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정치인과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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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면A37
청산리 대첩으로 日탄압 심해졌듯이
의로운 투쟁이 누군가에겐 질곡으로
이종걸 국회의원·민주당 anyang21@hanmail.net

9월 초 국회에서 열린 ‘후쿠시마 원전 방사능 오염사태’에 대한 토론회에는 유모차를 끌고 어린아이의 손을 잡고 온 젊은 참석자들이 많았다. 열띤 토론에도 새근새근 자고 있는 아이들의 미래를 걱정하는 엄마의 마음 앞에서, 대안 없는 정치적 언사가 괴담들을 덮을 수 없음은 분명했다. 지난 광복절에 나는 동료 의원들과 함께 원전 오염수 유출문제와 일본 군국주의화를 규탄하기 위해 일본 도쿄를 방문했다. 야스쿠니 신사로 가려 하자 민단에서 활동하는 재일동포들이 반대했다. 그들은 한국 정치인이 독도를 방문하는 것에도 우려를 표했다. 일본 우익들의 혐한 정서를 더 자극해 일본에 거주하고 있는 동포들의 처지를 더 어렵게 만들 것이라는 얘기였다. 정치인의 언사가 다른 한편의 국민들에게는 또 다른 고통이 될 수 있다는 점을 반박할 수 없는 현실이었다.
일제에 나라를 빼앗겼던 시절, 윤봉길 의사의 의거나 김좌진 장군의 청산리대첩은 일제가 우리 민족을 탄압하는 빌미가 됐다. 나라를 되찾기 위한 의로운 투쟁이 또 다른 국민들에게는 삶의 질곡으로 작용한 것이다.
정치는 말이다. 완벽한 대책이 마련되지 않은 정치인의 말은 필연적으로 누군가에게는 삶의 질곡이 되는 것도 사실이다. 내가 일본에 가서 방사능 오염사태의 진상규명을 외치고 국회에서 토론회를 연 것이 우리 어민들에게 어려움을 더한 것은 아닌지…. 그렇다고 28명의 일제 A급 전범 중 쇼리키 마쓰타로는 관동대지진 때 재일 한국인 학살에 앞장섰고, 이후 ‘일본 원자력의 아버지’가 돼 동경전력의 원조가 됐던 불편한 사실마저도 외면해야 하는 것일까?
나는 지금까지 얼마나 많은 사람에게 삶의 질곡이 되는 말들을 정치라는 이름으로 해왔던 것일까 반문해 본다.
이종걸 < 국회의원·민주당 anyang21@hanmail.net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