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리경영 팔 걷은 기업] 정도경영 향해 묵묵히 앞으로

셰브런·지멘스, 준법경영 소홀히 했다가 ‘치명타’
‘페어 플레이’하지 않으면 지속 성장 힘들어
기업들 윤리 조직 확대하고 직원교육 강화 나서
메이저 석유회사 중 하나인 미국의 셰브런은 2011년 2월 에콰도르 법원으로부터 86억달러(약 9조6000억원)의 배상금을 지급하라는 날벼락 같은 판결을 받았다. 에콰도르의 아마존 우림 지역에서 26년간 석유를 채굴하면서 유독성 폐기물을 무단 방출해 지역 주민들이 암 등 각종 질병에 시달리게 한 책임이 있다는 것이었다.

배상금은 항소심을 거치면서 190억달러(약 21조2000억원)까지 치솟았다. 셰브런은 판결에 반발, 유엔국제상거래법위원회에 제소하고 버티고 있지만 환경 소송 사상 최대 규모의 배상금 판결을 받은 불명예에 여전히 시달리고 있다. 기업윤리와 준법경영을 소홀히 했다가 혹독한 대가를 치른 대표적인 사례다.독일의 지멘스도 윤리경영의 중요성을 잘 보여주는 사례로 종종 거론된다. 이 회사는 사업을 수주하기 위해 2006년 4억6000만유로의 비자금을 만들어 각 국가의 공무원과 정치인들에게 뇌물을 줬다가 들통이 났다. 이 혐의로 2008년 10억유로 이상의 벌금형을 맞았다. 이후 지멘스는 윤리경영 상담 센터를 24시간 가동하는 등 준법경영을 대폭 강화했다.

대부분의 글로벌 기업들은 심심치 않게 불거지는 비리 스캔들을 반면교사로 삼아 엄격한 윤리경영 지침을 운영하고 있다. 삼성경제연구소에 따르면 제너럴일렉트릭(GE)은 사내 윤리과정을 이수하지 않으면 해당 직원은 물론 상사까지 처벌하는 규정을 마련해놓고 있다. 스웨덴의 패션기업인 H&M은 협력업체에 수시로 감사팀을 파견해 노동법 준수 여부 등을 점검한다.
국내 주요 기업들도 윤리경영의 중요성을 깨닫고 조직과 인원 확충 등을 서두르고 있다. 재계는 기업의 사회적 책임이 더욱 중요해진 만큼 ‘페어 플레이’로 정도경영을 하지 않으면 지속가능한 성장이 불가능하다는 점에 주목하고 있다. 이동훈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은 “비리나 불공정한 관행 등을 감시하는 수준을 넘어 사전교육과 예방 등으로 윤리경영의 폭을 확대하고 수준을 높이는 기업들이 늘고 있다”고 말했다.
상당수 대기업들은 2000년대 초 윤리경영을 위한 헌장을 만들거나 관련 조직을 구성하는 등 준법경영에 본격적인 시동을 걸었다. 윤리경영을 위한 인프라를 어느 정도 구축한 일부 기업들은 최근 체계를 더욱 정교하게 다듬고 있다. 지난 6월 윤리규범 선포 10주년을 맞은 포스코는 신윤리경영을 제정하고 관련 내용을 업그레이드했다. 포스코는 미래 공익 상생 등 3대 핵심가치를 선정하고 △국제단체와 연계한 윤리경영 활동 △중소기업 지원 확대 △성과보상금 출연 등 구체적인 실천방안을 내놨다.

윤리·준법 경영을 총괄하는 조직과 인력도 확대하는 추세다. LG는 올해 그룹 차원의 경영진단조직인 정도경영태스크포스팀(TFT) 산하에 윤리사무국을 신설했다. 임직원들이 협력회사 등으로부터 경조사와 관련한 금품을 일절 받지 못하도록 하는 윤리경영 지침도 마련했다. LG 관계자는 “준법경영을 강화하기 위해 최근 3년 동안 법무 인력을 매년 10%씩 늘렸다”고 소개했다. 윤리헌장을 만들고 윤리위원회를 운영하고 있는 현대자동차그룹은 공정거래 자율준수 프로그램을 적용하고 있다. 사내 경영진 주도로 협력사, 외부 기업과의 거래를 투명하게 유지하는 내부 규정을 만들고 공정거래 법규 위반 임직원은 엄격하게 처벌한다.

삼성은 과도한 향응과 부당한 청탁 등 9개 금지사항을 담은 비즈니스 가이드라인을 적용 중이다. 특히 삼성은 올해부터 사장과 모든 임원들을 평가할 때 준법경영지수를 반영하기로 했다. 업무 성과가 탁월한 임원이라도 준법경영지수가 나쁘면 승진 명단에서 자신의 이름을 찾을 수 없게 됐다.

기업들은 직원 교육에도 지속적으로 투자하고 있다. 효성은 매년 10차례 이상 임직원들을 대상으로 윤리경영 교육을 실시한다. 온라인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업체들도 많다. 현대중공업의 사이버 감사실, 에쓰오일의 윤리경영 웹사이트, 대한항공 윤리경영 상설코너(사내통신망) 등이 대표적이다. GS칼텍스가 매월 온라인으로 발간하는 윤리경영 웹진 ‘윤리 바이러스’도 눈에 띈다.

박해영 기자 bon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