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은행 도쿄지점, 1700억 부당대출…'바지사장' 내세워 대출…5년간 '쉬쉬'

4월엔 야쿠자 자금세탁 관여 혐의 받기도
국민은행 도쿄지점 직원들은 5년이 넘는 동안 1700억원이 넘는 돈을 부당하게 대출했다가 최근에야 적발됐다. 그런데도 본점에서는 이를 전혀 모르고 있었다. 국민은행의 내부통제 시스템이 얼마나 허술한지 단적으로 보여준다.

더욱이 이 돈을 대출해간 기업들의 배후에 실질적인 소유주가 따로 있었던 데다 새로 발령난 도쿄지점 직원들이 이런 사실을 알고도 신고조차 하지 않아 여신 관리 및 해외 점포 관리 체계에도 문제가 있는 것으로 지적되고 있다. ○유령 법인 내세워 부당 대출

금융권에 따르면 국민은행 도쿄지점 부당 대출에 관련된 기업은 수십 곳에 이른다. 하지만 이들 기업 중 상당수는 실질적인 소유주가 따로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한 사람 혹은 한 기업에 나갈 수 있는 대출 금액이 제한돼 있는 규정을 피하기 위해 ‘바지 사장’을 둔 유령 업체를 내세워 대신 대출을 받아간 것이다.국민은행과 금융감독원은 이 정도 규모의 대출이 장기간 이뤄지려면 지점장급의 결정이 없으면 불가능하다고 보고 있다. 이에 따라 이번 부당 대출 관련자들은 대출해준 대가를 받았거나, 받지 않았다 하더라도 부당 대출 가능성을 묵인했다는 혐의를 받고 있다.

국민은행은 지난해 말 도쿄지점에서 대규모 연체가 발생하자 처음으로 이런 사실을 인지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어윤대 전 KB금융지주 회장도 상황의 심각성을 뒤늦게 깨닫고 조사 인력을 도쿄에 파견했다.

하지만 KB지주 및 국민은행의 최고경영자(CEO) 교체 시기가 겹치면서 조사에 힘이 실리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결국 일본 금융청이 지난 5월께 본격 조사에 들어가면서 국민은행도 부랴부랴 조사에 나선 것으로 전해졌다. 상황이 이런데도 국민은행은 관련 대출의 부실 규모가 어느 정도인지 파악조차 하지 못하고 있다.○잇따른 사고…모럴해저드 심각

국민은행에선 최근 들어 사고가 잇따르고 있다. 도쿄지점은 지난 4월에도 야쿠자와 관련 있는 불법 자금 4억5000만엔을 예치받은 혐의로 일본 금융청의 조사를 받았다. 도쿄지점에서 근무한 직원이 이 자금을 제3자 명의로 입금했다가 현금으로 인출해주는 방식으로 자금 세탁에 관여했다는 혐의였다.

최근엔 수원 정자동지점이 100억원짜리 위조수표를 감별해내지 못하고 현금을 내준 사건이 발생했다. 9544건의 대출거래 약정서를 고객 동의 없이 임의로 바꾼 사실이 적발돼 금융감독 당국의 제재를 받기도 했다.금감원은 국민은행과 KB지주의 해외 지점 관리 및 감독 체계를 전면적으로 살펴보고 있다. 금감원 관계자는 “이미 도쿄지점의 문제에 대해선 국민은행도 모든 사안을 인정했다”며 “KB지주 및 국민은행의 관리감독 체계의 문제점이 명확해질 때까지 조사를 진행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박신영 기자 nyuso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