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암 딛고 일어선 송재학 시인, 세상을 다시 꺼내서 노래했다

시·산문집 동시 출간
‘네 입술을 훔치다보면 그게 하나뿐인 게 늘 안타깝다 키스의 접촉면적을 늘리기 위해 너와의 혈연을 부풀리고 싶지만 그 입술이 열이고 천이면 뭐하나 그곳에 닿을 내 입술 흉터는 달랑 하나인데.’ (‘입술’ 부분)

김달진문학상 소월시문학상 등을 받은 시인 송재학 씨(사진)가 위암을 딛고 여덟 번째 시집 《날짜들》(서정시학)과 산문집 《삶과 꿈의 길, 실크로드》(아침책상)를 동시에 발표했다. 시집에는 짧지만 긴 울림을 주는 서정시 40편을 실었고, 산문집에는 직접 실크로드를 10여 차례 여행한 경험에다 자신의 일상과 성찰을 담았다. 그는 4일 서울 인사동에서 기자들과 만나 시집에 대해 설명하며 “시 한 편에 세상 전부를 구겨 넣으려고 했던 욕심을 덜어내고 퇴고를 거쳐 시 안에 넣어놓은 세상을 다시 끄집어냈다”고 했다. 그는 비웠다고 했지만 그 빈 자리는 특유의 서정성이 채운 듯하다.

‘낙엽들은 떨어지면서 속삭인다지 우리 다시 만나자 낙엽들은 서로 잎 비비면서 견딘다고 하지 그걸 모사模寫한 자의 이야기론 어떤 낙엽은 낙하 전에 이미 영혼을 떠넘기고 건조해지지만 대부분의 낙엽은 풍향을 따라가는 것이라는군.’ (‘환생’ 부분)

실크로드 기행과 시집은 시 ‘적막’에서 만난다. 혼자 떠난 파키스탄에서 새벽, 홀로 설산을 바라보며 쓴 시다. ‘방하가 있는 산의 밤하늘에서 백만 개의 눈동자를 헤아렸다 나를 가만히 지켜보는 별과 나를 쏘아보는 별똥별들을 눈 부릅뜨고 바라보았으니 별의 높이에서 나도 예민한 눈빛의 별이다.’

박한신 기자 hanshi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