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디스플레이 양강' 손잡은 이유

윤정현 산업부 기자 hit@hankyung.com
“두 사장님, 잠깐 일어나 보실래요? 여러분, 양사 대표께 축하 박수 한번 보내주십시오.”

김재홍 산업통상자원부 1차관이 지난 1일 서울 삼성동 그랜드인터컨티넨탈호텔에서 열린 ‘제4회 디스플레이의 날 기념식’에서 축사를 하기 전 김기남 삼성디스플레이 사장과 한상범 LG디스플레이 사장을 호명했다. 김 차관은 “두 회사가 특허 분쟁과 관련해 계류 중이던 소송을 취하하고 새로운 상생협력의 길로 가겠다고 밝혔다”고 소개했다. 나란히 앉아 있던 두 사장이 일어나 인사하자 박수 소리가 행사장을 가득 채웠다. 1년 전 열린 제3회 디스플레이의 날 기념식과는 정반대 분위기였다. 세계 디스플레이 시장 1, 2위를 다투는 두 회사 수장에게 지난해 행사는 불편한 자리였다. 애써 시선을 돌렸고, 서로에 대한 언급은 피했다. 당시 두 회사는 유기발광다이오드(OLED)와 관련한 기술 유출 및 특허 소송으로 펀치를 주고받았다. 연말엔 액정표시장치(LCD)로까지 소송전이 번졌다.

그러나 지난달 1년간 끌어온 특허소송을 전격 취하하기로 결정했다. 소송 취하 발표 후 1주일 만에 열린 디스플레이의 날 행사장에서 만난 김 사장과 한 사장은 내내 웃는 얼굴이었다. 기념식 전엔 한 시간 이상 차를 마시며 담소를 나눴고, 행사장으로 이동하면서는 “언제 소주 한잔하자”며 손을 맞잡기도 했다.

올해 디스플레이의 날 주제도 ‘상생’이었다. 한국디스플레이산업협회장인 김 사장은 기념사를 통해 “디스플레이산업은 1990년대 업계 후발 주자로 시작해 많은 기록을 경신하며 세계 1위를 지켜왔다”며 “함께 보고 멀리 가는 세계 최강의 디스플레이 신화를 이어갈 수 있도록 함께 노력하자”고 말했다. 디스플레이는 수출 5위에 12만7000명의 일자리를 책임지고 있는 ‘효자산업’이다. 세계 시장 점유율 50%에 육박하는 국내 디스플레이업계를 삼성과 LG가 이끌고 있다. 치열한 경쟁이 펼쳐지고 있는 세계 디스플레이 시장은 소리 없는 전쟁터다. 일본의 도전과 중국의 추격을 따돌리기 위해 소모적인 분쟁보다는 작은 힘이라도 끌어모아야 할 때다.

삼성과 LG는 소송 취하에 이어 특허 협력을 위해 머리를 맞대기로 했다. 전자산업 분야의 두 맞수 기업이 모처럼 시동을 건 ‘공존’의 몸짓이 기대되는 이유다.

윤정현 산업부 기자 hit@hankyung.com