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대 모자라 복도까지 환자들로 '북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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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병원 응급실 어떻길래서울 강남구에 사는 가정주부 김모씨(38)는 얼마 전 유치원생 딸을 응급실에 데려갔던 날만 생각하면 화가 치솟는다. 열이 39도까지 오른 아이가 자지러지게 우는데도 의사는 링거 주사에 해열제 하나 섞어주고 “오늘 교통사고 중환자가 많다”며 방치하다시피 했기 때문이다. 주변을 둘러보니 침대가 모자라 응급실 복도에 줄지어 내놓은 간이침대에 환자들이 누워 있었다. 어쩔 수 없이 밤새 복도에서 딸을 껴안고 있어야 했던 김씨는 “갑자기 불덩이가 된 어린아이가 응급 환자가 아니라면 누가 응급 환자겠느냐”며 “병원 응급실은 ‘도떼기시장’보다 어수선하고 불편했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지방서도 많이 올라와…대부분 전문의 없어
병원, 치료비 낮고 장비 비싸 개선 엄두 못내
◆지방서도 서울병원 응급실행
병원 응급실은 생명이 위급한 환자가 촌각을 다투는 곳이다. 하지만 우리나라 병원 응급실은 초(超)응급 환자뿐만 아니라 만성 질환자나 경증 환자는 물론 낮에 병원에서 순번을 기다리며 대기하기가 싫어 들어오는 환자까지 다양하다. 한국소비자원이 최근 응급실 이용 환자 1000명을 대상으로 설문 조사한 결과 5점 척도의 만족도 조사에서 응급실 만족도는 평균(3점)에 미치지 못하는 2.94였다. 진료비와 응급치료 대기시간, 의사 설명에 대한 불만이 많았다.
응급실 개선이 필요한 항목에 대해선 응답자의 54.3%가 ‘대기시간 단축’을 꼽았다. 응급실 진료에 걸리는 시간은 평균 3시간40분이었다.
◆응급실에 전문의가 없다 응급실이 이처럼 복잡한 것은 작은 병원에 마련돼 있는 응급실에서도 충분히 치료할 수 있는 ‘경미한 환자’가 큰 병원으로만 몰리기 때문이다. 서울과 수도권은 물론 지방에서 서울로 오는 환자도 많다. 송봉규 서울대병원 응급의학과 전공의는 “암이 뼈로 전이된 말기암 환자가 새벽에 ‘다리가 아프다’며 부산에서 KTX를 타고 올라온 적도 있다”고 말했다.
대다수 병원은 하루 24시간 운영되는 응급실에 전문의 대신 인턴이나 레지던트를 배치한다. 미국 일본과 달리 한국 병원 응급실엔 응급 전문의사가 없는 셈이다. 지난해 8월부터 당직전문의 제도가 시행되고 있지만 병원 자율에 맡기고 있다. 응급실에 전문의를 두는 의료 문화는 아직 정착되지 않았다. 응급실에 중환자실과 입원실을 두는 병원도 거의 없다.
응급실이 붐비는데도 대형 병원들이 응급실을 넓히지 않고 전문의를 두는 데 소극적인 이유가 있다. 비용문제 때문이다. 응급실 환자를 심야에 치료하더라도 의료수가는 주간에 비해 3만원을 더 받는 수준에 그치기 때문에 전문의를 둬서는 응급실 수지를 맞추기 어렵다. 응급실에는 고가 장비가 많이 필요하다는 것도 병원에는 큰 부담이다. ◆“응급 수술은 119에 문의”
대학병원 응급실이라고 해서 모든 환자를 최고 수준으로 돌봐주는 것도 아니다. 대부분의 대학병원은 수지 절단이나 화상 환자는 치료시설과 전문의가 부족해 다른 전문병원으로 보내고 있다. 맹장염이나 찢어진 상처 등은 전문의가 아닌 레지던트가 수술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소비자원의 조사 결과 지난해 1월1일부터 9개월간 응급실 한 곳에서 평균 2만8915명의 환자가 진료를 받았고, 이 가운데 응급환자는 61.2%에 그쳤다. 응급환자가 아닌데도 야간에 아프면 무조건 응급실로 달려간다는 얘기다. 송형곤 대한의사협회 대변인은 “가벼운 수술은 119에 전화해 외과 전문의가 있는 작은 병원 응급실을 안내받아 가는 게 더 신속하고 숙련된 치료를 받을 수 있는 방법”이라고 설명했다.
이준혁 기자 rainbow@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