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가 혁신의 힘…한국, 국민소득 세계서 가장 짧은시간에 3만弗 돌파

서울대 최고경영자과정 지상중계 ①
혁신으로 대한민국을 경영하라 - 김병도 서울대 경영대학장



국민소득 3만弗 시대 달성 시간 미국 160년, 일본은 69년 걸려
기업가 혁신이 국부의 원천…지금 지속적인 성장·혁신 필요
경제민주화 같은 규제 혁신 의지 꺾어…경쟁력 약화
“2008년 말 세계적인 금융위기가 발발했습니다. 세계 언론의 논조가 많이 바뀌었죠. 월스트리트저널은 ‘위기의 자본주의’라고 했고 파이낸셜타임스는 ‘마르크스가 자본주의를 구할 것인가’라는 제목의 기사를 내기도 했습니다. ‘월가 점령’이라는 시민운동의 핵심 주장은 ‘1%의 부자가 99%의 보통 사람을 착취하는 것을 바로잡자’는 것이었습니다. 부자는 탐욕스럽고, 나머지는 착하다는 전제가 깔려 있습니다.”

서울대 경영대학 최고경영자과정(AMP) 가을학기 첫 번째 시간. ‘혁신으로 대한민국을 경영하라’ 강의를 맡은 김병도 서울대 경영대학장(사진)은 “있는 사람들에게 빼앗아 나눠주는 식의 경제민주화가 과연 가능할 것인가”라는 질문과 함께 강의를 시작했다. ○“경제민주화는 산업혁명 전으로 돌아가자는 것”

김 학장은 먼저 인류의 1인당 소득 그래프를 띄웠다. 기원전 1000년부터 시작된 소득 곡선은 산업혁명 직전인 1800년까지 1000달러 부근에서 움직이다가 1800년부터 수직 상승하기 시작해 현재 6000달러를 가리키고 있다.

“현생 인류가 시작된 10만년 전부터 산업혁명이 시작된 1800년까지 인류의 소득은 1000달러 부근에서 크게 벗어난 적이 없습니다. 경제 성장이란 말 자체가 없었습니다. 경제민주화는 그때 얘깁니다. 일부러 할 필요가 없습니다. 아무 것도 하지 않으면 인류는 자연스럽게 경제민주화가 됩니다. 산업혁명을 통해 기업가들이 지속적으로 혁신을 했기 때문에 세계의 부(富)가 지금처럼 커질 수 있었던 겁니다.” 1800년 이전까지 국가 간 국민소득은 큰 차이가 없었고, 국가 내 개인 간 소득의 차이만 존재했다. 그러나 200년간 지속적으로 성장한 현재는 국가 간 소득 차이는 어느 때보다 커진 반면, 국가 내 개인 간 소득 격차는 역사상 가장 많이 줄어들었다.

“그런데도 국가 내 소득 격차가 사회 갈등의 가장 큰 원인이 되고 있습니다. 세계 최고 부자인 빌 게이츠와 워런 버핏이 미국 400대 부자들에게 재산의 절반을 기부하자는 캠페인을 하고 있죠. 400대 부자의 총 재산이 1조2000억달러가량이니까 절반이면 6000억달러입니다. 600조원이 넘는 엄청난 돈이죠. 그러나 세계 인구 70억명에게 나눠준다면 100만원도 채 돌아가지 않습니다. 나눠주기로는 빈곤 해결이 절대로 안 됩니다.”

○세계에서 가장 빨리 ‘부자 나라’가 된 한국 김 학장은 이어 영국 경제학자 앵거스 매디슨이 1990년 미국 달러 구매력을 기준으로 집계한 국민소득 그래프를 강의실 화면에 띄웠다. 네덜란드가 1820년 세계 최초로 국민소득 1800달러를 넘은 이후 3만달러가 넘는 데까지 180년이 걸린 것으로 나타났다. 미국은 1850년부터 160년, 일본은 1921년부터 69년이 걸려 3만달러를 달성했다. 1969년에 1800달러를 넘어선 한국은 인류 역사상 가장 짧은 42년 만에 3만달러 벽을 돌파했다.

“소득 3만달러 이상인 국가는 유럽과 북미, 중동에 집중돼 있습니다. 서구 유럽의 혈통을 받지 않고 석유도 안 나는 부자 나라는 일본, 한국, 싱가포르, 대만밖에 없고, 그 가운데 인구 5000만명 이상 국가는 일본과 한국뿐입니다. 네덜란드는 180년 동안 연평균 1~2% 성장했고 미국의 연평균 성장률은 2~3%였습니다. 한국은 42년간 6~7%씩 성장했습니다. 세계 경제학자들이 이 기록은 아무도 못 깰 거라고 합니다. 42년간 우리 기업인들은 말 그대로 미쳐 있었습니다. 우리가 주목해야 할 국가경제 문제는 경제위기나 양극화, 경제민주화 같은 것들이 아닙니다. 이건 10만년 전부터 200년 전까지의 상황입니다. 우리는 과거 42년간 했던 것을 해야 합니다. 지속적인 성장과 혁신입니다.”

○잘사는 나라가 되는 길은… 김 학장은 이어 부국과 빈국을 결정하는 요인에 대한 이론들을 분석하기 시작했다. 첫 번째 가설은 ‘열대나 아열대 국가는 가난하다’다.

“이 가설을 무너뜨리는 가장 확실한 증거는 한국입니다. 한국이 1960년대 이전에 열대지방에 있다가 이후 온대지방으로 온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 이 이론대로라면 아프리카나 동남아시아 나라들은 기후가 바뀌지 않는 한 영원히 잘살 수가 없겠죠?”

두 번째는 ‘자원이 많아야 잘산다’는 가설이다. 원유 매장량 세계 1위 사우디아라비아(20%)와 2위 캐나다(13%)는 부자 나라다. 하지만 3위 이란(10%)은 부국과는 아직 거리가 있다. 천연가스 매장량 1위 러시아나 금 생산량 1위 중국, 고무 생산량 1위 태국 등도 부국이라고 하긴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IQ가 높으면 부자 나라?

세 번째는 ‘국민들의 머리가 좋아야 부자가 된다’는 것이다. “자원 부존량보다 자원을 활용하는 능력이 중요하다는 점에서 IQ가 높으면 잘산다는 건 상당히 설득력이 있다고 봅니다. 그러나 이 이론도 썩 훌륭한 것 같지는 않습니다. 아프리카 사하라 사막 이남 국가의 평균 IQ는 70이 안 된다고 하는데, 그렇다면 이 나라들은 영원히 경제 발전을 못 한다는 얘기가 되니까요. 한반도를 봐도 그렇습니다. 북한은 지정학적 위치가 한국과 같고 천연자원은 더 많습니다. 그리고 국민 평균 IQ는 한국이 106(세계 1위), 북한이 104(세계 3위)로 비슷합니다. 그런데 1인당 국민소득은 한국이 3만2100달러, 북한은 1800달러입니다. 이 차이는 기업가 정신 외에는 설명이 되질 않습니다.”

○기업가의 혁신이 ‘국부’를 일군다

맬컴 글래드웰은 그의 책 ‘아웃라이어’에서 2008년 구매력을 기준으로 인류 역사상 최고 부자 75인을 꼽았다. 1위는 록펠러(3183억달러), 2위는 카네기(2980억달러), 3위는 러시아 황제 니콜라스 2세(2540억달러) 등의 순이다. 75인의 부자 중 미국인이 48명(64%), 기업인이 55명(73%)이다.

“기업가의 혁신이야말로 국부를 이루는 원천입니다. 기업가가 지속적인 혁신을 하려면 세 가지 전제 조건이 필요합니다. 혁신에 대한 정당한 보상과 자유, 그리고 존경입니다. 보상은 본질적으로 기업이 가장 잘하는 겁니다. 지난 200년간 기업이라는 조직이 가장 빠르게 성장한 이유죠. 조직 구성원이 공통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목숨걸고 뛰도록 하는 원동력이 보상입니다.”

○규제는 혁신을 막는다

두 번째 조건인 자유는 ‘규제 철폐’를 의미한다. 1368년 개국한 중국 명나라는 1492년 콜럼버스가 미국 대륙을 발견하기 전인 1400년대 초 이미 미국을 세계 지도에 그려 넣을 정도로 항해술이 발달했다. 그러나 ‘반역을 막으려면 국민이 돈이 없어야 한다’는 황실의 방침 아래 모든 사업을 국유화했고, 모든 해상무역을 금지하는 ‘기업가 정신 말살 정책’을 쓴 탓에 세계 경제 주도권을 유럽에 뺏기고 말았다.

“기술 수준만 놓고 보면 중국은 1400년대에 이미 산업혁명이 일어날 수 있을 정도로 발달해 있었습니다. 그러나 공기업에선 혁신이 일어날 수 없습니다. 동남아와 아프리카, 오늘날의 미국에까지 항해를 다녀온 것으로 추정되는 명나라 원정대장 정화는 공무원인 환관이었기 때문에 그 땅을 정복할 생각을 하지 않았습니다. 반면 1820년대 유럽에서 산업혁명이 시작된 것은 상인들에게 자유를 주면서부터입니다. 규제는 언제나 경쟁력을 떨어뜨립니다.”

○혁신을 지속하는 기부

마지막은 존경이다. 돈 많이 번 1%를 나머지 99%가 사랑하고 존경해야 기업가 정신이 되살아날 수 있다는 얘기다. 그러나 ‘부자가 천국에 가는 것은 낙타가 바늘구멍을 통과하는 것보다 어렵다’(신약성서) ‘돈벌이에 높은 가치를 부여하는 사람일수록 덕을 찾기 어렵다’(플라톤의 국가론) 등 인류는 역사적으로 부자를 달가워하지 않았다. “상인, 즉 혁신이 존경받는 길은 다음 세 가지입니다. 혁신이 창출한 부가가치가 커서 국부가 커질수록, 혁신으로 인해 피해를 입는 사람이 적을수록, 그리고 혁신으로 창출한 부가가치에 비해 기업가가 실제로 가져가는 몫이 적을수록입니다. 그게 인간의 심리입니다. 자기 몫을 줄이지 않으면 진보 세력이 빼앗으려고 합니다. 게이츠와 버핏이 재산의 대부분을 사회에 환원하겠다고 하는 것은 그들이 성인군자라서가 아닙니다. 기업가가 번 돈을 내놔야 사회가 기업가를 존경하게 되고, 다른 기업가들도 혁신하려는 의지가 생긴다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경제민주화 같은 규제는 혁신을 지속할 동기를 꺾습니다. 자발적으로 해야 효과가 있습니다.”
한국경제신문은 서울대 경영대학의 최고경영자과정(AMP) 강의를 4일부터 경영 섹션 BIZ Insight를 통해 연재합니다. 서울대 AMP는 서울대 경영대학 교수와 각 주제 전문가 강사진이 급변하는 기업 환경을 극복하기 위한 최고경영자의 역할과 경영 능력 계발에 초점을 맞춰 최신 이론과 사례 중심의 강의를 제공합니다. 1976년 개설된 국내 최초 최고경영자과정으로 김기문 중소기업중앙회장, 김종섭 삼익악기 회장, 이중근 부영그룹 회장, 이채욱 CJ대한통운 부회장 등 4700여명의 정·재계 리더가 거쳐 갔습니다. 자선 골프대회, 자선 음악회 등 동문들이 활발한 기부 활동을 벌이는 것으로도 잘 알려져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