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위, 은행장 여신委 참여 '제동'

정치권 외압·부실대출 우려…금감원에 "유보" 의견 전달

"구조조정 속도 높여야"
개편 주도한 금감원 당혹
금융위원회가 은행장을 여신심사위원회(여신위)에 다시 포함하는 방안에 제동을 걸고 나섰다. 은행장이 대출 심사에 관여하게 되면 정치권 등의 청탁과 입김에서 벗어나기 힘들다는 은행권의 반발을 반영한 것이다. 상급기관인 금융위의 반대로 은행장을 여신위에 포함하려던 금융감독원의 방침은 실현되기 힘들어졌다.

◆금융위 “은행장 여신위 참여 반대” 27일 금융계에 따르면 금융위는 은행장을 대출 심사 과정에 포함시키는 금감원의 방안을 유보하기로 가닥을 잡았다.

금융위는 조만간 금감원에 기업여신 심사제도 개편을 중단하라는 지시를 내리기로 했다. 금감원은 은행연합회에 태스크포스(TF)를 만들어 새로운 은행 여신위 구성 방안을 만들 예정이었지만, 시중은행들이 강하게 반발하면서 금융위가 이에 브레이크를 걸고 나선 것으로 금융권은 보고 있다.

금융위 관계자는 “구조조정 기업에 대한 지원 속도를 높이는 것은 채권단과 해당 기업, 금융당국 등이 서로 협의해 풀어내야 할 관행의 문제이지 제도를 변경할 사안은 아니다”며 “은행장을 여신위에 포함하는 방안은 없던 일로 하는 게 낫다는 결정을 내렸다”고 밝혔다. 또 다른 관계자는 “외환위기 당시 정태수 한보그룹 회장의 로비를 받은 정치인과 정부 관계자들의 압박으로 대규모 대출 비리가 발생한 데 이어 은행장들이 줄줄이 구속되면서 은행장의 여신 심사 전결권을 없앤 것”이라며 “현행 여신 심사제도를 굳이 외환위기 이전으로 되돌리기엔 부작용이 더 클 것으로 판단된다”고 말했다.

시중은행들은 은행장을 대출 심사 과정에 다시 포함하는 방안에 반발해 왔다. 은행장이 대출 심사에 발을 담그면 외부 청탁과 민원이 몰리고, 결국 부실 대출이 늘어날 것이란 이유에서다.

또 은행장이 여신 심사에 참여하게 되면 대부분의 임원이 인사권을 쥔 은행장 의견을 따를 수밖에 없기 때문에, 은행장이 사실상 전결권을 갖게 된다는 점도 문제로 꼽았다. ◆머쓱한 금감원 “추가 협의 필요”

금융위가 은행장을 대출 심사 과정에 포함하는 방안에 반대하면서 이를 주도해온 금감원은 당황스럽다는 입장이다.

금감원은 당초 1000억원 이상의 거액 대출이나 구조조정 기업에 대한 2000억원 이상의 대출 심사 때 은행장을 참여시키는 쪽으로 기업여신 심사제도를 바꾸려 했지만, 관련 TF 회의를 무기한 중단했다. 금감원은 일단 금융위와 다시 협의하겠다는 입장이다. 금감원 관계자는 “금융위도 당초 검토의 필요성을 인정했던 사안인데 이제 와서 반대하는 것을 이해할 수 없다”고 말했다. 그는 “관련 법이나 규정을 고치는 게 아니라 은행들이 자율적으로 모범규준을 만들어 시행할 수 있는 방안이기 때문에 더 논의해 볼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장창민 기자 cmj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