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마을] 설렁탕·김밥에 담긴 역사의 비밀

식탁 위의 한국사
주영하 지음 / 휴머니스트 / 572쪽 / 2만9000원
음식 인문학자인 주영하 한국학중앙연구원 교수는 2011년 펴낸 《음식인문학》에서 “식사로서 음식은 일상이지만 문화와 역사로서 음식은 인문학”이라고 주장했다. 문화와 역사에는 정답이 없고 다양한 시선이 있을 뿐이며, 음식에 대한 다양한 시선에 숨겨진 정치·경제적 의미를 밝히는 작업이 그가 지향하는 ‘비판적 음식학’이라고 소개했다.

《식탁 위의 한국사》는 주 교수가 ‘비판적 음식학’의 접근법으로 지난 100여년간 한국인의 식탁에 오른 대표적 음식들의 역사를 써내려간 음식 문화사다. 설렁탕 육개장 삼계탕 신선로 짜장면 김밥 등 30여 가지 음식의 기원과 본래 모습을 추적하고, 정치·경제·사회·문화적 변동이 음식에 미친 영향을 분석한다. 저자에 따르면 근대 이전 가정집 음식은 20세기 들어 일정한 맛과 서빙 방식을 겸비한 외식 메뉴로 자리잡았다. 한국 최초의 근대적 외식업태인 국밥집과 일본식 고급 요리옥의 변형인 조선요리옥, 산업화 시기에 끼니 겸 안주로 서민의 배를 든든히 채워준 대폿집은 지난 100년간 한국에서 가장 유행했던 세 가지 유형의 음식점이다.

저자는 옛 문헌과 신문 잡지 광고 등 풍부한 사료를 토대로 각 업태의 대표 음식이 어떻게 탄생하고 변화해 왔는지 들려준다. 오래된 한국 음식으로 여기는 ‘당면 잡채’는 20세기 전반기 일본 제국에 편입된 중국 동북 지역과 한반도에 살았던 한국인과 중국인, 일본인의 합작품이다. 조선시대 요리서에 소개된 잡채에는 당면이 들어가지 않았다.

한국에 들어온 중국 식당에서 당면이 들어간 중국식 잡채가 인기를 끌면서 전국 각지에 당면 공장이 들어섰고, 일본인들은 양조간장 공장을 세워 팔기 시작했다. 1930년대 당면이 들어가고 양조간장으로 간을 맞춘 한국식 잡채가 유행하기 시작했고, 1970년대 들어서야 무치는 방식의 당면 잡채가 한국 음식으로 인정받게 된다. 저자는 이 책에서 밝힌 음식의 역사가 ‘정답’으로 인식되지 않기를 바란다. 다만 음식을 통해 한국 사회를 바라보는 안목을 제안할 뿐이라고 강조한다. “생물학적인 음식에는 물질이 담겨 있지만, 문화적인 음식에는 생각이 담겨 있기 때문”이란 설명이다.

송태형 기자 toughlb@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