아서 '눈물의 기념식'

인사이드 Story - 동원·스타키스트 '50년 인연'

원양어선 선장이던 25세때 '참치1위' 스타키스트에 납품…동원산업 설립·성장 밑거름

2008년 스타키스트 인수, 반년 만에 흑자로 전환시켜
원양어선 선장 시절의 김재철 회장.
남태평양 섬나라 사모아공화국의 스타키스트 참치공장. 18일(한국시간) 이곳에서 열린 ‘스타키스트 공장 설립 50주년 기념식’에 참석한 김재철 동원그룹 회장(79)은 깊은 감회에 젖었다. 동행한 그룹 임직원에게 “50여년 전엔 이 공장에 참치를 납품하지 못하면 어쩌나 하는 걱정에 잠도 제대로 못 잤는데…”라며 말을 잇지 못했다.

김 회장이 사모아와 인연을 맺은 것은 1960년대 초반. 그는 1958년 스물 셋의 나이에 원양어선 항해사로 험한 바다 일을 시작해 3년 만에 선장 자리에 올랐다. 참치를 많이 잡는 것 못지않게 판로를 확보하는 게 중요했고, 이는 선장이 책임져야 할 업무였다. 김 회장은 이때 세계 최대 참치 브랜드인 스타키스트가 사모아에 참치캔 공장을 세운다는 얘기를 들었다. 그는 스타키스트 사모아공장에서 만드는 첫 참치캔에 자신이 잡은 원어를 납품하고 싶었다. 펄펄 뛰는 참치를 가져와 끝없이 납품을 받아달라고 설득하는 김 회장에게 감명받은 스타키스트는 결국 일감을 내줬다.

그렇게 스타키스트를 뚫은 김 회장은 자신감을 얻어 1969년 동원산업을 세웠다. 동원산업은 이후 스타키스트와의 약속을 어기지 않고 꾸준히 질 좋은 참치를 공급하면서 탄탄대로를 걸었다.

그러나 함께 성장하던 스타키스트와 동원의 관계는 2008년 180도 뒤집혔다. 스타키스트 모회사였던 델몬트가 주력 사업이 아니라는 이유로 참치캔 사업 투자를 게을리했고, 2000년대 중반부터는 동원F&B에 뒤지는 회사가 됐다. 글로벌 금융위기가 닥치자 델몬트는 결국 스타키스트를 시장에 내놨고, 김 회장은 기회를 놓치지 않고 스타키스트를 인수했다. 김 회장은 스타키스트를 사들인 지 반년 만에 흑자로 돌려세우며 동원그룹이 세계적 ‘참치 명가’임을 증명했다. 젊은 시절 8년 동안이나 원양어선을 타며 참치를 잡았던 김 회장에겐 스타키스트를 정상화시키는 것은 그다지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김 회장은 두 아들을 밑바닥에서부터 경영수업을 시킨 것으로도 유명하다. 장남인 김남구 한국금융투자지주 부회장이 1980년대 중반 대학을 졸업하자 곧바로 원양어선을 타게 했다. 김 부회장은 6개월간 남태평양과 베링해에 나가 어선을 타며 하루 16시간 이상 그물을 던지고 참치를 잡았다. 갑판 청소 등 온갖 허드렛일도 피할 수 없었다.

차남인 김남정 동원엔터프라이즈 부사장 역시 경남 창원의 참치캔 공장에서 생산직 근로자로 직장생활을 시작했다. 또 동원산업에 영업부 사원으로 입사해 발로 뛰며 상품을 팔기도 했다. 김 회장은 이날 기념식에서 “스타키스트 사모아공장과는 원양어선 선장 시절 참치 원어를 납품하던 일을 시작으로 50년 동안 인연을 이어오고 있다”며 “앞으로 스타키스트 사모아가 세계에서 가장 우수한 참치 가공공장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다짐했다.

김 회장은 지난해 4조1800억원이던 동원그룹 매출을 2020년엔 20조원으로 끌어올린다는 비전을 제시했다. 그는 스타키스트에 이어 2011년엔 세네갈 수산 캔회사 SNCDC를 인수하는 등 글로벌시장 공략을 통해 이 같은 목표를 달성한다는 방침이다.

이날 스타키스트 50주년 기념식은 튀라이파 말리엘레가오이 사모아 총리, 롤로 몰리가 주지사 등이 참석한 가운데 춤과 음악을 곁들인 축제 형식으로 진행됐다.

박준동 기자 jdpower@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